[파이낸셜투데이=박선우 기자]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 개입 사건으로 기소됐지만 구속을 피했던 원세훈(62) 전 국정원장이 결국 개인 비리 혐의로 10일 구속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사실 원 전 원장의 구속은 정권이 바뀔 때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는 검찰이 정권 교체기를 전후해 원 전 원장의 개인 비리 첩보를 여러 방면에 걸쳐 수집해 왔기 때문이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점도 그동안 검찰이 원 전 원장의 개인 비리를 탄탄하게 수사해 왔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얘기다.

앞서 검찰은 당초 원 전 원장의 개인 비리와 국정원의 대선·정치 개입 수사 결과를 동시에 발표하려 했다. 이와 관련, 검찰 고위 관계자는 “원 전 원장 개인 비리는 갑자기 불거진 게 아니라 수사한 지 꽤 됐다”면서 “원 전 원장의 대선·정치 개입과 개인 비리 수사 결과를 동시에 발표하고 사법 처리하려 했는데, 여러 이유로 시기를 맞추기가 어려웠다”고 전했다.

이는 국정원의 대선·정치 개입과 관련해 원 전 원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놓고 황교안 법무장관의 반대와 수사팀 내 의견이 충돌하면서 개인 비리 수사는 별도로 진행하게 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대선개입 의혹이 명확히 드러날 경우 박근혜 정부에 정통성이 금이 가기 때문에 꿩 대신 닭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비리를 택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검찰은 원 전 원장이 구속된 만큼 공소 유지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는 한편 원 전 원장의 금품 수수 규모와 원 전 원장이 영향력을 행사해 황보건설이 수주한 관급·대형 공사의 전모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을 계획이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2009년부터 황보건설 전 대표 황보연(62)씨에게 수차례에 걸쳐 수천만원씩 모두 1억여원의 현금과 순금, 명품 가방 등 5000만원 상당의 선물을 받고 그 대가로 한국남부발전의 삼척그린파워발전소 제2공구 토목공사, 홈플러스의 인천 연수원 설립 기초공사 등 황보건설이 관급·대형 공사를 수주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역대 정보기관 수장들은 재임 시절에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지만 정권이 교체된 뒤에는 상당수가 사법 처리되는 수모를 겪은바 있다.

국가안전기획부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12·12사태에 연루돼 수차례 구속됐고 안무혁 전 안기부장도 같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도 불법 감청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북한 노동당 대화록을 유출해 검찰 수사를 받은 바 있다.

또한 개인 비리로는 이현우 전 안기부장이 1995년 11월 기업인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안기부 공금 10억원을 빼돌려 동생에게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원 전 원장은 역대 정보기관 수장 중 개인 비리로 세 번째 사법 처리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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