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경선후보가 3일 오후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수도권·강원·제주 선출대회에서 정견발표를 위해 무대에 오르며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일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된 가운데, 문 후보의 ‘대권 재수’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문 후보는 1953년 피란민 출신으로 경남 거제에서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계란행상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975년 4월 경희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유신반대 학내 시위를 주도한 후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바쳤습니다. 제대 후 복학해 사업시험 2차를 치르고 1979년 합격자발표를 앞둔 시점에 시위 참여를 이유로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가 이곳에서 사시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위 전력 탓에 판사는 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당시 국내 최대 대형로펌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부산에서 노무현 변호사와 동업의 길을 택했습니다. 두 사람의 법류사무소는 부산‧울산‧창원‧거제 등 지역 노동인권사건을 총괄했고, 그는 자연스레 재야운동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1987년 부산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상임집행위원을 맡아 6월항쟁을 주도한 게 대표적 사건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부산선대위원장을 맡은 문 후보를 향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극찬했습니다. 문 후보가 노 전 대통령에게 ‘영원한 비서실장’이라기보다는 ‘영원한 친구’에 가깝다는 얘기입니다.

그는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청와대에 입성했습니다. 재직 초기 과로와 스트레스로 10개의 이가 빠져 임플란트를 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는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역임한 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011년 야권통합의 기치를 내건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로 합류하며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됩니다.

2012년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그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선출됐습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를 이룬 문 후보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양자대결을 펼쳤지만 3.6%p 차이로 패배했습니다.

문 후보는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선거에서 박지원 의원과 맞붙어 3.5%p 차이로 승리를 거뒀지만 4‧29 재보선에서 패배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후 안철수 의원에서 혁신위원장과 문‧안‧박 연대(문재인‧안철수‧박원순)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고, 안 의원이 ‘친문패권주의’를 비판하며 새정치연합을 탈당하면서 정치적 결별 수순을 밟았습니다.

이후 비문재인계 의원의 탈당이 이어졌고,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로 접어들자, 문 후보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대위원장에 앉히고 대표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김병관‧김병기‧김정우‧박주민‧문미옥‧조응천‧표창원 의원, 양향자 최고위원 등이 영입되면서, 분위기 반전이 시작됐습니다.

문 후보는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친문재인’ 인사를 대거 지도부에 당선시키며 대선을 향한 탄탄대로를 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3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자 수도권·강원·제주 선출대회에서 민주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되며 본선 무대에 올랐습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