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사 의료자문’은 보험금 청구건에 대하여 보험사가 위촉한 자문의(自問醫)로 부터 의학적 소견을 받는 것을 말하는데, 보험사는 자문 결과를 토대로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

보험사의 의료자문은 지난 2014년 5만4399건(생보사 1만2624건, 손보사 4만1775건)이었는데, 2016년 8만3580건(생보사 2만9797건, 손보사 5만3783건)으로 53.6%가 증가했다.

문제는 보험사의 의료자문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삭감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보험가입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자문의 60~70%가 '보험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보험사들이 부당하게 ‘보험금 후려치기’를 하는 것이고, 자문료에 눈이 멀어 보험사에 유리한 내용으로 소견서를 작성해 주는 자문의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생보사들은 2017년 상반기에 1만4638건의 의료자문을 받았는데, 이 중에서 9902건의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자문료는 건당 30만~100만원이었다. 보험사들은 2016년 155억원을 자문료로 지급했다. 이처럼 보험사들은 의료자문을 통해서 수 만건의 보험금 지급을 거절‧삭감해서 막대한 금액을 편취한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보험사 의료자문에 대하여 보험가입자들은 ‘보험사 횡포’라며 원성이 자자하다. 보험가입자가 받아야 할 멀쩡한 보험금을 보험사들의 ‘꼼수’(자문의 소견)로 떼이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부당한 것이므로 ‘보험사 사기’에 해당 된다.

보험사 의료자문이 가입자들에게 부당하고 불공정한 것은 다음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자문의 소견은 당초부터 보험금 지급 거절‧삭감의 근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환자를 직접 진료한 주치의의 진단서를 인정하지 않은 채, 환자를 전혀 보지도 않은 익명의 자문의에게 서류만 보여 주고 보험사에 유리한 내용의 소견서를 받아서 이를 빌미로 주치의 진단서를 부정하며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잘못됐다. 나아가 보험사의 주된 의무인 보험금 지급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이므로 부당하고 불공정한 것이다.

둘째, 보험가입자들이 납입한 보험료가 보험금 거절이나 삭감 지급하기 위한 자문료로 황당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아이러니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보험료가 보험금 지급을 하지 못하는 비용으로 거꾸로 사용되고 있다니 정말 황당한 일이다.

셋째, 머슴인 보험사가 주인인 보험가입자를 홀대하는 것도 모자라, 툭하면 보험사기범인 것처럼 몰아세워 겁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보험사의 횡포이고 명백한 인권 침해다.

보험사의 의료자문 횡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 동안 많은 보험가입자들이 보험사 의 횡포로 멀쩡한 보험금을 도둑질 당하는 피해가 속출해 왔기 때문이다. 필자가 일하는 금융소비자원에도 보험사 자문의 소견서 때문에 보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종종 상담을 요청해 오고 있다.

그 동안 “자문의 소견서가 보험금을 거절, 삭감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수차 반복되었다. 그러나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융감독원은 오랫동안 애써 모르쇠 해 왔고, 그러는 사이 선량한 보험가입자들만 속절없이 낭패를 봐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보험사의 의료자문 횡포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 달, 금감원과 생·손보협회가 “보험사가 자문의 소견을 핑계로 보험금 지급을 부당하게 거절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의료분쟁 매뉴얼' 초안을 마련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매뉴얼은 올 해 1분기에 확정되고, 보험사가 이를 어기면 행정 처분을 받게 된다.

보험사들은 향후 자문의가 속한 병원명과 전공과목, 자문 횟수를 금감원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의료자문이 잦은 보험사와 병원의 ‘블랙리스트’가 소비자들에게 공개되고, 금감원은 자문 병원, 전공과목과 의사 실명까지 법원행정처에 제공할 방침이다.

보험사들은 의료자문을 악용하지 말고, 금감원은 보험사를 실효성 있게 지도, 관리해야 한다. 보험사들의 부당한 의료자문으로 억울한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되지 않도록 보험사와 자문의의 부당한 공생 관계가 조속 근절돼야 한다.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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