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 가입 후 시간이 오래 경과되면 가정의 수입(소득)이 달라지고 가족 구성원이 변동하게 된다. 여기에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가치 하락으로 오래 전에 가입한 보험이 내 실정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 및 장래의 상황에 맞게 불필요하거나 중복된 보장을 줄이고 부족한 보장을 보완해서 보험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데, 이를 ‘보험 리모델링’이라 한다.

'보험 리모델링'은 가정의 인적 구성과 재정 상태를 파악한 후 현재 준비된 자금과 앞으로 필요한 자금을 분석해서 부족한 차액을 보험으로 대비하되, 기존 보험으로 충분한 금액과 기간인지, 중복 보장은 아닌지 등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한 상품으로 재 설계하는 과정이다.

오래 전에 가입한 보험이 현재 상황에 적합하지 않으면 현재 상황에 맞게 우선적으로 계약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즉, 보험가입금액 감액, 보장기간 단축, 납입기간 연장, 납입 일시 중지, 특약 해지, 계약자 변경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계약변경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면 계약전환을 고려해야 한다.

계약전환은 종신보험을 암보험으로, 연금보험을 정기보험으로 바꾸는 것과 같이 기존 보험을 현재 판매중인 다른 보험으로 보험종목(보험종류)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보험에서 계약 내용의 일부만 변경하는 계약변경과 당초부터 차원이 다르다.

계약전환은 기존 보험의 책임준비금을 전환가격으로 책정한 후, 이를 새로운 보험의 일시납 순보험료에 해당되는 부분 만큼의 계약금액을 일시에 내고, 나머지 계약금액에 대해서는 전환 당시 연령에 해당하는 보험료를 추가 납입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기존 보험의 책임준비금이 80인데 전환하려는 보험의 일시납 순보험료가 100이라면 80을 일시에 내고 나머지 20은 앞으로 보험료를 추가 납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보험 리모델링을 할 때 계약전환이라는 유용한 제도가 있는데 현장에서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험회사가 돈벌이와 실적 달성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가입자에게 계약전환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설령 계약전환을 신청해도 반가워 하지 않는다. 계약전환은 신계약이 아니므로 보험회사의 판매실적 증가나 사업비 확보와 무관하고 쓸데없이 일거리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들은 계약전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으므로 보험설계사에게 교육하지 않으며, 그 결과 설계사들은 계약전환을 아는 경우가 드물고, 알더라도 가입자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므로 가입자들은 계약전환제도가 있는지 조차 모른다.

사정이 이러므로 가입자가 계약전환을 활용해서 보험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보험사에 리모델링이란 말을 꺼내면 ‘계약전환’을 설명하기 보다 대부분 ‘얼씨구나’ 하면서 “기존 계약을 서둘러 해지하고 현재 판매중인 상품으로 갈아타라”(이를 ‘승환계약’ 이라 함)고 권유할 가능성이 많다. 대리점이나 보험설계사에게 말을 꺼내더라도 돌아오는 답변은 거의 동일하다.

이 경우 보험사 말에 휘둘려 섣불리 승환계약에 응하면 피해를 보기 쉽다. 승환계약은 가입자에게 불리하고 보험사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혹 떼려다 혹 붙이는 일이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보험가입자가 기존의 보험계약을 조기에 해지하면 대부분 원금 손실을 보는데, 해지 당시 적립된 책임준비금에서 신계약비를 차감하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계약(승환계약)을 가입하면서 사업비가 포함된 보험료를 다시 내야 하므로 결국 사업비를 이중으로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보험업법 제97조(보험계약의 체결 또는 모집에 관한 금지행위)에서는 승환계약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엄금하고 있다. 즉, 기존 보험계약이 소멸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새로운 보험계약을 청약하거나, 보험계약을 청약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기존 보험계약을 소멸하게 한 경우 제재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현장에서는 승환계약이 음성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특히 보험설계사가 보험회사에서 대리점으로, 대리점에서 다른 대리점으로 옮긴 경우 발생하기 쉽다. 판매실적 달성과 수수료 확보 때문이다. 나중에 감독당국의 검사에서 승환계약으로 적발되면 제재를 받게 되는데, 실제로 제재 받은 건의 상당수는 대리점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현재 다수의 경제TV에서 ‘재무·보험 상담’ 프로를 진행하면서 보험 리모델링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다만, 일부 대리점이나 보험설계사들이 영업 목적을 위해 만들어 올린 유튜브의 경우 자칫 승환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물론 계약전환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해 주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보험 리모델링을 생각한다면 다음 순서에 따라 3가지 단계로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이 좋다.

첫째, 보장 대상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가장(家長)을 최우선으로 하되, 배우자, 자녀 순으로 살펴 보는 것이 좋다. 경제활동기에 가장의 유고는 가정의 경제력 상실로 이어지는 중대한 위험이기 때문이다.

