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사업다툼 막전막후

[파이낸셜투데이=조경희 기자]삼성家의 상속 분쟁으로 재계의 분위기가 흉흉한 가운데 주목받고 있는 그룹이 바로 롯데그룹이다. 형제의 난, 왕자의 난 등 재계에서는 그룹 회장직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이들 기업의 원조는 바로 롯데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롯데그룹은 1958년 설립한 롯데를 신격호 총괄회장의 동생인 신철호씨가 서류 위조를 통해 인수하려다 들켜 서울지검에 구속되는 등 형제간의 갈등이 최초로 시작된 기업이다. 이후 롯데가의 형제들은 라면, 부동산, 제과, 소주, 관광, 삼다수 유통까지 각 형제들의 ‘안방’을 공격하는 등의 행보를 벌이며 맹렬한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이에 <파이낸셜투데이>에서 범 롯데家의 사업다툼을 짚어봤다.


제주 삼다수의 유통 판매담당이 기존 농심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광동제약’으로 바뀌었지만 광동제약은 속앓이 중이다. 법적공방이 여전히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가 지난 2월 16일 농심을 제외하고 제주 삼다수의 유통권 입찰에 롯데칠성음료, LG생활건강, 웅진식품, 광동제약 등이 입찰제안서를 제출하며 ‘4파전’이 예고됐다. 국내 생수 시장 1위의 타이틀을 잡기 위해서다.

일각에서는 농심이 ‘물’ 먹은 삼다수 판매 유통망을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칠성음료가 입찰하는 것을 보고 범 롯데家에서 농심이 빼앗긴 유통망을 되찾기 위한 수순으로 보기도 했다.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이 가지고 있던 유통&#8231;판매망을 신격호 롯데총괄회장과 신동빈 롯데회장이 ‘롯데’라는 이름으로 유통망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세간의 분석과는 다르게 롯데家의 사업다툼을 보면 농심이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통해서라도 지키고 싶어 했던 제주 삼다수의 판매유통권을 롯데그룹에서는 ‘기회’로 받아들였던 셈이다.


신격호vs 신춘호, 농심라면 대항마 롯데라면?
롯데그룹의 시초는 신격호(시게미츠 다케오) 롯데총괄회장이다. 신 회장은 1922년 10월 4일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태어나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신 총괄회장은 1946년 일본인 의사의 도움으로 ‘크림’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후 ‘껌’ 사업이 대성공하면서 현재 롯데그룹의 틀이 형성됐다.

현대家가 高 정주영 명예회장이 사업을 벌이면서 7명의 동생들이 현대 왕국을 만들기 위해 분투했다면, 롯데家는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는 데 더 급급했다는 평가다.

신격호 롯데총괄회장의 형제는 5남 5녀다. 신 롯데총괄회장이 제일 맏형이고 2남이 신철호 전 롯데사장이다. 3남이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이고 4남이 신선호 일본 산사스식품 사장이다. 5남은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고, 유일하게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여동생이 5녀인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이다.

신격호 롯데총괄회장과 신춘호 농심그룹 사장은 재계에서는 ‘라면’ 때문에 형제 사이에 금이 간 관계로 꼽힌다.
롯데그룹은 지난 2010년 ‘롯데라면’을 출시했다. 물론 농심그룹에서 라면을 판매하고 있지만 그룹의 계열이 분리되기 전에는 롯데공업에서 1965년에 이미 라면을 판매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격호 롯데총괄회장은 ‘라면’의 시장성이 크지 않고 무엇보다 라면에 대해 잘 모르는 신춘호 회장이 라면 사업을 하는 것을 크게 우려하며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춘호 회장은 롯데무역 부장, 일본롯데 이사 등을 지내다가 1965년 한국으로 돌아와 ‘롯데공업’을 설립했다. 롯데그룹 첫 회사인 롯데제과가 설립되기 2년 전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라면사업을 반대하던 신격호 롯데총괄회장은 신춘호 회장이 형의 반대를 무릎 쓰고 라면을 판매하는 것에 크게 감정이 상한 반면 신춘호 회장은 회장 나름대로 지원을 해주지 않은 형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됐다는 설이다.

그리고 이 서운한 감정은 부친 제사에 신춘호 회장이 불참하는 가하면, 신춘호 회장의 칠순에도 신격호 롯데총괄회장이 불참하는 등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롯데라면은 롯데마트 내에서 PB상품으로 판매되고 있어 농심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롯데그룹의 설명이기는 하지만, 신 총괄회장과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그간 행보를 봤을 때 재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조카에게 결제 받는 신준호 회장…비극은 ‘땅’
현 롯데그룹의 회장은 신동빈 회장이다. 신격호 롯데총괄회장의 둘째아들인 신동빈 회장은 서울롯데그룹을 책임지고 있으며 맏형인 신동주 회장이 일본롯데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신동주, 신동빈 회장이 세간에 알려지기 전에는 신준호 회장이 오래도록 롯데그룹 핵심실세로 일해 왔다. 신준호 회장은 롯데제과가 설립되던 해인 1967년 롯데제과 전무로 롯데제과를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이후 롯데제과 대표, 롯데칠성 대표, 롯데냉장 대표, 롯데물산 사장, 롯데건설 사장 및 부회장, 롯데그룹 운영본부 부회장 등 신격호 회장을 대신해 롯데를 성장시켰다. 신격호 회장이 일본에 있는 상황에서 롯데그룹 운영본부 부회장의 자리는 한국 내 롯데그룹의 최고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맏형인 신격호 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았던 신준호 회장의 사이가 틀어진 이유는 ‘땅’으로 알려져 있다. 신격호 회장은 당시 일본에서만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를 보고 “저런 사람이 집권을 한다면 믿어도 된다”는 생각에 한국 투자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1963년 한일국교정상화 전이어서 일본 기업은 국내에서 사업과 투자를 할 수 없었다. 이에 신 회장은 동생들 이름으로 땅을 사고 이들 명의로 회사를 설립했다.

