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승부사, 도전을 통한 성장

▲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새문안로 포시즌스호텔에서 미래에셋대우(舊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대한민국의 날고 긴다는 두뇌들이 모인 여의도 증권가에서 입사 45일만에 대리를 달고, 1년 만에 과장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임원 자리마저 손쉽게(?) 차지한 그는 돌연 창업의 길로 뛰어드는 ‘무모한’ 도전을 한다. 그 승부수는 현재 자산 350조원이 넘는 거대 금융그룹을 일궈냈다. 미래에셋대우 인수에 성공하며 또 한 번 ‘박현주 매직’을 재현한 그가 최근 띄우고 있는 또 다른 승부수들에 여의도의 눈이 집중되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의 ‘파격 행보’가 또 다시 눈길을 끌고 있다. 초저금리 시대 눈 씻고 찾아봐도 좀처럼 보기 힘든 ‘연 4.5%’ 수익 보장 카드에 투자자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냈다.

미래에셋증권이 국내 증권회사로는 처음으로 개인투자자에게 판매한 자산유동화증권(ABS)이 모두 팔렸다. 무려 출시 이틀 만의 ‘완판’이었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이번달 초 출시한 ‘베트남 랜드마크72 ABS’은 예비 청약 이틀 만에 목표 금액 2500억원을 모두 채웠다.

최소 가입금액이 2억원이나 돼 일반인들에게는 문턱이 높을 수 있다는 우려를 단박에 씻어낸 결과였다. 요즘 보기 드문 연 4.5%의 수익 보장이 부유층의 시선을 끄는데 성공했다는 해석이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원래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판매할 계획이었지만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ABS를 통해 해외 대체투자자산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일반투자자들에게 판매하게 됐다”고 말했다.

‘年 4.5% 수익’에 투자자들 열광…이틀 만에 ‘완판’
초저금리 시대 과감한 시도…박 회장의 ‘별도 지시’

◆‘박현주’가 할 수 있는 생각

이를 두고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박현주 매직’이 또 다시 발휘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관투자자들이나 사던 고액의 투자 상품도 이제는 개인투자자들에게 팔릴 수 있다는 공격적 판단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이번에 판매한 ABS는 미래에셋증권이 지난 4월 베트남 랜드마크72빌딩을 담보로 부동산 투자 전문회사인 ‘AON BGN’에 제공한 선순위대출 3000억원이 기초자산이다. 선순위 대출 금리는 연 6%다. 연 6%의 이자수익 중 4.5%는 ABS를 매입한 개인투자자에게 돌려주고 나머지 1.5%는 미래에셋증권이 가져가는 구조다.

랜드마크72는 베트남 하노이 신도심에 있는 베트남 최대 빌딩이다. 경남기업이 2012년 건설한 건물로, ‘성완종 게이트’ 당시 일반들인들 사이에서도 유명세를 떨쳤다.

랜드마크72는 임대율이 90%에 육박한다. 글로벌기업과 한국 대기업 사무소 등이 대거 입주해 있어 안정적인 임대 수입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이를 기반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고 있다.

당초 미래에셋증권은 이 상품을 일반인이 아닌 기관투자자들에게만 판매할 계획이었다. 그러다 일반인들로 하여금 해외 대체투자자산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해 전략을 수정했다.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ABS라면 이같은 계획이 통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박 회장의 ‘별도 주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대 초저금리 상황에서 4~5%대 수익을 보장하는 혁신적인 투자 상품을 개발하라는 주문이었다.

부동산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긍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부동산을 보는 안목이 탁월한 박 회장이 이끄는 미래에셋그룹의 투자 감각이 돋보이는 상품이라는 것이다.

물론 박 회장이 베트남 부동산 경기를 낙관해 지나치게 많은 리스크를 짊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불과 6개월 뒤 만기가 도래하면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이자를 지급해야하기 때문이다.

박 회장의 ‘승부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공실률이 높아져 AON BGN이 연 6%의 수익을 주지 못하면 부담은 미래에셋증권으로 넘어간다. 만약 이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미래에셋증권은 손실이 발생하면 자기자본으로 보전한다고 공언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높은 수익률임에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일반 투자자들을 해외 대체 투자에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신선한 발상”이라며 “위험을 감내할 만한 체력이 있어 자신 있게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수석부회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창업박람회 ‘데모데이’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인공지능에 투자하는 증권사

미래에셋의 독특한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최고위층 임원이 직접 인공지능 관련 벤처 기업 설명회에 나서는 ‘깜짝 행보’를 선보였다. 국내 증권가에서 미래에셋만이 보여줄 수 있는 파격 행보라는 평이다.

