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가질 수 없는 서로의 것 탐닉하는 ‘진솔한 욕망’


지난해 극 중 주연을 맡은 배우 박해일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기가 막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감 멘트로 앞서 화제를 모았던 영화 <은교>가 오는 26일 개봉한다. '기가 막힌' 영화 <은교>는 '갈망 3부작'으로 불리는 박범신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녀의 싱그러운 관능에 매혹 당한 '국민 시인' 이적요(박해일 분)와 스승의 천재적인 재능을 질투한 제자 서지우(김무열 분), 그리고 고매한 시인의 세계를 동경한 열일곱 소녀 한은교(김고은 분)가 서로가 갖지 못한 것을 탐하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다.

박범신 작가는 “영화 <은교>는 삶의 유한성에 의한 존재론적 슬픔과 그에 따른 갈망을 파국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저급한 불륜의 이야기가 아니다”며 "억압당해 있는 관객들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 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성장을 마치지 않은 소녀의 상징적 처녀성, 그 치명적인 관능미에 매혹되다. 벗은 두 ‘맨발’은 여성의 가슴 봉긋한 그것만큼이나 페티쉬(fetish)적 본능을 자극하는 도발적인 신체의 강력한 일부다.

납작한 가슴, 눈부신 살결, 투명한 민낯과 같은 소녀 특유의 순결함으로 무장한 은교는 시인 이적요의 천재성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핏줄적 애정 결핍에 의한 묘한 감정 사이에 몰입한다. 온전한 감정에 충실한 은교는 아슬아슬한 한계를 오가며 극의 중심에서 서있다.
"은교가 왔구나"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죠"
극의 치명적인 갈등의 끝에 서게 된 결정적 요소는 무참한 늙음, 야속한 외로움이다. 세월을 비켜내지 못하는 인간의 낡은 몸뚱아리는 온갖 애욕에 당연한 듯이 반응할 수밖에 없는 본능적 성질을 온전히 지니고 있다.

다만 형편에 걸맞은 품위를 유지하느라 드러내지 못할 뿐이다. 방치돼있는 이들에게 외로움은 치명적인 독이 됐다. 70대 노년의 스승은 10대 소녀와의 밀애를 꿈꿨다. 금단의 성역에 닿기를 갈망하는 가엾은 치정을 그는 소녀에게 마지막 포옹으로, 소녀는 이마의 존경어린 키스로 가장한 채 진심을 표명한다. 답이 없는 이들의 어지로운 애욕은 애처롭다.

특유의 싱그러운 젊은 에너지로 스스로의 매력을 과시하던 열일곱 소녀 은교는 돌아서서 이적요의 제자와 관계한다. 그리고는 "여고생이 남자와 사는 이유는 외로워서"라고 단정한다. 행위 중 내뱉는 소녀의 대사로부터 미처 절제하지 못한 욕망을 '퇴색'이라 일컬어 버리는 인간 고유의 본능적 성질, 현대 사회의 이기적 면모를 가감 않고 드러낸다.

그러나 ‘소녀이기에’ 저질러 버린 결정적 아둔함, 그 어리석은 착각은 결국 이들을 파멸로 몰고 간다. 스승을 투기하고 그가 아끼는 '것'을 탐한 제자 서지우가 치닫는 말로는 끔직하다. 처참하게 부서지며 파편이 된 그의 말로를 감독은 극의 절정의 나락에서 가장 극적으로 묘사했다.

10대 소녀와 70대 노인의 오붓한 애정을 과시하는 것보다 더 집중했다. 장면은 이적요와 은교의 절대적 순수성과 극도로 이질적인 서지우의 노한 악기(惡器)를 영화에서 만큼이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고마워요. 은교 예쁘게 해줘서. 나는요, 내가 그렇게 예쁜 아인 줄 몰랐어요"

여인이 된 소녀의 고해는 애처롭다. 소설 속에 담긴 공기, 온도, 습기, 따듯함... "아무리 얘기해도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을 결국 세월이 흘러서야 깨닫게 된 은교. 만개한 안개꽃다발은 더 이상은 없을 이별임을 암시했다. 그러나 끝내 이들의 아늑한 순수성에의 교감, 그 고결한 진심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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