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명성, 사상누각(沙上樓閣)으로 전락하나

 

[파이낸셜투데이=김상범 기자] 세브란스병원 정남식 원장이 연일 터지는 악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4월 300억원대에 이르는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와 관련해 검찰이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데다, 지난달에는 ‘여대생 청부 살인사건’의 당사자인 영남제분 회장 전처 윤 모씨의 허위진단서 발급이 이 병원 주치의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세브란스 병원은 지난 13일 압수수색까지 받는 등 최근 몇 달 새 검찰의 ‘요주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며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국내 대표 병원에서 이같은 논란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파이낸셜투데이>는 최근 세브란스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논란들을 추적해봤다.

검찰, 수백억원 불법 리베이트 혐의 포착…본격 수사 착수
복지부 “의약품 도매상, 영업 이익 일부 기부금 형태 제공”

지난 4월 검찰은 대형 대학병원들이 수백억원에 이르는 의약품 리베이트를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수사에 앞서 보건복지부는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원광대병원, 건국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고대안암병원 등 6곳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각 병원들의 리베이트 혐의 액수는 세브란스가 36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성모(250억원), 원광대(20억원대), 건국대(15억원), 대구가톨릭대(14억원), 고대안암(4억원) 순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0년 11월 리베이트를 받은 쪽도 함께 책임을 묻는 ‘쌍벌제’ 시행 이후 대형 대학병원들이 이처럼 무더기로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남식 세브란스병원장

도매상, 리베이트 창구?

병원들이 이처럼 불법 리베이트를 대규모로 제공 받았다는 의혹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기부금’이라는 명목을 차용한 점 역시 놀랍다는 반응이다. 

이는 당국의 단속망과 법규를 교묘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변형된’ 리베이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한 당사자들 간의 리베이트 제공 행태가 날로 교묘해지고 음성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들 병원은 의도적으로 중간에 직영 도매상을 끼고 의약품을 납품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O사(세브란스), V사(서울성모), O사(대구가톨릭대), B사(고대안암), N사(건국대)등 각 병원을 전담하는 도매상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들 도매상이 리베이트 전달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약회사가 의약품 거래 장부 조작이나 차명계좌 이용 등의 방식으로 도매상에 차액을 남겨주면, 도매상이 이를 ‘기부금’의 형태로 병원에 지급하고 있다는 것. 

이 같은 의혹은 결국 검찰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대학병원들에 이어 정부합동 리베이트 전담수사반(반장 전형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검사)은 지난 4일 기부금 형식으로 이들 병원에 의약품 리베이트를 한 혐의를 받고 있던 의약품 도매업체 3곳을 전격 압수수색한 것이다. 

검찰은 이들 도매상들이 제약사와 대학병원과의 리베이트 ‘통로’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 전격 조사에 나섰다. 

검찰은 이날 검사와 수사관을 서울 방배동, 원효로, 용인에 위치한 의약품 도매업체에 보내 회계장부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의 매서운 칼날

이날 압수수색 대상이 된 도매상들은 각각 서울성모병원과 고대 안암병원, 인제 백병원에 의약품을 납품하는 업체들로, 대학 기부금을 가장해 수백억원대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한 상태다. 

또 같은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한 일부업체들도 관할지에 따라 서울서부지검, 서울동부지검, 대구지검 등에서 나눠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확보한 압수물 분석을 토대로 의약품 도매상 관계자와 병원관계자 등에 대해 소환조사를 할 방침이다. 

앞서 복지부는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성모병원, 원광대병원, 건국대병원, 고대 안암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등 대학병원들이 기부금 형식으로 리베이트를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검찰에 수사의뢰를 한 바 있다. 

검찰은 리베이트 수수혐의를 받고 있는 병원의 관할지에 따라 서울성모병원과 고대 안암병원, 인제백병원 등에 대한 수사는 정부합동 리베이트 전담수사반이, 세브란스병원은 서울서부지검이 수사하도록 배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원광대 병원은 전주지검이, 건국대 병원은 서울동부지검이 수사를 맡았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병원 대부분의 물량을 책임지고 있는 몇몇 대형 도매상들은 그야말로 ‘갑중의 갑’”이라며 “특히 일부 병원들은 자신들이 대부분의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개념의 도매상을 통해 기부금 형태의 리베이트를 제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 약사법이 발효되면서 병원들이 50% 이상의 지분을 가진 도매업체와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주요거래처였던 제약업체들에게 해당 도매업체의 지분을 넘기는 수법으로 교묘히 법망을 피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즉, 법적으로는 병원의 소유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업체들에게 지분을 넘기는 방법으로 여전히 도매상들을 지배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공개 사과문 <왜>

