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8.1.22 월 18:27
HOME 연재
한종해 기자의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04. 장진호와 진로그룹
탐욕으로 무너진 ‘두꺼비 신화’
(위) 1971년 8월 2일 경향신문 1면 지면광고. 사진=경향신문 갈무리, (아래) 진로소주 로고 변천사.
A는 B와 같다. C는 C다. 그렇다면 AC는 BC와 같아야 한다. 예외는 있다. 진로와 참이슬이다. 진로는 ‘참 진’자에 ‘이슬 로’자를 쓴다. 고로 진로는 참이슬이다. 소주는 소주다. 그렇다면 진로소주는 참이슬소주여야 하지만 아니다. 오류 발생의 이유는 무너진 진로그룹에서 찾을 수 있다. 아버지가 일궈 놓은 ‘두꺼비 신화’는 아들의 오판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판의 주인공은 캄보디아인 ‘찬삼락’이다. 찬삼락의 또 다른 이름은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다.

▲두꺼비가 울고 있다

“빨간 거 주세요~.” 필자가 술자리에서 주문을 할 때 가끔 하는 말이다. 중학교를 올라가고 아버지께 처음 술을 배울 때 접했던 소주가 23도짜리 ‘참이슬’이었기에 파란색 달팽이가 그려져 있는 현재의 18.5도짜리 참이슬보다 20.1도의 참이슬 클래식이 입맛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주당’들이 찾는 소주는 따로 있다. ‘진로골드’(25도)다. ‘빨간 두꺼비 진로’를 연상시키는 쓴 소주를 찾는 이들 덕에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두꺼비 소주’ 신화 진로는 1924년 10월 평안도 용강군에서 진천 양조상회라는 이름으로 장학엽 진로그룹 창업주에 의해 시작됐다. 진천양조상회의 심벌은 ‘원숭이’였다. 평안도 지방에서는 원숭이가 복을 상징하는 영특한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원숭이 좌우로는 쌀이 있어서, 쌀로 빚은 복주를 마시면 복을 누리며 장수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진로소주 로고 변천사. 사진=하이트진로 누리집 갈무리

장 창업주는 1950년 12월 월남에 1년 뒤 부산 동화양조, 1952년에는 부산 구포양조를 설립했다. 1954년, 장 창업주는 고향과 부산에서의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서광주조를 차렸다. 원숭이가 ‘두꺼비’로 바뀐 때가 이때다.

장 창업주는 1961년 진로그룹의 최초 계열사인 서광산업이라는 피혁회사를 설립하고 회장직에 올랐다. 진로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은 1966년. 서광주조는 1966년 진로주조로 상호를 변경했다가 1975년 진로로 상호를 바꿨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소주 업계는 전남 목포에 기반을 둔 삼학소주가 장악하고 있었다. 한때 65%가 넘는 전국시장점유율을 보이기도 했던 삼학소주가 진로에게 위협받기 시작한 것은 1965년 진로가 생산방식을 증류식에서 희석식으로 전환하면서부터다.

▲소주, 어떻게 만들어 지는 지 아세요?

소주는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로 나뒨다. 증류식 소주는 ‘받은 술’ 또는 ‘내린 술’이다. 알코올의 끓는점은 78도, 물의 끓는점은 100도로 차이가 나는 점을 이용해 만든 술이다. 물과 알코올의 발효액을 78도로 가열해 빠져나온 알코올을 차게 식히면 다시 알코올이 된다. 이것이 바로 증류식 소주다. 서양의 위스키는 보리나 밀, 옥수수 등으로 빚은 술을 증류한 것이고, 브랜디는 포도주를, 보드카는 감자술을, 럼은 사탕수수 당밀주를 증류한 것이다. 원래 술에 들어있던 향기가 알코올과 함께 증류되기 때문에 매우 향기롭다. 향기로만 취한다는 술이 바로 증류식 소주다.

(왼쪽부터) 1924~1950 진로, 1955~1961 진로, 1962~1965 진로, 1965 진로, 1967~1974 진로, 1984~1994 진로, 1996~2001 소주, 1998~2002 진로골드. 사진=하이트진로 누리집 갈무리
(왼쪽부터) 1998~2001 참이슬, 2001 참이슬 포켓용, 2001 진로골드, 2001 참이슬, 2002 참이슬, 2006 참이슬, 2006 참이슬 fresh, 2007 참이슬 fresh. 사진=하이트진로 누리집 갈무리

희석식 소주는 고구마나 타피오카, 쌀보리 등 값이 저렴한 원료를 발효시켜 정제한 주정 즉, 에틸알코올에 물과 조미료, 향료 등을 섞어 만든 술이다. 저렴한 재료로 주정을 만들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는 얘기가 있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라고 한다. 알코올을 가장 순수한 상태가 될 때까지 증류하기에 뒤끝이 깨끗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향기는 없다. 있어도 가미한 인조 향이다.

