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여주인공과 네 명의 남조연들

▲ 우병우(왼쪽부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차은택 감독,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대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혜실게이트라는 막장드라마의 주연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였다. 그러나 우병우, 안종범, 차은택, 고영태 등 ‘혜’와 ‘실’의 연결고리 역할을 도맡은 조연이 없었다면 연출 자체가 힘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화려한 삶을 영위했던 이들의 현재 모습을 잘려나가기 직전의 ‘꼬리’다. ‘최순실 게이트’로 시작해 ‘박근혜 게이트’가 된 이번 사건 핵심 인물들의 이모저모를 알아봤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박근혜 대통령과 공식적으로 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이다. 2013년 5월 검사장 승진 문턱에서 낙방한 그는 1년 뒤인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복귀했다.

화려한 복귀 뒤엔 이면도 있었다. 우 전 수석은 민정비서관 인사 검증에서 ‘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안봉근 제2부속실 비서관이 임명을 압박하자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평가 점수를 높여 줬다는 것이다.

우 전 수석은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김기춘 비서실장으로부터 높은 신임을 얻었다. 청와대 문건유출사건 등 까다로운 사건을 무난히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상관인 김영한 민정수석을 제치고 김기춘 실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일이 잦아 김영한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 증인 출석을 거부한 뒤 사퇴하는 ‘항명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조직을 다잡고 일을 밀어붙이는 기질 면에서 김기춘과 우병우는 닮은 점이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우 전 수석은 ‘리틀 김기춘’으로 불렸다.

우 전 수석은 지난해 1월 민정수석으로 깜짝 발탁됐다. 민정수석은 민정비서관과 공직기강비서관, 법무비서관, 민원비서관 등 4명의 비서관을 거느리는 자리다. 즉 검찰·경찰은 물론 감사원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기무사, 행정자치부 등 여러 사정기관의 최정예 인력을 휘하에 둔 것이다.

우 전 수석은 2015년 3월부터 김기춘 실장이 기획한 박근혜 정부의 이명박 정권에 대한 사정을 주도했다.

▲ 사진=뉴시스

박 대통령의 신임은 두터웠다. 지난 7월 우 전 수석에 대한 비리가 연쇄적으로 폭로되면서 사퇴압박을 받았지만 박 대통령은 ‘국미문란’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우 전 수석을 싸고 돌았다. 우 전 수석도 자신과 관련한 각종 의혹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의혹이 제기된 것이기 때문에 책임지는 건 맞지 않다”며 사퇴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10% 초반까지 떨어졌고 지난달 30일 안종범 정책수석 등과 함께 경질됐다.

우 전 수석은 지난 6일 횡령·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출석했다. 소환 당시 우 전 수석은 “검찰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라는 형식적인 말만 반복하고, 질문하는 기자를 노려보는 등 고압적인 태도로 구설수에 올랐다. 또 검찰 조사에서 조사관들을 아랫사람 대하듯 대화하는 장면이 포착되면서 ‘황제 소환’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광고감독에서 ‘1급 공무원’ 된 사연

광고감독 출신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문화정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2014년 8월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임명된 차씨는 이듬해 4월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을 지내며 문화계 유력 인사로 떠올랐다.

문화계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하던 차씨가 1급 공무원직에 임명되자 뒷말이 무성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얘기부터 비선실세라는 말까지 다양한 추측이 쏟아졌다.

차씨는 박 대통령 문화정책에 핵이라 불렸던 만큼 정부 프로젝트에도 크게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차씨가 직간접적으로 연결됐다는 의혹이 불거진 정부 프로젝트는 20개 안팎에 달한다. ‘문화창조융합벨트’가 대표적이다. 이곳에 입주한 93개 기업 중 절반가량이 영상과 공연, 플랫폼 관련 기업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차씨와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문화창조융합벨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했다. 앞서 사표를 낸 뒤 긴급 체포된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심혈을 기울였던 사업이다. 송 전 원장은 차씨 라인이다.