세브란스 병원은 도매상과의 리베이트 의혹 뿐 아니라 지난달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의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온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과 관련해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사건의 범인 윤 모씨의 형집행정지와 관련해 주치의의 허위·과장 진단서 작성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3일 주치의가 근무하는 병원을 전격 압수수색했는데, 해당 병원이 바로 세브란스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김석우)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약 9시간동안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윤씨에 대한 진료기록 등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약 9시간에 걸쳐 박 교수의 연구실과 병원 내 남아 있는 전산 기록을 중심으로 압수 수색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앞선 5월 25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895회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여대생 청부살해사건, 그 후’ 편의 방영 이후 정남식 세브란스병원장은 공개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정 원장은 지난달 28일 전체 교직원에게 보낸 메일에서 ‘살해 청부범’ 윤모씨에게 허위 진단서를 발급했다는 사실에 대해 피해자 가족 및 국민들에게 사과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정 원장은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으로 피해자 가족 및 국민에게 큰 실망을 끼쳐 드린 데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따라 철저히 진상을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재발방지를 위해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병원 측은 정확한 진상 파악을 위해 허위진단서를 끊어준 박 교수를 의대교원윤리위원회에 회부하는 한편 대한의사협회와 검찰 조사에 적극 협조하기로 결정했다.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의 범인 윤모씨

국민들의 ‘분노’

이처럼 병원장이 직접 나서 사과의 뜻을 전한 것은 국민들의 분노가 심상치 않았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해당 보도 이후 네티즌들은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검찰과 세브란스 병원, 그리고 윤모씨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모 중견기업에 대해 불매 운동을 펼치는 등 ‘십자포화’를 가하기 시작했다.

‘여대생 청부살인사건’ 윤모 씨에 허위 진단서 발급 ‘논란’
살인청부 당사자, 감옥 아닌 특실 ‘호화 생활’‥국민적 공분

허술한 검찰의 관리망도 문제지만 윤씨에게 허위 진단서를 발급하고 특실에서 수년간 생활하도록 만든 세브란스 측에도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국민적 공분이 일게 된 것이다. 

앞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살인을 청부한 윤씨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주로 병원 특실에서 생활해 왔다고 보도했다. 또 방송은 윤씨가 감옥 대신 병원 생활을 하게 된 이유는 유방암·파킨슨증후군·우울증 등 12개에 달하는 병명이 기재된 진단서가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이 진단서가 허위로 작성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의협은 지난달 27일 대회원 공지를 통해 “문제가 된 의사의 경우 협회 중앙윤리위원회 회부를 통해 면밀한 사건 진위 및 진상 파악에 나설 것”이라며 “회원권리정지 등의 조치 등 협회가 취할 수 있는 강력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건의 전말?

앞서 윤씨는 지난 2002년 자신의 사위와 이종사촌인 여대생 하모(당시 22세)씨의 관계를 불륜으로 의심, 하씨를 청부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2004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윤씨는 세브란스병원의 주치의 박모 교수가 발급한 진단서에 명기된 유방암, 파킨슨병 등을 이유로 2007년 형집행이 정지된 후 5차례 이를 연장했다. 

윤씨가 감옥이 아닌 ‘병원 생활’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는 진단서를 지속적으로 발급받았기 때문이다. 윤씨는 2007년 6월 이후 세브란스병원 박모 교수로부터 유방암, 파킨슨 증후군, 우울증, 당뇨 등 12개 병명의 진단서를 발급받아 형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그런데 SBS보도 및 일부 의사들에 따르면 유방암 수술을 제외하면 대부분 형집행정지를 받을 정도의 분명한 질환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특히 안과 질환은 형집행정지가 가능하려면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윤씨는 입원해 있는 병원 의사가 수술할 상황이 아니라는 소견을 내놓자 입원한 병원을 벗어나 다른 병원에서 외래환자로 수술을 받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검찰은 지난달 21일 윤씨에 대한 형집행정지 처분을 취소했고, 윤씨는 서울 남부구치소에 재수감됐다. 

이와 관련, 피해자 하씨의 가족은 윤씨가 거짓 환자 행세를 하며 세브란스 병원 등 호화병실에서 지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허위·과장 진단서 작성 혐의로 박 교수를 지난 4월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박 교수를 소환하기로 하고 일정을 조율 중이다. 

한 시민단체관계자는 “살인 청부 혐의로 무기 징역을 받은 사람이 뻔뻔하게 병원 특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원인을 제공한 검찰과 병원 측도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다”며 “특히 허위 진단서 발급 혐의를 받고 있는 주치의 및 이를 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는 병원 측은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 이란?

지난 2002년 발생한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은 한 중견기업 회장 전 부인 윤모(여·68)씨가 판사 사위의 외도를 의심하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당시 윤씨는 사위 김모(40)씨와 여대생 하지혜(당시 22)씨가 교제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사위와 하씨는 이종사촌 관계였음에도 윤씨는 지속적으로 둘 사이를 의심, 결국 조카에게 하씨를 납치·살해하라고 지시했으며 며칠 뒤 경기도 하남 검단산에서 머리와 얼굴에 공기총 6발을 맞은 하씨 시신이 발견되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에 윤씨는 살인교사 혐의로 기소, 오랜 법정 공방 끝에 2004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경기도 여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2007년 7월 “유방암 치료”를 주장하며 검찰에서 형집행정지 허가를 받는 등 10여 차례 형집행정지를 신청하고 연장 허가를 받아 4년간 교도소 밖 병원 특실 등에서 생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이 알려져 하씨 유족 측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검찰은 지난달 21일 ‘형집행정지 심의위원회’를 열어 윤씨에 대한 형집행정지를 취소하고 재수감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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