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파이낸셜투데이=이한듬 기자] SK그룹 형제경영에 급제동이 걸렸다. 올 초 불거진 최태원 회장의 선물투자 손실 의혹과 그의 친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검찰의 칼날이 이들 형제의 심장을 후벼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최 회장에서 최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형제경영’에 본격적인 가속페달을 밟았던 두 형제에게 말 그대로 벼랑 끝 위기가 찾아온 셈이다. 이런 와중에 재계 일각에서는 그간 SK그룹 경영을 양분(?)하고 있던 최신원 SKC 회장의 향후 행보를 주목하면서 SK가(家)의 분위기는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그의 친동생 최재원 그룹 수석부회장(오른쪽)
형 최태원 SK 회장은 ‘선물투자 의혹’,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비자금 의혹’
두 오너 형제 위기 속 계열분리 의지 밝혀온 사촌 최신원 SKC 회장 행보 주목

사정당국의 활시위가 SK그룹을 겨냥했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이날 오전 6시30분부터 서울 서린동에 위치한 SK그룹 본사 내 SK홀딩스와 SK가스 사무실에 수사관 20여명을 투입, 회계장부와 금융거래 자료 등을 확보하는 등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은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을 둘러싼 비자금 조성 의혹의 정황을 포착하면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 새벽부터 오후까지 계속된 수사관들의 고강도 수색에 SK측은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게 재계의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SK형제를 둘러싼 비리 의혹은 올 초부터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형 최태원 회장 둘러싼 선물투자 손실 의혹

앞서 지난 4월 최 회장이 선물옵션 상품에 5,000억원을 투자했다가 1,000억원 이상의 손해를 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자의 목적과 자금 출처 등에 대한 숱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최 회장은 선물투자 손실을 인정하면서도 범법 행위는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검찰이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단서를 잡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글로웍스 주가조작혐의로 지난 5월 구속 기소된 창업투자사 베넥스인베스트먼트 김준홍 대표를 조사하던 검찰이 뜻밖에도 최 회장과 관련된 의혹의 꼬리를 잡아낸 것이다.

베넥스는 18개의 SK계열사가 2,800억원을 투자해 지난 2006년에 설립된 회사로, 구속 기소된 김 대표는 SK 전 임원 출신이자 최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검찰은 SK계열사들이 베넥스에 출자한 금액 가운데 1,000억여원이 자금세탁을 거쳐 최 회장의 선물투자에 유용됐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최 회장에 대한 물밑수사를 진행해 오다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본격적인 공개수사를 단행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사건을 수면위로 끄집어 낸 이유가 확실한 물증을 잡아냈기 때문 아니냐는 시각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해외 출장 중이던 최 회장은 압수수색이 진행된 날 오후 급거 귀국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검찰은 한 달 안에 모든 수사를 끝내겠다고 선포하며 수사에 한층 속도를 내고 있다.

비자금 조성 의혹 받는 아우 최재원 부회장

검찰의 칼 끝은 비단 최 회장 뿐만 아니라 그의 친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에게도 향해 있다. 앞서 검찰은 최 부회장이 그룹 계열사의 사업 추진 과정에서 사업 시행사를 통해 돈을 돌려받는 등의 수법으로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 지난 7월 최 부회장에 대해 출국 금지 조치를 내리고 관련회사들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그런데 최 부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도 베넥스 김 대표가 연루돼 있다. 김 대표의 개인 금고에 최 부회장의 명의의 수표 173억원이 보관돼 있었던 것. 이 때문에 검찰은 최 부회장이 조성한 비자금을 김 대표에게 위탁해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해 왔다.

물론 SK그룹 관계자는 당시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최 부회장 개인의 돈인 것으로 알고 있고, 회사 자금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며 “만약 그 돈이 부정한 방법으로 조성된 것이었다면 추적하기 쉬운 수표로 흔적을 남겼겠느냐”라고 반박했지만, 검찰은 현재 혐의 입증을 확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검찰은 금고 속 수표 외에도 최 부회장이 김 대표와 짜고 SK 계열사들이 베넥스에 투자한 자금 중 1,000억∼2,000억원 가량을 횡령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렇게 마련된 돈이 형인 최 회장의 개인 선물투자에 사용됐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 최태원 회장의 사촌이자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아들 최신원 SKC 회장
위기의 형제 속 기회 잡은 사촌?

이처럼 검찰이 수사의 강도를 높이면서 올해 들어 ‘형제경영’에 속도를 내온 최태원 회장-최재원 부회장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최 회장은 올 초 부회장단을 결성해 최 부회장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부회장단을 동생인 최 부회장에게 맡김으로서 본격적인 형제경영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두 형제 모두 나란히 검찰의 사정칼날 위에서 위태로운 상황을 연출하자, 일각에서는 SK그룹을 이끌어온 또 다른 한 축인 최신원 SKC 회장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형제를 주목하고 있다.

현재 SK그룹은 창업주 고(故) 최종건 회장의 두 아들인 최신원 SKC 회장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최종건 회장의 동생 고(故) 최종현 회장의 두 아들인 최태원 그룹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으로 나뉜 ‘사촌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이 검찰의 칼끝에 나가떨어질 경우 사촌경영의 축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일각의 전망이다.

더구나 최신원 회장은 그간 지속적으로 계열분리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올해 초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뿌리 찾기와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SK그룹도 이제는 사촌간 계열 분리를 할 때가 됐다”고 직접적인 뜻을 밝히기도 했고, 동생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과 함께 지난해부터 SK케미칼-SK가스-SK건설 지분을 모으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여 왔다. 이에 따라 이번 검찰의 수사로 사촌간 계열분리가 앞당겨 질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SK그룹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며 “계열분리 가능성은 전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한편, SK는 최근 지주회사가 금융자회사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위반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SK증권 주식을 보유 중인 SK네트웍스에 50억8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정위는 또 보유 중인 SK증권 주식을 1년 내에 모두 매각하라고 명령했으나,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이 지나치게 낮아 사실상 봐주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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