‘캬~’소리를 내는 이유도 다르다. 증류주는 식도를 타고 내려간 알코올과 향이 다시 입을 통해 나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캬~’소리를 낼 수밖에 없지만 희석주는 쓴 맛을 털어내기 위해 ‘캬~’소리를 낸다. 소주를 마시고 바로 안주를 먹는 이유다.

가격은 당연히 희석식 소주가 더 싸다. 진로는 마케팅·광고활동 강화 등으로 삼학의 독무대였던 소주시장을 무서운 속도로 파고 들어갔다. 여기에 1971년 삼학소주의 납세증지 위조사건이 발표되면서 진로는 날개를 달았다. 삼학소주는 세금 체납 혐의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받았고,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었다. 삼학소주를 취급하던 대리점은 등을 돌렸고 매출은 감소했다.

마침내 1970년 12월 진로는 소주 시장 1위를 차지하면서 한국의 대표 주류회사로 자리를 잡았다.

(왼쪽부터) 2009 참이슬 Original, 2009 참이슬 fresh, 일품진로 2010, 2012 참이슬, 참이슬 클래식, 진로골드, 일품진로 2013, 2014 참이슬. 사진=하이트진로 누리집 갈무리
(왼쪽부터) 참이슬 클래식, 참이슬 16.9, 2015 참이슬, 참이슬 클래식, 일품진로 2015, 참이슬 fresh 크리스마스 에디션, 진로골드, 참이슬 제주. 사진=하이트진로 누리집 갈무리

하지만 진로는 1985년 장 창업주가 사망하기 전인 1984년 11월에 불거진 경영권 분쟁으로 일대위기를 맞았다. 이미 경영권 분쟁은 1975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장 창업주가 자신의 5형제 가운데 둘째인 학섭씨의 장남 익용씨에게 그룹을 맞길 때부터 예고돼 있었다. 장 창업주의 아들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당시 나이 23세로 경영을 맡기에는 어린나이였기 때문이다. 익용씨는 ㈜진로 사장, 진로위스키 회장, ㈜서광 사장을 역임하면서 실질적인 회장직을 수행했다.

1984년 말, 장 창업주가 병환이 심해지자 장 전 회장과 그의 이복형 봉용씨는 익용씨에게 이제 경영권을 넘겨줄 때가 됐다고 말했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이에 장 전 회장은 익용씨 몰래 주식을 매입하고 우호지분을 끌어 모아 1985년 10월 주총에서 경영권을 손에 넣게 됐다. 그의 나이 33세 때의 일이다.

이후 익용씨는 ㈜서광을, 봉용씨는 소주 원료를 생산하는 진로발효를, 장 전 회장은 진로그룹을 맡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그리고 진로그룹이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술 만드는 회사가 광고·유통·제약·건설 등에 눈독을 들였다. 1988년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장 전 회장은 대놓고 ‘탈주류’를 선언했다.

▲무리한 사업 다각화 “술 취한 장진호”

진로그룹은 1980년대 후반에만 종합광고업체인 새그린을 비롯해 연합전선, 진로위스키, 진로종합유통, 진로백화점, 진로제약, 진로건설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1991년에는 수출입 전문회사 JRI를 설립하고 식품회사인 펭귄과 진로음료를 합병해 진로종합식품으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한국터미널과 진로유통을 합병해 진로종합유통을 설립했다.

1971년 8월 2일 경향신문 1면 지면광고. 사진=경향신문 갈무리

1992년에는 진로쿠어스 맥주를 설립해 1994년 ‘카스’를 생산 개시했으며 영국 그랜트와 합작해 위스키 시장에 진출했다. 중국 북진그룹과 합작으로 총 20억 달러 규모의 종합빌딩 타운 개발사업에도 진출했고, 청주 제2백화점 착공, 홈비디오와 멀티미디어 사업에도 나섰다. 1996년 말 기준 진로그룹은 총 24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순위 19위의 재벌로 급부상했다.

이러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진로는 계열사들에게 출자금, 대여금 등으로 엄청난 자금을 지원했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1997년 초부터 진로는 자금 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해 4월 기준 진로그룹의 부채총액은 은행권 1조2000억원, 제2금융권 2조5000억원 등 총 3조7000억원에 달했고 자기자본비율은 4.34%에 불과했다. 24개 계열사 중 10여 개사가 적자였다.

위기 탈출을 위해 진로는 트럭터미널과 남부터미널, 아크리스백화점 청주 진로백화점 등 계열사들을 대거 처분해 총 1조2000억원을 마련해 구조조정자금으로 사용키로 했고, 상업은행과 서울은행에 추가융자를 요청해 각각 600억원, 400억원을 빌렸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계열사와 부동산 매각은 쉽지 않았고 은행들은 추가지원을 거부했다.

이렇게 되자 정부가 나섰다. 강경식 당시 부총리는 막 구상단계에 있던 부도방지협약을 적용, 진로 살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완성되지 않았던 부도방지협약은 은행권보다 제2금융권의 대출비중이 높은 기업의 경우 제2금융권이 부도 방지 협약으로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고, 이를 의식한 제2금융권이 대출회수에 나서게 되면 오히려 부도를 촉진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진로그룹은 여기에 딱 들어맞았다.