표절 논란을 빚었던 국가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역시 차씨의 그림자가 짙다. 차씨가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즈’와 관련된 회사들에게 일감이 몰렸다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늘품 체조’도 차씨가 주도했다. 이로 인해 한국스포츠개발원이 2년간 약 2억원을 들여 준비한 ‘코리아 체조’는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홍보 등으로 3억여원이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늘품 체조의 제작비는 차씨의 유령 회사로 들어갔다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CJ E&M 컨소시엄이 사업권을 따낸 K-컬처밸리 역시 차씨가 깊숙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고양시에 조성되는 K-컬처밸리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의 일환으로 축구장 46개 크기의 땅에 한류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공연장‧쇼핑몰‧북박시설 등이 들어서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CJ가 2017년까지 1조4000억원을 들여 지을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차씨가 주도한 행사 때마다 등장해 힘을 실었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의회는 조사에 나선 상태다.

차씨가 문화창조융합벨트에 주축으로 참여한 CJ E&M를 손아귀에 넣고자 했다는 각종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차씨에 대한 검찰 조사는 현재진행형이다. 8일 귀국한 최씨는 공항에서 긴급체포된 뒤 구치소를 오가며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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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으로 이어진 인연

펜싱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고영태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들고 다녀 화제가 된 가방 브랜드 ‘빌로밀로’를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독일 더블루K 대표, 한국 더블루케이 이사를 맡는 등 최순실씨의 최측근으로 지냈지만 최근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고씨가 최씨를 만난 때는 호스트바 접대부 시절인 것으로 추측된다.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최씨를 만났다는 후문이다. 고씨가 대중에 알려진 것은 빌로밀로를 론칭한 이후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협찬 등을 통해서다. 빌로밀로는 박 대통령이 2013년 초 당선인 신분으로 자주 들고 다녔던 브랜드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후 언론 노출이 없었던 고씨는 최근 언론을 통해 “최씨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연설문 고치는 일”이라고 폭로하며 재차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최씨 소유로 추정되는 태블릿 PC가 언론에 입수되면서 최씨가 연설문과 외교문서 등 기밀사항에 대해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고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현재 검찰은 고씨를 상대로 더블루케이 설립과 운영, 미르·K스포츠 투자자금 운영,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 등을 받아본 경위 등 이 사건 의혹 전반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진=뉴시스

◆경제책사에서 나락으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을 도와왔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추천으로 19대 국회에 입성했고, 박근혜 후보의 ‘경제 책사’로서 줄곧 공약 개발을 담당해왔다.

박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기초연금 도입 등이 안 전 수석의 대표적 작품이다. 안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당 정책위 부의장으로 정부 경제 정책을 측면 지원했고 2014년 6월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발탁되면서 정책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그는 지난 5월 비서실 업무를 총괄하는 선임 수석인 정책조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국정 운영을 실질적으로 조율해왔다.

하지만 안 전 수석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800억원대 기금 모금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최순실 의혹이 겉잡을 수없이 커지면서 안 전 수석은 청와대 입성 2년4개월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고, 사퇴 사흘 만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문고리 3인방’ 자택 압수수색…수사 급물살

현 정부 '비선실세' 최순실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 참모인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사람은 지난 6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된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과 함께 ‘청와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며 위세를 떨친 인물이다. 검찰의 수사망이 박 대통령을 바짝 에워싸는 형국이다.

10일 검찰에 따르면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지난 9일 오전 안 전 비서관과 이 전 비서관의 거주지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업무일지, 다이어리, 개인 및 업무용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이들 외에 청와대 전·현직 실무급 직원 2명의 자택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일각에선 청와대 가신그룹인 세 사람에 대한 동시다발적 수사가 박 대통령 대면 조사에 앞서 구체적인 진술 또는 물증을 확보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 여부는 다음주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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