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수장이 아니라 스캔들 메이커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의 수장들이 잇단 잡음으로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

현재 전경련을 이끌고 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최근 검찰에서 효성 관련 비자금 의혹 수사를 벌이면서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임기를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같은 의혹이 불거져 나왔기 때문에 수사 향방에 따라 조 회장의 연임 여부 또한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 회장에 앞서 전경련 수장직을 맡았던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역시 재임 당시 회사의 경영권을 두고 부자(父子)가 난을 벌여 눈총을 받은 바 있다. 강 회장은 더욱이 부인과 황혼이혼, 재산분할 등을 두고 소송을 벌이기도 해 전경련 회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2003년 2월부터 10월까지 전경련 회장이었던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은 재임 시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손 전 회장은 최근 SK텔레콤의 명예회장으로 복귀, 재계 안팎에서 이런저런 뒷말을 낳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초 검찰이 효성그룹 계열사인 효성건설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한 수사를 벌일 당시 조 회장은 “비자금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검찰이 최근 효성건설이 수십억원 대의 비자금을 만든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자 재계 안팎의 시선이 조 회장에게로 쏠려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문무일 부장검사)는 효성건설에서 일정기간 출처나 용처를 알 수 없는 자금 명세가 적힌 수첩을 확보, 60억~70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이 조성된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로 조성된 비자금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찰이 확인 중이지만 현재까지는 비자금 규모가 100억원대에 이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조 회장, 효성 비자금 수사 속도에 연임 불투명

검찰은 효성건설이 대형 공사에 들어가는 인건비나 자재비를 과다 계상하는 방법으로 수십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판단, 송형진 전 효성건설 사장 등의 관계자들을 수차례 소환조사해 경위를 파악 중이다. 검찰은 앞서 지난해 12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전직 효성건설 자금관리 담당 직원 윤모 씨를 통해서도 자금의 규모와 흐름 등을 파악하고 있다.

검찰 수사를 둘러싼 관심사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비자금 조성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그룹 차원에서 비자금을 관리했는지 여부다. 현재까지는 송 전 사장이나 윤씨가 조 회장의 연관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효성그룹 측 관계자 역시 “각 사업부문은 ‘부문장’ 책임경영체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조 회장이 모든 사항을 일일이 파악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검찰은 효성이 1999년부터 최근까지 한국전력에 절연장치 부품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일본 현지법인을 통해 부품 수입 단가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300억원을 과다청구한 혐의(사기)로 12일 효성중공업PG의 김모 전무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과다청구된 자금이 회사 공식 계좌로 입금됐기 때문에 김씨에게는 횡령이 아닌 사기 혐의가 적용된다”고 밝혔다. 그룹 차원의 비자금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검찰의 효성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가 이처럼 구체화되면서 재계 안팎에서는 전경련 수장으로서의 조 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려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인 조 회장은 재계의 목소리를 정부에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경련 회장 연임 가능성이 높게 제기돼 왔다. 그러나 당초 비자금 조성설을 강하게 부인하던 조 회장의 말과 달리 검찰이 이처럼 비자금 정황을 포착하면서 연임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다음달 19일 전경련 총회 전까지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조 회장의 대외 활동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 회장은 또 아들이자 이 대통령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이 주가조작 혐의로 1년 가까이 수사를 받고 있는데다, 제2롯데월드 신축과 관련, 전경련이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바 있어 조 회장에게는 악재가 되고 있다. 

지난 12일 이상희 국방장관은 서울공항의 활주로 이전과 관련해 “지난해 4월 전경련에서 청와대에 건의를 해 그 이후 내부적으로 검토했다”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밝혔다. 15년 가까이 2롯데월드 건축에 반대 입장을 고수해 온 정부가 서울공항의 동편 활주로를 이전을 조건으로 롯데월드 신축에 찬성한 결정적인 이유가 전경련의 입김에 있었다는 얘기. 

