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성공에 유리한 국면…사외이사들 “능력 보고 뽑을 것”

▲ 이광구 우리은행장.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김승민 기자]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민영화 성공이라는 강력한 경쟁력을 등에 업고 연임을 시도하면서 첫 취임 때와는 격세지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광구 행장은 2년 전 처음으로 행장 자리에 올라섰을 때 관치금융이 낳은 밀실인사라는 의혹 속에서 심한 진통을 겪었다.

다만 현재는 가장 막강한 후보라도 우리은행의 새로운 첫 출발을 위해 과거 인사라 할 수 있는 이광구 행장은 이번 임기가 마지막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4일 우리은행에 따르면 차기 행장 후보자 공모에 총 11명이 지원서를 제출했다.

지원자 중 한 명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여전히 후보자 수가 10명에 이른다. 당초 예상한 후보자 수보다 2배에 달하는 지원자들이 몰리면서 과열 경쟁 양상이 보이기도 하지만 특히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도 있다.

그중 한 명이 현재 우리은행을 지휘하고 있는 이광구 행장이다. 이광구 행장은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로 활동 중인 사외이사들이 꼽은 5가지 행장 자격 기준 중 유일한 정량평가 요소인 경영 능력에서 상당히 유리한 지점에 서있다. 나머지 기준들인 ▲금융산업에 대한 높은 식견과 안목 ▲미래 비전 ▲통합 리더십 ▲윤리의식과 책임감 등은 모두 정성평가에 속한다.

그의 재임기간에 16년 가까이 정부 소유였던 우리은행은 민영화에 성공했다. 2010년부터 꾸준히 시도했지만 4번 실패한 뒤 5번째서야 성사됐다는 점에서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사외이사들은 우리은행이 민영화되면서 새로운 주인이 된 과점주주들을 대변하는 이들이다. 사외이사들 입장에서는 이광구 행장의 성과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상당 부분 있는 셈이다.

2014년 말 취임한 이광구 행장이 민영화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실적도 경영 능력 평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리은행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조3892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9686) 43.4% 급증했다. 당기순이익도 1조1172억원으로 같은기간 대비(8539) 30.8%나 늘었다. 2015년 영업이익은 2014년보다 50.7% 증가했으며, 당기순이익은 1조754억원으로 같은기간 대비 11.0% 감소했지만 1조원대를 수성했다. 시장 평가를 나타내는 주가는 2014년 12월 30일 1만원에서 지난 2일 기준 1만2600원으로 26.0% 상승했다.

◆밀실인사 꼬리표

최근 결과물만 보면 이광구 행장은 꽃길만 걸어온 듯하다. 하지만 그가 제49대 우리은행장 후보에 오르고 실제 취임하기까지의 과정에는 갈등과 논란이 가득했다.

2014년 11월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은행 안팎에서는 이순우 행장이 연임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민영화 과정에서 자회사를 매각하는 등 큰 사건들이 있었지만 노조와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고 잡음을 최소화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었다. 결국 11월 말 4차 민영화에는 실패했지만 금융권에서는 실패 책임을 이순우 행장이 아닌 매각 작업을 지휘한 금융위원회가 져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12월 1일 이순우 행장이 연임 포기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던 당시 이광구 부행장이 유력 후보로 급부상 하더니 실제로 같은달 5일 차기 행장으로 내정됐다.

이를 두고 곳곳에서 관치금융 의혹과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이광구 행장은 박근혜 정부의 입김이 닿은 ‘밀실인사’라는 지적이 제기됐고, 우리은행 노조도 성명서를 발표하며 이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이광구 행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학교 출신이며, 서강대 금융인 모임인 서금회 소속이기도 하다. 금융권에서는 이광구 부행장을 우리은행 차기 수장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에서 물밑 작업이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애초 행장후보추천위원회(행추위)는 이순우 행장을 차기 행장 후보 1순위로 한 3명의 후보명단을 청와대에 올렸지만 반려 당했으며, 청와대가 별도 인물인 이광구 부행장을 낙점했다는 설도 금융권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왔다.

여기에 연임이 유력했던 이순우 행장의 갑작스런 연임 사퇴 결정, 행추위가 지난해 12월 5일 회의 시작 1시간 만에 이광구 부행장을 차기 행장후보로 단독 추천한 점, 소문이 현실이 됐다는 정황들이 보태져 이광구 행장은 취임이 되기 전부터 관치인사 꼬리표를 달게 됐다.

우리은행 노조에서는 각종 의혹을 풀지 못 한 이광구 행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9일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은 이사회가 이광구 내정자를 차기 행장으로 선임하는 안을 의결하기로 한 날이었다.

◆구관이냐 새 부대냐

이광구 행장은 결국 민영화를 성사해내 그동안 지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상당 부분 덜어내는 데 성공했다. 민간은행으로 탈바꿈한 우리은행의 왕좌에 도전하는 것도 본인 스스로 그렇다고 자부하고 있다고 해석할 만한 대목이다. 금융권에서도 민영화 달성 후 곧 이광구 행장에게 다른 후보들과 함께 차기 수장 자리를 두고 경쟁하도록 기회를 줘야한다는 말이 나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광구 행장이 우리은행 민영화를 성공시킨 공이 있는 만큼 이를 인정하고 공평하게 연임 기회를 제공할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분명 이광구 행장은 막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지난 4일 첫 이사회를 개최하고 행추위를 구성한 사외이사들은 차기 행장 선출에 대해 “새 행장은 영업력과 추진력도 중요하지만 10년 이상 쌓인 부정적 기업문화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혜안이 있는 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에 쌓인 부정적 기업문화에는 오랫동안 정부 손길에서 자유롭지 못 했던 점과 우리은행의 전신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간 계파 갈등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광구 행장은 이 2가지 모두 해당된다. 이광구 행장은 상업은행 출신이며, 전임이었던 이순우 행장도 상업은행 인사다. 이 때문에 그가 취임했을 때 한일은행 출신들의 불만이 있었으며, 다음 행장만큼은 한일은행 인사를 배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사외이사들이 명관인 구관 대신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를 택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이광구 행장의 성과는 인정하지만, 민영화 전 쌓아온 과거를 털고 새 출발을 위해 새 인물이 필요하다는 해석이다. 이런 분위기를 파악한 듯 다음 행장 자리를 노리는 후보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광구 행장이 현직이라는 점도 큰 장애물로 여겨지지 않은 듯 후보 10명 중 8명은 전 임원들이기도 하다.

지난 4일 사외이사 기자간담회에서 사외이사들은 현직 행장에 대한 프리미엄은 따지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언론에서 쏟아지는 이광구 행장에 대한 평가에 대한 입장도 다른 후보와의 형평성을 거론하며 답변을 피했다.

사외이사는 “전·현직에 관계없이 오직 능력만을 보고 뽑을 것”이라며 “전직 임원들도 나름대로 과거에 평가 받았던 경영 능력이 다 남아있을 것이고 이를 토대로 현직 행장과 임원들과 동일하게 평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