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 가입 후 급전이 필요하면 가입한 보험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장이 단절되고 대부분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이 경우 보장을 계속 받으면서 돈을 마련하는 방법이 보험계약 대출이다. 즉, 보험계약대출은 은행의 예·적금 담보대출처럼 보험계약을 담보로 대출 받는 것으로, 흔히 ‘약관대출’이라고 부른다.

보험계약대출은 해지환급금의 60~80% 범위 내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데, 당일 대출이 가능 하고 보증인이 필요 없으며 대출수수료가 없다. 물론 개인 신용도와 무관하고 대출금을 중도 상환하면 상환 수수료가 없으며 당초 약정한 보험금을 전액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보험계약대출 이율이 은행 이율보다 월등히 높아서 이자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평균금리가 3~6%인데, 보험계약대출 이율은 최소 3%에서 최대 9%(확정금리형) 정도다. 그래서 “보험계약대출은 담보가 확실하고 떼일 염려가 없는데도 고금리를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고, 보험사가 계약자 상대로 고금리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데, 결과만 놓고 보면 일견 그럴 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 주장은 본질을 모르고 ‘수박 겉핥기’식의 일방적인 주장이므로 동의할 수 없다. 보험사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험계약대출 이율의 본질을 명확히 밝혀서 소비자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더 이상 소모적인 주장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보험계약대출 이율은 ‘기준금리’에 ‘가산금리’가 더해져 결정된다. 가입한 보험상품 마다 기준금리(예정이율, 공시이율)가 다르므로 보험계약대출 이율도 당연히 상품마다 다르다. 과거 고금리 시절에 판매된 금리확정형 상품(특히 외환위기 여파로 1990년대 후반 판매 상품)은 기준금리가 높아서 대출이율이 당초부터 높을 수밖에 없다. 보험사들이 고금리 확정형 상품의 계약자들에게 최고 연 9%가 넘는 대출이율을 책정하고 있는 이유다.

생보사의 경우 1990년대 고금리 확정형 상품을 많이 판매한 보험사들은 금리가 9.5% 이상인 대출이 금리확정형 대출의 20~60%대에 달한다. 반면 최근 판매한 금리연동형 대출 상품은 연 5% 이하가 60~100%로 대부분이다. 대형 보험사들의 금리확정형 보험의 약관대출이율이 중·소형사 보다 크게 높은 것은 보험계약대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고, 과거 고금리 상품을 대출받는 고객들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예정이율은 시중금리와 상관 없이 보험사가 장래의 보험금을 차질 없이 지급하기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수익률이다. 보험계약대출은 보험사에 적립돼 있는 보험금을 계약자에게 미리 빌려주는 것이므로 정상적인 수익을 포기하는 대가로 해당 이율(기준금리)만큼 이율을 부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7%의 상품에 가입한 계약자가 대출 받으면 7%에 맞춰 놨던 채권을 팔아서 대출해야 하므로 보험사는 7%대의 자산운용 기회가 소멸되고, 그 만큼 비용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고금리 대출이율을 현행 은행 금리 수준으로 낮추라는 주장은 예정이율의 의미를 모르는 문외한이 “보험사가 나를 위해서 손해 보며 장사하라”는 것이므로 억지이고 부당한 것이다. 기준금리(확정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대출금리가 책정되기 때문에 현행 시중금리 보다 높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보험사가 폭리를 취하려고 의도적으로 대출금리를 높게 잡은 것이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고금리 대출이율만 보고 시중 금리만큼 이율을 낮추라는 요구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고, 나중에 받을 보험금을 시중금리만큼 낮게 책정해서 받겠다는 요구와 같은 것이다. 이 요구는 공시이율 적용의 금리연동형 상품에는 타당하지만, 예정이율 적용의 확정금리형 상품에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다만,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은 가산금리다. 저금리 상황인데도 금리확정형의 가산금리가 금리연동형(1.5%) 보다 1%p 높은 2% 중후반대로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고금리 금리확정형 기준금리에 더 높은 가산금리를 책정하고 있으므로 ‘약탈금리’라는 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보험사들이 고금리 상품들을 서둘러 없애려고 일부러 더 높은 가산금리를 책정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고, 금리연동형보다 금리확정형의 대출 리스크가 더 크지만 금리차는 0.5%p면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다.

보험사들은 금리확정형 상품은 대출 회수에 따른 위험성과 금리위험을 감안해서 가산금리를 높게 책정한다는 것이다. 보험사들은 현재, 자본 비용, 업무 원가, 법적 비용, 목표 이익률 등을 고려해서 가산금리를 자율로 정하고 있고, 금융감독원은 보험사들에게 가산금리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결국 대출이율이 고금리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내리라고 주장하거나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이런 주장은 소비자들에게 자칫 왜곡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므로 각별 신중해야 한다. 기본금리는 계약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므로 지적할 이유가 없다. 굳이 지적하려면 가산금리에 대해 인하를 주장해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보험계약대출은 기준금리가 낮은 계약부터 받는 것이 유리하다. 해지 환급금은 보험종류, 공시이율 변동, 투자실적, 납입경과기간 등에 따라 상이하므로 대출가능 금액을 미리 확인 후 대출 받는 것이 좋다. 원리금 상환을 연체하면 고율의 연체이율이 부과되므로 대출원리금 상환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대출원리금은 대출자가 스스로 상환 해야 하는 것이므로 보험사가 상환 안내를 하지 않아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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