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고무 유해성과 벤조에이피렌 등 치명적 물질 배제
한국타이어 근로자 사망 원인 중 자살이 유독 높아

2008년 전후로 한국타이어 근로자들 가운데 자살·교통사고 및 원인 모를 질병 발병으로 사망한 근로자가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타이어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망한 근로자 수는 160명에 이른다.

이는 1997년부터 2017년까지 20년 간 자살 또는 심장질환 및 암 발병으로 사망한 근로자들의 숫자다. 이 수치는 한국타이어가 한국타이어산재협의회를 상대로 명예훼손 및 손해배상 청구 건에서 법원에 제출했던 자료로 정확성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타이어는 제조과정에사 천연고무와 합성고무가 섞이며 각종 화학물질이 첨가된다. 특히 합성고무 원자재를 녹이기 위해서는 시너나 솔벤트가 들어간 액체상태의 유기용제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한국타이어 작업장에서는 근로자가 사망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유기용제 중독에 의한 의문사’가 문제로 제기됐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좀처럼 유기용제 중독에 영향을 받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타이어 근로자 수에 대해 공식 집계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타이어가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에 소재한 법무법인 시선에서는 한국타이어 작업장에서 ‘유기용제 중독 의문사’로 숨진 근로자들의 국가 배상 문제와 이 사건 진상규명을 밝히기 위해 고민하는 자리로 기자회견과 함께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박응용 한국타이어산재협의회 위원장과 손종표 한국타이어 공동행동 집행 위원장, 인권위원회 소속위원 최석봉 법무법인 시선 변호사, 한국여성변호사회 총무이사 이시정 변호사, 홍지백 법무법인 나눔 변호사와 참석했으며, 이진경 작가는 스토리 텔링을 위해 함께 했다.

이날 박응용 한국타이어산재협의회 위원장은 “한국타이어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유기용제’ 중독 논란과 관련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잘못된 역학조사를 이제라도 현 정부가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박 위원장은 “2007년 노무현 정권 말기 감사원이 실시한 감사보고서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취임한 이후인 그해 10월에 발표됐다”며 “해당 감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타이어 재벌과 노동부는 함께 공모해 노동자들을 장기적으로 조직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결과, 징계요구서가 함께 첨부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명박 전 정권은 한국타이어 오너의 사돈이며 이에 따라 근로자가 유기용제 중독으로 사망한 문제를 철저히 은폐했다”며 “정치 검찰 역시 이 문제를 무혐의 처리하며 정경유착 세력에 대해 면죄부를 줬다”고 주장했다.

또 박 위원장은 “이 문제는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가 2016년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개 질의했던 내용”이라며 “이제라도 잘못된 역학조사를 바로잡고 노동자를 병들게 한 책임자 처벌과, 개악법 개정, 포괄 보상 해결의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진행된 간담회에서 지금까지 한국타이어 작업장에서 문제 제기됐던 ‘유기용제 중독 의문사’와 고무생산작업의 위험성에 대해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눴다.

최석봉 변호사는 “한국타이어는 2001년부터 벤젠과 톨루엔이 들어가지 않는 제품명 HV-250의 유기용제(솔벤트)를 사용했으므로 산재협의회 측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회사가 산재 은폐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최 변호사는 “한국타이어 주장과 다르게 이후 대법원에서 판결 난 개별 유족보상 청구 건의 경우, 근로자가 발암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회사의 잘못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며 “2002년 유기용제 중독으로 사망한 한국타이어 근로자 故이장복씨의 유가족 대법원 승소 판결과 2003년 급성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아 사망한 근로자의 유가족 배상청구 건 인정 판결 등 최근에는 폐암으로 사망한 故안일권씨 유가족 배상청구 건까지 대법원이 회사 측의 잘못을 인정한 사례가 5건이나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런 자료를 봤을 때,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홍지백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인정한 한국타이어 사망 유가족들의 개별 보상 청구 건을 봤을 때 문제의 타당성은 있어 보인다”며 “추가 역학조사 범위에서 정부와 국회가 함께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조율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데는 공감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날 한국타이어산재협의회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한국타이어가 제출한 사망 근로자 명단 가운데 유독 자살한 근로자 수가 많은 점에 주목했다.

최석봉 변호사는 “2008년서부터 2016년까지 사망한 한국타이어 근로자는 46명인 가운데, 유독 자살한 근로자는 10명이다”며 “축소된 자료라고 일지라도 근거가 되는 자료이므로 근로자들의 사망원인을 밝히려면 재 역학조사를 실시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응용 위원장은 “타이어를 찌는 정련공정과 제조 과정인 가류공정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조에이피렌이 검출됐다”며 “이로 인해 근로자들이 뇌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아 돌발행동을 보였을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 위원장은 “타이어를 성형하거나 고무를 붙일 때 사용하는 유기용제에는 석유 찌꺼기로 만든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첨가된다”며 “휘발성 유기화합물에는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 톨루엔, 자일렌, 에틸렌, 스틸렌, 아세트알데히드 등을 꼽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조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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