이를 두고 옛 대우증권 인수라는 큰 산을 넘은 뒤 미래에셋이 본격적으로 자신들이 가진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지난달 말 스타트업 육성기관 ‘스파크랩’이 주최한 ‘데모데이’ 행사에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수석 부회장이 등장했다. 최 부회장은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직을 수행하다가 통합 미래에셋대우의 순조로운 출범을 위해 지난 4월 친정인 미래에셋증권으로 4년 만에 복귀한 그룹 핵심 임원이다.

데모데이는 육성기관이 약 4개월간 집중적으로 키운 신생 벤처기업들이 투자자들 앞에서 자신들을 선보이고 투자금을 유치하는 행사다.

증권사 최상위 임원이 이같은 신생기업 설명회에 직접 방문하는 모습은 이례적이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최 부회장이 행사장에 미래에셋그룹이 관리하는 VVIP 100명과 함께 왔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미래에셋그룹에 거액의 돈을 맡기는 최상위 고객들이다.

‘힌트’는 스파크랩 파트너이자 투자자인 프랑크 미한이 행사장에서 남긴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미한은 “미래에셋이 앞으로 인공지능이 펀드 운영과 투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미래에셋 수뇌부들이 인공지능 스타트업 발굴에 나섰다”고 전했다.

미한은 미국 벤처캐피털 호라이즌벤처스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로 근무하면서 시리와 딥마인드에 투자했던 인물이다. 시리와 딥마인드는 각각 애플과 구글에 인수됐다. 그는 “미래에셋그룹이 금융 관점에서 인공지능 기술에 관심을 두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박 회장은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통합을 마치면 가칭 ‘대한민국 신성장벤처펀드’를 조성해 매년 1조원씩 10년간 총 10조원을 신생 기업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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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행보…‘가지 않은 길’

국내 증권가에서 박 회장은 언제나 톡톡 튀는 인물이었다. 미래에셋이 최근 옛 대우증권의 새 주인이 될 때도 ‘박현주이기에 가능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박 회장이 여의도 증권가에 몸을 담은 지도 30년이 됐다. 그간 여러 차례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박 회장은 유독 과감한 승부수를 던진 적이 많았다.

박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7년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동원증권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45일 만에 대리가 됐다. 또 1년 1개월 만에 과장이 됐다. 마침내 불과 서른두살의 나이에 최연소 지점장 타이틀을 달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임원이 됐다.

이처럼 잘 나가던 직장인이었던 박 회장은 돌연 독립을 선언했다. 보장된 길을 포기하고 1997년 미래에셋벤처캐피탈을 만들었다. 잇달아 미래에셋투자자문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증권 등을 설립했다. 현재 미래에셋금융그룹의 밑그림을 그리던 시점이었다.

박 회장이 여의도 증권가 최고의 유명세를 떨친 건 자신의 이름을 딴 ‘박현주 1호’ 펀드 출시였다. 이를 계기로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뮤추얼펀드 열풍이 불었다.

이를 계기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국내 펀드 시장에서 가장 규모가 큰 운용사로 성장했다. 이후 미래에셋의 덩치는 무섭게 커졌다. 2005년에는 미래에셋생명 설립으로 보험업계에까지 진입했다.

언제나 성공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었다. 박 회장도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좌초 위기를 겪었다. 주식이나 채권 등 자산의 제약 없이 세계 여러 나라에 분산 투자한다는 전략으로 2007년 출시돼 수조원의 투자금이 몰리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인사이트 펀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손실을 보게 됐다.

주요 투자 대상이었던 중국 증시의 폭락은 치명타였다. 인사이트 펀드는 출시 1년 만에 수익률이 반 토막 났다.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박 회장은 한동안 언론에서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절치부심한 박 회장은 끝내 재기에 성공, 미래에셋그룹을 국내 30위권의 거대 조직으로 키워 냈다. 미래에셋그룹은 자산운용과 증권, 보험 3개의 축을 중심으로 2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운용 자산만 357조원에 달한다. 1997년 자본금 100억원으로 시작한 ‘미래에셋캐피탈’이 18년 만에 미래에셋그룹이라는 이름의 재계 서열 33위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박 회장을 가장 많이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승부사”라며 “도전을 통한 성장이라는 박 회장의 성장철학이 회사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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