문제는 1996년 부동산실명제가 발표되면서 신격호 회장은 양평동 땅 등 신준호 회장 명의로 된 전국 7군대의 땅(약 37만여평)을 회사 명의로 바꾸려 했으나 신준호 회장이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고 나선데 있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옥신각신 끝에 신격호 회장은 서울지법에 ‘명의신탁해지로 인한 소유권 이전 등기청구소송’을 냈으며 서울지법이 신격호 회장의 손을 들어주며 땅 문제를 매듭지었다.

이 소송 후 신준호 회장은 형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지만 신격호 회장이 이를 용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준호 회장은 그룹 부회장직에서 면직됐으며 롯데햄우유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후 신준호 회장은 롯데그룹에서 롯데햄우유를 독립시켰다. 현재 사명인 푸르밀 또한 신준호 회장이 롯데햄과 롯데우유를 분리한 이후 2008년부터 롯데그룹이 ‘롯데’ 브랜드 사용의 금지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소주’ 시장 놓고 형제간 또 다툼
신준호 회장은 또 ‘소주’ 시장에서 신격호 명예회장과 일전을 치른 바 있다. 지금의 대선주조는 주인이 다르지만, 2007년까지 신준호 회장이 대선주조의 주식 98.97%를 600억원에 사들이며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이는 2004년 사돈기업인 대선주조가 ‘좋은데이’로 유명한 무학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시달리자 경영권 방어를 위해 아들, 며느리, 손자 등 가족 명의로 지분을 사들인 것이다.

문제는 대선주조가 부산을 대표하는 지역소주라는 점이다. 대선주조는 부산 소주시장의 점유율을 70~80% 차지했던 대표적 부산소주로 두산주류 시절 ‘처음처럼’은 부산에서 채 1%에도 미치지 않는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009년 롯데가(현 롯데주류)를 인수하면서 대선주조와 롯데주류 두 형제간의 싸움으로 번졌다. 처음처럼은 두산주류 시절보다 롯데주류 시절 더 많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데 이는 신격호 명예회장이 경남 울주 출신으로 연고지가 ‘부산’인 덕분이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땅’ 때문에 척을 진 신격호 롯데총괄회장이 신준호 회장을 상대로 한 앙금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한참을 떠돌기도 했다.

롯데제과 두고 장남 vs 차남의 ‘대립’
롯데그룹이 일본에서 ‘껌’으로 대박을 친 후 신격호 롯데총괄회장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다. 롯데그룹의 주력기업인 롯데제과 또한 이 과정에서 형제들 간 내홍을 겪었다.

롯데그룹은 1958년 150만원의 자본금으로 (주)롯데를 설립했다. 당시 일본에 있던 신 회장이 국내에 없는 틈을 타 아래 동생인 신철호 전 롯데 사장이 서류위조를 통해 인수하려다가 형에게 들킨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서울지검은 형인 신격호 롯데총괄회장과 동생인 신춘호 농심회장의 도장 등을 신철호씨가 몰래 파 롯데 이사직을 사임한 것처럼 위조한 혐의다. 신철호 전 롯데회장은 업무상 횡령 및 사문서 위조 혐의로 당시 구속됐다.

이후 신철호씨는 당시 횡령했던 4억2000만원으로 롯데화학공업사(현 롯데제과)를 설립했으며 이후 메론제과를 설립했다. 신격호 롯데총괄회장은 1967년 롯데와 롯데화학공업사를 해산하고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관광사업 진출, 여동생과도 ‘불화’
신격호 롯데총괄회장은 관광산업에 진출하면서도 24살의 나이차가 나는 막내 여동생과도 불화를 겪었다. 그리고 끝내 이 불화는 막내 여동생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의 남편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에게 끝내 ‘샤롯데’ 엠블럼 사용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으로 이어지면서 갈등을 빚었다.

롯데그룹은 관광사업에는 진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007년 롯데그룹이 롯데JTB를 통해 관광산업에 진출하면서 막내 여동생 부부의 사업인 롯데관광개발과 갈등을 빚게 됐다. 여동생 입장에서는 같은 업종에 ‘롯데’라는 이름을 달고 시장에 진입한 롯데그룹이 달갑지 않았을 수 있다.

특히 신격호 롯데총괄회장이 여동생이 사업하고 있는 관광산업 시장에 진출하는 것 자체로 갈등을 빚어질 수 있는데 결국 이런 갈등은 ‘샤롯데’ 엠블럼 사용을 전면 금지시키면서, 결국 막내 여동생과도 골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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