둘째, 내 가정의 ‘재정설계와 보장분석’을 해야 한다. 잠자는 보험증권을 모두 꺼내서 가족 구성원별로 보장내역과 보험료를 종합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생애주기(life cycle)에 따라 필요한 보험종류가 어떤 것인지, 가입한 보험의 보장 범위와 금액이 적정한지, 보험료가 현재 재정상황(수입, 소득)에 적정한지 여부 등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믿을 만한)보험설계사에게 요청하면 구체적인 분석 결과를 서면으로 받아 볼 수 있다.

셋째, 분석 결과에 따라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보험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내 연령대에 꼭 필요한 보험으로 재 설계하되, 재정상황에 맞게 보험료를 조정해야 한다. 한정된 수입에 새는 보험료를 막기 위해서고, 그래야 계약을 끝까지 유지해서 보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존 보험을 정리할 때 ① 저축으로 알고 가입한 보험을 먼저 버려야 한다. 보험은 위험보장이지 저축이 아니기 때문이고, 보험은 사업비 공제와 저금리 장기화로 단기간에 저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② 동일한 위험을 중복으로 보장받고 있다면 보험료를 이중으로 낭비하는 것이므로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리해야 한다. 특약이 과다하면 특약만 정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③ 보장성보험이라도 보장받을 확률이 낮은 보험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저연령층 미혼자, 비혼자(Single)가 가입한 종신보험이 대표적이다. ④ 암보험, 건강보험 등 보장성 상품을 가입한 경우라도 보장기간이 짧은 보험은 정리하는 것이 좋다.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등 대부분의 질병은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이 높아지므로 보장기간이 길수록 유리하다. ⑤ 보험금을 받기 어려운 보험도 정리해야 한다. 치매보험으로 알고 가입했지만 중증치매만 보장하는 보험은 치매에 걸리더라도 보험금 받기가 어렵다. CI보험도 마찬가지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나에게 꼭 필요한 상품을 골라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 이 때 남들이 많이 가입하는 보험이 아니라 내 몸에 맞는 보험을 골라서 가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 통계청에서 매년 발표하는 ‘사망원인 통계’ 중 ‘연령별 5대 사망원인 사망률 및 구성비’를 살펴 보는 것이 좋다. 각 연령대별로 어떤 위험(질병, 재해)이 가장 높은지를 알려 주므로 우선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보험을 명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본인의 직업, 건강상태, 가족력, 취미 등을 고려하여 필요한 상품을 순차적으로 가입하면 된다.

다만, 기존 보험으로 필요한 보장금액이 충분하면 추가로 가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보장금액이 부족하면 필요한 만큼 추가로 가입해서 채워야 한다. 만약 기존 상품이 현재 판매중인 상품보다 불리하면 새로운 상품이 좋다. 그러나 기존 상품이 보험료와 보장내용에서 현행 상품보다 유리한 경우가 많으므로 비교, 확인해야 한다. 특히 암보험은 과거에 비해서 암에 대한 보장범위가 크게 축소되었고, 가입 후 90일이 지나야 보장받을 수 있다. 부득이 암보험으로 갈아타더라도 신상품에 먼저 가입하고 나서 90일 이후에 기존 상품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 보장 단절을 피하기 위해서다. 신상품은 사업비가 적게 부가된 가성비가 좋은 보험이 좋다. 최근에 간편심사보험, 초간편심사보험이 대대적으로 광고되고 있는데, 건강한 사람은 보험료 바가지를 쓰게 되므로 피해야 한다. 주로 병력자, 노령자가 가입하는 보험이기 때문이며 보험료가 크게 비싸다

계약전환은 가입한 보험회사에 서면으로 신청해서 보험회사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 계약전환이 가능한 보험이 있고, 불가한 보험(상품에 따라 유형이 전혀 다른 보험)이 있기 때문이다. 계약전환은 통상적으로 가입 후 1년 이상 경과된 유효한 계약을 현재 판매중인 개인보험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전환 전 계약과 전환 후 계약의 계약자, 피보험자는 동일해야 한다.

전환이 가능한 경우라도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보험회사의 창구(고객플라자)에 신청하더라도 바로 처리하지 못하고 대부분 상품개발부서에 의뢰하여 건 별로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환 후 계약에 대한 건강진단, 가입한도 제한 등 신계약 심사는 보험회사의 선택규정에 따라 진행되며, 전환한 계약에 대해서는 청약철회가 인정되지 않는다.

보험은 “알면 약(藥), 모르면 독(毒)”이다. 계약전환에 대하여 새로 알게 되었으니 보험 리모델링을 할 경우 승환계약으로 손해를 자초하지 말고 계약전환을 찾아서 활용해 보자. 시간이 걸리고 다소 번잡하더라도 나에게 득이고 약이 되는 계약전환으로 목적을 달성해 보자. 그래야 합리적인 소비자,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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