예상대로 채권은행들은 진로그룹의 모든 어음 지급을 동결하고 긴급자금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제2금융권은 경쟁적으로 어음을 돌려 자금을 회수하려 했다. 마침내 진로는 1997년 4월21일 조흥은행 서초동지점에 돌아온 어음 213억원과 상업은행 서초동지점에 지급 제시된 당좌수표 83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되고 말았다. 이후 채권단에 의해 화의 인가 결정을 받았지만, 결국 2003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진로그룹의 계열사들은 청산절차를 밟거나 타사에 인수되거나 일부 사업부문이 양도되는 형식을 뿔뿔이 흩어졌다. 주력 기업인 진로는 하이트그룹에 인수되어 하이트진로그룹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진로건설은 대우조선해양에 인수되어 대우조선해양건설로 새롭게 태어났다.

진로쿠어스맥주는 OB맥주에 인수되었다가 OB맥주 또한 구조조정 차원에서 폴란드 인터브루사에 지분을 넘겨 실질적 소유권은 외국의 다국적 맥주회사로 넘어간 상태다. 진로엔지니어링은 LG그룹으로 넘어가 LG ENC로 새출발했고 청주진로백화점과 진로하이리빙은 개인 소유로 넘어갔다. 기타 계열사들은 대부분 청산됐다.

▲훈마나-장진호 수상한 밀월관계

2003년 9월 자신이 소유하던 진로 주식 119만9474주(8.14%)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고 경영권에서 물러난 장 전 회장은 5496억원을 사기 대출받고 비자금 7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수차례 재판 끝에 장 전 회장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2005년 2월 가족들과 함께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그 직후 다른 비자금 건으로 검찰의 수배를 받았다.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사진=MBN 화면 갈무리

당시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이미 2002년 ‘찬삼락’이라는 현지 이름을 취득한 상태로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캄보디아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에서 ‘ABA은행’을 운영했다. ABA은행은 지난 1996년 진로그룹에 의해 설립된 은행으로 현지에서는 ‘한국의 은행’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 은행은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채권단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장 전 회장은 은행 뿐 아니라 부동산 개발회사, 경견장, 스몰카지노, 단란주점까지 손을 댔다. 금융 브로커로 알려진 김재록씨와 함께 소주회사를 설립하는 ‘55 프로젝트’도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현재 세금 미납액과 각종 금융 기관의 체납액, 벌금 등 수백억원이 넘는 빚이 있다. 그럼에도 장 전 회장이 아무 제약 없이 현지에서 사업을 벌일 수있었던 것은 훈센 총리의 장녀 훈마나의 비호 덕분이었다. 훈마나는 캄보디아에서 정치권력은 물론 언론까지 장악하고 있어 장 전 회장은 훈마나와 모종의 거래관계를 맺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은 ABA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탈세를 하는 등 ‘먹튀’ 전략을 쓰는 바람에 캄보디아 관리들에게 신뢰를 잃어 그는 현재 캄보디아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간 상태다.

2013년 2월에는 장 전 회장이 중국 북경 왕진 소재에 체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은 이곳에 머물면서 중국인 사장을 앞세워 게임 업체 이다양광에 투자, 운영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의 근황을 보도한 언론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이 투자한 이다양광 게임사에서 게임 개발에 착수했던 개발자들이 몇 개월 동안 임금이 지급되지 않아 국내로 복귀하는 일도 있었다. 장 전 회장은 중국 게임업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에 투자를 하고 현지인 법인을 통해 회사를 운영하다가 2015년 4월 중국 베이징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 남아있는 장 전 회장의 가족들은 탄탄한 재력을 자랑하고 있다. 2011년 사망한 장 전 회장의 이복형인 장봉용 전 진로발효 회장의 부인 서태선씨는 27.39%의 진로발효 주식을 보유해 최대주주에 올라있으며 2013년 2억6000만원을 배당받아 여성 배당부자 7위에 올랐고 자녀 진혁씨와 진이씨는 각각 18.26%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2016년 1210원의 배당으로 이들 모자는 58억원 이상을 챙겼다.

<진로그룹은?>
▲1924년 진천양조상회 설립
▲1954년 서광주조(진로) 설립
▲1970년 소주시장 1위
▲1985년 장학엽 창업주 사망
▲1988년 장진호 회장 취임
▲1980년대 새그린, 연합전선, 진로위스키, 진로종합유통, 진로백화점, 진로제약, 진로건설 인수 및 설립
▲1990년대 초 진로쿠어스맥주, 진로베스토아, 진로종합식품, 진로인터스트리즈, 여성전문 케이블 텔레비전, 진로하이리빙, 진로지리산샘물 등 계열사 확장
▲1997년 부도
▲1998년 화의 인가 결정
▲2003년 4월 이후 법정관리, 계열사 매각 및 청산

한종해 기자  hjh@ftoday.co.kr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종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