제2롯데월드 건축과 관련, 국가 안보가 걸린 중대 사안까지도 ‘친기업’ 논리로 접근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고, 정부의 롯데그룹에 대한 ‘특혜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인지라 전경련의 이 같은 행보 또한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재계에서는 조 회장이 이처럼 안팎으로 구설수에 오르면서 ‘친기업 정부’ 등장과 함께 강화돼야 할 전경련의 위상이 오히려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강신호·손길승 전 회장 등 임기 중 물의 잇따라

조 회장에 앞서 전경련을 이끌었던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역시 임기 중 잦은 물의를 일으켜 눈총을 받았다.

강 회장은 특히 동아제약 경영권을 둘러싸고 아들과 갈등을 벌이는가 하면, 부인과 황혼이혼 소송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등 ‘집안문제’를 일으켜 전경련 수장으로서의 자격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 2006년부터 본격화된 강 회장과 차남 강문석 수석무역 대표 간의 경영권 분쟁은 지분경쟁과 소송으로까지 비화되며 사상초유의 진흙탕 싸움을 보여줬다.

당시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은 부자 간 싸움이었던 것과 동시에 강 회장의 첫째부인 소생인 강 이사와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강정석 사장, 즉 이복형제간 다툼이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은 지난해 말 강 이사가 동아제약 지분을 모두 내놓으며 마무리됐지만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더욱이 강 회장은 이 과정에서 첫째 부인이었던 박모씨로부터 황혼이혼 소송까지 당해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박씨는 강 회장의 ‘외도’를 문제 삼아 2006년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냈다.  

국내 제약업계를 이끄는 동아제약의 회장이자, 전경련 수장을 맡고 있던 강 회장 가족의 부도덕한 분쟁은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강 회장 본인은 물론 전경련의 위상까지도 추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강 회장은 또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 당시 회사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배임 행위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지난해 검찰의 내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은 강 회장이 2007년 7월 해외 조세회피지역에 설립한 자산유동화회사 DPA와 DPB 두 곳에 자사주 74만8000여주를 매각한 뒤 이 업체를 통해 교환사채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배임행위가 있었다는 첩보를 받고 은밀히 내사를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2003년 2월부터 10월까지 28대 전경련 회장을 지낸 손길승 전 SK회장 역시 재임 기간 분식회계와 불법 정치자금 제공 등의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이로 인해 손 전 회장은 전경련 수장으로 선출된 지 불과 8개월 여 만에 중도 사퇴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손 전 회장은 2003년 3월 SK글로벌 분식회계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재계 안팎에서는 전경련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대외적인 위치를 감안해 ‘불구속’선에서 마무리 된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다.

다행히 분식회계 건은 불구속 기소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그 해 10월 손 전 회장은 또 다시 SK해운의 비자금 조성과 불법 정치자금 제공 혐의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몇 차례의 검찰 소환조사 결과 조성된 2천억원의 SK해운 비자금 가운데 100억원 가량이 정치권에 유입된 사실이 확인돼, 손 회장은 재계와 정치권을 한바탕 흔들어놓은 장본인이 됐다.

당시 전경련은 불법정치자금 제공 거부와 투명경영 등 자정선언을 발표하며 이미지 쇄신에 한창이었는데, 전경련을 이끌고 있던 손 전 회장이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자 그의 ‘자격시비’ 논란과 함께 재계의 위상 추락 또한 불가피했다.

결국 손 회장은 전경련 회장직을 내놓고 SK그룹 경영에서도 물러난 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구속기소 돼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가 올 8.15 광복절 특사로 사면됐다.

한편 손 전 회장은 최근 SK텔레콤의 명예회장으로 추대, 재계에 복귀하며 이런 저런 뒷말을 낳기도 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손 회장의 뛰어난 위기극복 능력이 SK그룹의 발전에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과 함께, 불미스런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물러난 손 전 회장이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그룹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손 회장의 복귀가 향후 그룹 내 역학구도에 미묘한 파장을 던질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실제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형인 최신원 SKC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손 전 회장의 명예회장 복귀에 대해 “손 전 회장의 역할은 후배 경영인들을 지켜봐주는 정도여야 한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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