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은 당초부터 보험가입자를 위한 상부상조의 제도이므로 보험사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보험사는 보험계약자가 낸 보험료를 잘 관리해서 약관에 정한 보험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보험금을 차질없이 지급해야 한다. 그러므로 보험사는 보험계약자를 위해 일하는 머슴이고, 이를 듣기 좋게 ‘계약자 자산의 선량한 관리자’라고 부른다. 보험사가 누구 덕분에 밥을 먹고 사는지 생각한다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 어이가 없고 황당한 일이 또 벌어졌다. 머슴이 주인에게 갑질 해서 피해를 준 일이 드러났다. 보험사의 주된 의무는 ‘보험금 지급’인데, 일부 보험사의 자회사가 보험금을 부당하게 떼 먹다가 금감원에 적발되어 중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선량한 소비자들만 억울하게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2월 14일 DB손보의 자회사인 ‘DB CSI손해사정’에 중징계로 분류되는 ‘기관경고’ 조치를 내렸다. DB CSI는 2018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43건의 보험금 청구 건에 대해 부당하게 손해액을 적게 산정하고 보험금 지급을 요건으로 합의서를 작성하거나 합의를 요구하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보험업법에 의하면 손해사정사는 손해사정업무를 수행할 때 보험계약자, 그 밖의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된다.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때 손해사정사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DB CSI는 직원들에 대한 성과평가지표(KPI)를 운영하면서 보험금 삭감액이나 보험금 삭감지급 건수 등으로 실적을 산출했고 목표 대비 실적의 달성률에 따라 점수를 매겼다는 것이다. 보험금 많이 떼 먹거나 안 준 직원을 일 잘한다고 평가하여 포상이나 급여 등에 우대 반영한 것이다. DB CSI 직원들은 KPI에 따라 실적을 올리기 위해 보험금을 불합리하게 낮게 책정하는 등 부당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금감원은 이런 행위가 보험업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해서 DB CSI에 ‘기관경고’ 조치를 내린 것이다.

또한 DB CSI는 보험금을 지급하기 전에 가입자로부터 “삭감된 보험금을 받고 더 이상 보험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합의서 작성이나 합의를 요구한 사실도 적발됐는데, 이는 명백하게 보험업법 제189조 제3항을 위반한 것이다. 즉, 손해사정사 또는 손해사정업자는 보험계약자, 그 밖의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직접 했던, 자회사를 통해서 했건 간에 보험금을 부당하게 삭감하게 유도하거나 면책 위주의 손해사정과 지급심사 등을 유도하는 KPI는 당연히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이다. 가입자가 정당하게 받아야 할 보험금을 편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험사와 자회사들의 이런 행태는 명백한 불법이며 나아가 중대한 범죄(사기죄, 횡령죄)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이를 오래 전부터 ‘보험사 사기’라고 부르고 있다.

이번에 금감원이 적발한 것은 DB CSI에 불과하지만, 금감원이 다른 보험사를 모두 검사해 보면 타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부분의 보험사와 자회사들이 이런 부당 행태를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고치지 않았고 당연하다는 듯 관행처럼 해 온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이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소비자 이익에 반하는 KPI를 제멋대로 만들어 보험금을 부당하게 떼먹는 일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5년에도 이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하여 한동안 크게 논란이 되었고, 급기야 공영방송 KBS TV에서도 “일단 깎아라! 감액은 ‘실적’… 보험사 횡포 만연”(2015.1.28), “당신은 왜 보험금을 받을 수 없나?”(2015.2.3)란 제목으로 보험금 떼먹는 보험사들의 횡포를 크게 보도하였다.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감원은 당시에 애써 모르쇠 하다가 수차 지적을 받고 나서 일하는 시늉만 냈다. 즉, 2015년 12월에 “보상직원 KPI를 개선키로 하고, 보험사 KPI 현황 파악에 나섰다”고 했고, 2016년 11월말 각 생보사, 손보사 보상담당 책임자를 불러서 “새해부터 각사 내부 KPI에서 보험금 관련 항목을 삭제하라”고 주문했을 뿐이다. 그러나 주문대로 보험사들이 KPI를 얼마나 어떻게 삭제, 적용했는지 알 수 없다. 아무도 결과를 공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에 명확하게 뒷처리를 했더라면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보험사들과 금감원이 매사를 이렇게 유야무야 흐지부지 처리하므로 뭐 하나 제대로 달라지는 게 없다.

