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

[파이낸셜투데이=이한듬 기자]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한 임광토건(회장 임광수)의 뒤통수가 요즘 무척이나 따갑다.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기 직전 이뤄진 계열사와의 수상한 자금흐름이 뒤늦게 발각되면서 의혹의 눈초리가 온통 임광토건에게로 쏟아지는 까닭이다. 특히 금융권에 수천억여원에 달하는 채무를 갚지 못하고 있는 임광토건이 채권은행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독단적으로 내부적인 자금거래를 단행했다는 점에서 관련 은행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석연치 않은 임광토건의 자금흐름을 <파이낸셜투데이>가 따라가 봤다.

 

▲ 임광토건 임광수 명예회장
올 3월 유상증자로 발행한 상환우선주, 기업회생절차 신청 전 조기상환
계열사에 넘어간 자금 1,000억원 이상 추정…채권단들도 까맣게 몰라

지난 24일 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으며 부활의 첫 걸음을 내디딘 도급순위 40위의 중견건설사 임광토건이 ‘모럴헤저드’ 논란에 휩싸였다. 올 초 3년 만기로 발행한 상환우선주를 기업회생절차 신청 전인 지난 8월 미리 상환해 1,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계열사로 빼돌린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임광토건은 채권단과 아무런 협의를 거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상환우선주, 5개월 만에 조기상환

관련업계에 따르면 임광토건은 지난 3월 상환우선주 60만주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극도로 악화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임광토건은 지난 2009년부터 대량의 미분양 발생과 입주지연 등의 악재가 겹치며 재무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 때문에 올 초부터 여주 소재 그랜드CC 골프장 등 주요 회사 자산을 매각하는 한편 대규모 구조조정과 보유 주식 처분 등을 통해 자산 유동화 작업에 들어갔다.

유상증자 역시 그 일환으로 진행됐다. 주력사업인 건설부문의 매출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차입금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부담을 덜기 위한 시도였다. 당시 증자에는 임광토건의 계열사인 임광개발과 동신건설산업, 임광수 명예회장이 참여했는데, 이들이 배정받은 주식 수는 각각 7만3,000주, 49만5,000주, 3만2,000주다. 상환 만기일이 3년 후인 해당 우선주의 한 주당 발행가격은 19만6,000원씩으로, 이 증자를 통해 임광토건에 유입된 신규자금은 총 1,176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임광토건은 유상증자를 실시한지 불과 5개월만인 지난 8월 말, 두 차례에 걸쳐 60만주 가운데 47만408주를 조기 상환했다. 발행가액 기준으로 하면 921억원이지만, 우선주에 배당금을 붙여 갚는 ‘이익소각’을 했기 때문에 관련업계에서는 약 1,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계열사와 임 회장에게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채권단도 까맣게 모르게

그런데 우선주 조기상황은 채권단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임광토권 채권은행의 한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임광토건이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이후에야 (조기상환한 사실을) 알게 됐다”라고 허탈해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채권은행이 임광토건으로부터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는 뼈있는 농담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임광토건은 최근까지 채권은행과 PF 대출 연장을 놓고 협상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임광토건 금융권 채무액 규모는 2011년 10월 말을 기준으로 대출금이 1,800억원, PF보증채무가 7,400억원으로 총 9,220억원에 달한다.

그렇다면 자금난에 시달리던 임광토건이 우선주 상환 대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었을까. 업계에서는 지난 7월 사옥을 매각해 유입된 1,500억원이 이번 상환에 투입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약 1조원 가량의 천문학적 액수의 금융권 채무를 갚지 못해 대출을 연장하겠다며 협상을 벌여오던 기업이, 자금 확보의 일환으로 자산을 매각해 생긴 돈을 채무 상환이 아닌 계열사의 우선주 상환에 채권단 몰래 사용해 버린 셈이다.

더 황당한 상황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우선주를 조기 상환한지 3개월도 채 안된 지난 17일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것이다. 채권단 측은 임광토건이 애초부터 유상증자라는 액션을 취해 워크아웃 지정을 피하고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기로 작정했던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임광토건의 모럴헤저드가 도마 위에 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투데이>는 임광토건 측과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끝내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현 경영진, 법정관리인 선임해선 안돼”

이런 가운데 채권단은 임광토건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직후 법원에 현 경영인들을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대표채권자로 선정된 국민은행을 통해 법원에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법원으로 넘어간 이상 채권단은 판결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며 “법원이 임광토건의 자금흐름에 대한 의혹을 추궁해 적절한 판단을 내리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 24일 임광토건의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하면서 현 경영진을 관리인으로 선임했다. 다만 채권자협의회가 회생절차에 주도적·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감독할 수 있도록 임광토건에 채권단이 선정한 자금관리위원을 파견해 매일 자금수지 등을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임광토건이 채권자협의회 추천 인사를 계약직 구조조정담당임원으로 위촉, 회생절차와 관련된 업무를 사전 협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채권단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법원이 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이를 바꾸긴 힘들다”며 “앞으로 협상에서 최대한 채권단의 의견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법원은 임광토건과 채권단의 협의가 원활히 진행되면 내년 5월말 경 회생절차가 종료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먼저 다음달 13일까지 채권자목록 제출받아 내년 2월3일 1차 관계인집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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