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 기술도 특허?

[파이낸셜투데이=이한듬 기자] 요즘 재계에서는 귀뚜라미그룹 최진민(70) 회장 일가가 보유한 특허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난방장치와 관련한 특허 수가 무려 수백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최 회장이 이를 통해 편법적으로 자식들에게 부를 대물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이들의 특허가 직접 개발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어 ‘금탑산업훈장’에 빛나는 최 회장의  위상에 금이 가고 있다.  

▲ 귀뚜라미그룹 최진민 회장.
최진민 회장 및 두 아들, 난방장치 관련 수백여건 특허 ‘개인명의’ 소유
회사로부터 10년간 기술사용료 286억원 지급받아…‘편법증여’ 의혹 대두

최진민 귀뚜라미그룹 회장이 특허를 통해 자녀들에게 편법적으로 부를 증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6일 보도자료를 통해 최 회장 일가의 수상한 특허 소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허개발 능력도 유전?

최 회장은 과거부터 난방장치에 대한 특허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온 인물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보일러 분야에서 220여건의 특허와 실용신안을 보유해 왔다. 특허와 실용신안의 독점권은 각각 20년, 10년인데, 시간이 흘러 소멸된 것을 제외해도 최 회장은 아직 96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최 회장이 특허를 많이 보유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공학박사 출신’이라는 남다른 이력이 한 몫 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최 회장은 이런 실력을 바탕으로 지난 1962년 회사를 설립한 이래 50년간 난방산업에 대한 기술 발전을 주도해 왔고, 지난 2009년에는 그 공로와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기술대상 시상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런데 최 회장의 두 아들이 보유한 특허에는 의구심이 발생한다. 이정희 의원에 따르면 최 회장의 장남 성환(33)씨는 대학시절 보일러와 무관한 ‘철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20살 때인 1998년 ‘보일러의 순간수압 평형장치’의 특허를 취득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보일러에 관련된 특허를 24건이나 확보했다.

차남인 영환(30)씨도 마찬가지로 19세 미성년자였던 2000년부터 출원인으로 ‘벽걸이형 가정용 온수보일러’, ‘온돌 난방용 배관호스’ 등의 특허를 등록하기 시작해 현재 총 19건의 특허권을 갖고 있다.

▲ 지난 2006년 최진민 회장의 차남 영환씨가 출원한 ‘보일러용 열교환기 및 연관’ 특허의 등록정보. 이 특허의 발명자는 최 회장이지만 권리인은 영환씨로 돼 있다.
개발은 아버지가, 수익은 아들에게

이처럼 최 회장의 두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난방장치에 대한 특허를 가질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관련업계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최 회장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난방장치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특출한 능력을 갖추게 됐을 수도 있지만, 이들이 보유한 특허를 면밀히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특허기술에 대한 발명자는 최 회장이면서도 정작 해당 기술에 관한 권리자는 아들로 된 특허들도 있다. 지난 2006년 4월 특허청에 등록을 신청한 ‘보일러용 열교환기 및 연관’과 ‘보일러 공급관 연결구조’가 그 예다. 이 두 가지 특허의 발명자는 최 회장이다. 하지만 출원인은 차남인 영환씨로 돼 있다. 두 특허는 각각 2007년 2월과 9월에 등록이 완료됐는데, 이 기술에 관한 권리자 역시 영환씨로 돼 있다.

이에 대해 특허청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보통은 기술 발명자가 특허를 출원하기 마련인데, 만약 발명자와 출원자가 다를 경우 등록 직후의 권리자를 살펴야한다”며 “등록된 이후 특허의 권리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 바로 해당 기술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갖기 때문에 로얄티 역시 권리자가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아버지인 최 회장이 개발한 기술로 정작 그 수익을 얻는 사람은 그의 아들이라는 설명이다. 최 회장이 특허를 통해 편법적으로 아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힘을 얻는 대목이다.

회사 이익 편취?

문제는 이 같은 특허들이 대부분 법인 소유가 아닌 최 회장과 그의 두 아들 개인 소유라는 점이다. 귀뚜라미의 경쟁사인 경동나비엔과 린나이코리아는 각각 324개, 808개의 특허와 실용신안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이 법인 명의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귀뚜라미의 최 회장 일가는 개인이 특허를 소유하면서 회사로부터 특허기술에 대한 로얄티를 지급받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시된 귀뚜라미와 귀뚜라미홈시스, 귀뚜라미가스보일러 등 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매년 수십여억원에 달하는 사용료를 최 회장에게 지급하고 있다. 최 회장이 계열사로부터 거둬들인 특허에 관한 사용료는 지난 10년간 무려 286억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 이정희 의원은 “사실상 귀뚜라미 법인이 소유해야할 특허권을 총수 일가가 회사이익을 편취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만일 아들들이 가진 특허와 연계해 제품이 개발되고 특허사용료를 받게 된다면 새로운 증여형태가 발생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 일가가 보유한 특허가 직접 개발한 것이 아니라는 의혹도 있다. 아무리 최 회장이 공학박사 출신이라 하더라도 수백여건에 달하는 기술 개발을 스스로의 힘만으로 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공학과는 무관한 학문을 전공한 아들들이 난방장치에 관한 기술을 개발하고 수 십 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의구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 회장 일가가 회사 연구진들의 공을 가로챈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파이낸셜투데이>는 이 의원을 비롯한 업계 일각에서 제기한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코자 귀뚜라미 측과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회사 관계자는 “특허나 그 수익에 관한 내용은 법무팀과 회계팀에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에 법무팀과 회계팀의 실무 담당자와 직접적인 연결을 요구했지만 이 관계자는 “(실무자들이) 직접적으로 기자들과 말하기를 원치 않아 (연결이)힘들다”라고 거절했다.

한편, 최 회장은 지난 8월 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비하하며 주민투표를 독려한 사실이 알려져 구설에 오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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