금융위가 뒤늦게 보험금을 고의로 덜 지급하는 보험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금액을 평균 4배 인상 (2017.8.16)하였다. 그러나 실효성이 의문이다. 첫째, 법규 따로, 현장 따로 이므로 적발할 의지가 없고, 설령 적발하더라도 ‘제 식구 감싸기’가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보험사들은 금융위 과징금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발되지 않으면 그만큼 플러스이고 적발되더라도 재수 없이 걸렸다며 그래도 보험금을 삭감해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 과징금 보다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이 이미 여러 형태의 자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목적은 업무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도 있지만, 속내는 이처럼 불미스런 일이 벌어졌을 때 보험사가 책임을 지지 않고 자회사에 전가, 면피하려는 것으로 판단된다. 금감원이 DB CSI에 대하여 조치를 취했지만, 정작 DB손보사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짐작하건 데, 보험사가 자회사에게 보험금을 떼 먹도록 압력을 가했거나 강요했을 것이고, 이에 따라 자회사가 보험사 요구에 따라 보험금 떼먹는 내용으로 KPI를 만들어 운영했을 개연성이 크다. 이게 정당하고 공정한 일인지 따져야 하고, 불공정 거래 근절 차원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서 검토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이번 일을 바라 보면서 보험사들의 존재 이유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든다. 특히 금융위가 아무런 안전 장치도 마련하지 않고 보험사들 요구 대로 자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도록 서둘러 허용했고 소비자 이익에 반한 내용으로 제멋대로 운영하도록 방치한 책임이 가볍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보험은 당연히 계약자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금감원, 금융위의 역할은 보험사 횡포로부터 가입자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예방하고 조치하는 것이다. 금감원, 금융위가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고, 가입자들이 보험사들의 횡포로부터 억울하게 피해를 봐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잘못은 고치라고 있는 것이니 보험사들은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즉시 고쳐야 한다. 내 배를 채우기 위하여 가입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행태는 이유를 불문하고 용납할 수 없고 용납돼서도 안된다.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다면 보험사가 아니므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고, ‘보험금 떼 먹는 범죄(사기) 집단’이라고 심한 욕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금감원이나 금융위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입으로만 소비자 보호를 외치고, 툭하면 핀테크니 빅데이터니 금융혁신상품이니 운운하면서 금융사 돈벌이 지원에 나서서 호들갑 떨 일이 아니라고 본다. 보험사들에게 주된 의무인 보험금 지급을 정당하게 하도록 상시 관리하여 바로 잡는 일이 백 배, 천 배 더 중요한 것이다. 이를 외면하거나 보험사 눈치 보며 빈 껍데기 사후약방문에 그친다면 소비자 보호를 외칠 자격이 없고 월급 받을 자격도 없는 것이다.

보험사들이 소비자 몫인 보험금을 부당하게 떼 먹었다거나 자회사를 시켜서 보험금을 떼 먹었다는 기사를 더 이상 듣거나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금감원, 금융위가 당장 해야 할 일은, 첫째, 보험사와 자회사들의 보상직원 KPI와 위탁 손사 재계약 기준을 전수 조사해서 소비자들에게 사실대로 공개하는 일이다.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다. 이를 외면하거나 감출 일이 절대로 아니다.

둘째, 보상직원 KPI와 위탁 손해사정사 재계약 기준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삭감하도록 유도한 KPI를 전면 무효화 시키고, 위탁손사 면책률 평가기준을 폐지하고 변경된 내용을 각 보험사 홈페이지에 의무적으로 공시하게 해야 한다. KPI는 면책률이 아니라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얼마나 정확하게 지급했는지 여부로 기준을 바꿔 공정하게 평가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셋째, 보험금을 부당하게 거절, 삭감해서 지급한 보험사를 보도자료를 통해서 소비자들에게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또한 금감원장이 해당 보험사 CEO를 호출해서 공개적으로 경고를 주어야 한다. 금감원의 존재 이유는 보험사들이 약관대로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했는지 아닌지 여부를 상시 검사해서 발표하고 적발 시 조치도 발표하는 일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넷째, 보험금을 부당하게 편취하도록 지시, 묵인하거나 실행한 자는 구속시켜 징역형을 살게 해야 한다. 소액의 과징금 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외국처럼 징벌적 손해 배상제도를 조속 도입해서 ‘걸리면 끝장’이라는 사실을 보험사와 자회사들이 각성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오래 전부터 준비한 금융소비자보호법(안)이 안타깝게도 금융사들의 농간과 입김에 휘둘려 징벌적손해배상제도가 빠진 빈껍데기로 국회 심의와 본회의 상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소비자 보호인지 금융사, 금융위와 국회의원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당당하게 대답해 보시라. 그리고 당신들은 누구 덕분에 밥 먹고 사는지 분명하게 대답해 보시라.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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