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럭비공 인사’ 언제까지

지난해 9월 이후 매달 최고위급 물갈이…정의선 사장 체제 다지는 과정 분석도

정 회장 인사 쥐락펴락 과도한 충성경쟁 유발 지적
글로벌 기업 무색한 인사시스템 부재 조직 안정 저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돌발인사’ 가 재계 안팎에서 무성한 뒷말을 낳고 있다. 지난해 9월 이후 매달마다 사장단 및 부회장단 인사가 단행되면서 ‘깜짝’의 수준을 넘어 정 회장 ‘입맛대로’의 ‘럭비공 인사’, ‘충격인사’로 가고 있다는 것.

정 회장 특유의 인사스타일은 그동안도 재계에서 호평과 혹평이 엇갈리곤 했다. 수시로 고위층 인사를 단행하는 정 회장의 방식이 조직에 긴장과 변화를 준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는 반면, 안정감을 해치고 측근들의 과도한 충성을 유발, 파벌을 만들 수 있다는 부정적 시각도 높았다.

그러나 최근의 계속된 인사에는 ‘인사시스템의 부재’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깜짝 발탁인사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갖춰야 하고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오로지 정 회장 혼자 경영진을 쥐락펴락하는 시스템은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임원 급여를 반납하고, 예산을 절감하는 등 초긴축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한다고 하면서도 오너인 정 회장만은 오로지 ‘마이웨이’를 고집한다는 곱지 않은 시각이 높다.

“깜짝 인사가 원래 현대차그룹의 특유한 인사 스타일입니다. 기업의 고유한 인사 방식을 가지고 외부에서 근거 없는 얘기들을 할 필요가 없죠”

지난해 9월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이 모비스로 전출되는 등 깜짝 인사가 단행돼, 재계 안팎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오자 현대차 관계자는 “남의 집안 일을 가지고 왜 왈가왈가 하느냐”고 불편함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런데 갖가지 추측들이 가라앉기도 전에, 현대차는 지난 19일 또 다시 서병기(생산품질. 48년생), 최재국(국내외 영업. 47년생) 부회장을 고문으로 발령 내, 사실상 퇴진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

연말 정기 사장단 및 임원인사를 단행한 지 불과 20여 일 만에 또 다시 깜짝 인사가 이뤄진 것이다. 최 부회장과 함께 현대차 영업은 맡았던 이광선 사장은 계열사인 글로비스 양승석 사장과 자리를 맞바꿔 영업담당 최고위층이 전부 교체됐다.

특히 최재국 부회장은 승진한지 두 달 만에 옷을 벗었고, 이광선 사장 역시 한 달 만에 다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새로 현대차 영업을 담당하게 된 양승석 사장은 계열사인 부품회사 다이모스에서 서지난해 10월 글로비스를 맡았으니 3개월 만에 현대차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9월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은 현대모비스로 옮겨갔고, 박정인 HMC투자증권 회장은 고문으로 물러났다. 10월에는 김용문 현대차 부회장이 다이모스 부회장으로 발령 났고, 12월에는 기아자동차 김익환 부회장과 조남홍 사장이 잇따라 옷을 벗었다. 9월 이후 한 달마다 그룹 수뇌부가 끊임없이 교체된 것.

이런 상황이니, 정몽구 회장 특유의 ‘럭비공 인사’가 또 다시 도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승진인사 한 달 만에 옷 벗고, 돌발인사 왜

현대차 측은 인사 때마다 세계 자동차 시장 급변하는 환경에 따른 경쟁력 강화 차원이라는 설명을 반복했다.

이번 인사 배경에 대해서도 “세계 자동차시장의 침체에 따른 위기 극복과 지속 성장을 위한 조치로 국내ㆍ해외영업을 대폭 강화하는 차원”이라는 것이 현대차의 설명. 결국 위기 상황에서는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영업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얘기지만, 지난해 12월 정기인사 단행 때와 특별히 달라진 경영 상황이 없다는 점에서 이런 설명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재계에서는 오히려 계속되는 깜짝 인사 배경과 관련,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체제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정 회장이 여전히 활발히 경영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후계구도 구축을 위해 정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정의선’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그룹 내 2인자로 꼽히던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이 모비스로 물러나고, 잇따라 기아차 김익환 부회장과 조남홍 사장 등 1세대 경영진들이 물러나면서 이 같은 분석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현대차 측에서는 그러나 “정 사장 승진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면서 “승진이란 것이 발표가 되기 전에는 당사자도 알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일축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정 회장의 럭비공 인사에 대해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는 것과 달리 제대로 된 인사시스템 하나 없이, 정 회장 입맛대로 그때그때 인사가 이뤄지다 그룹 내부에서도 불만과 불안이 새어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정 회장 특유의 인사방식이 그룹 내 파벌을 형성, 과도한 충성경쟁을 불러오는 한편 불만 세력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지난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에서 입증하듯, 이런 불만 세력이 언제고 뇌관이 되어 터질 수 있다는 얘기.

대외적으로도 자동차 메이저를 꿈꾸는 현대차그룹의 신인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재계 안팎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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