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실적 내고도 매물로…그룹 부실 책임전가에 ‘억울’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현대중공업그룹이 경영개선 계획의 일환으로 하이투자증권을 팔기 위해 시장에 내놓은 것을 두고 내부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이투자증권 안에서는 모기업의 부실에 대한 책임을 왜 우리가 져야 하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더욱이 중견 증권사 규모라고는 하지만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왔다는 점에서 하이투자증권 직원들이 갖는 박탈감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16일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은 하이투자증권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주채권 은행인 KEB하나은행과 합의를 통해 하이투자증권 매각 내용이 담긴 자구안의 승인을 확정한 상태다.

하이투자증권의 대주주는 현대중공업 손자회사인 현대미포조선이다. 현대미포조선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하이투자증권 지분 85.32%를 보유하고 있다.

◆성적 ‘상승곡선’…탄탄한 중견 증권사

하이투자증권의 최근 실적은 기복 없는 성장세를 보여왔다. 성적은 해마다 상승곡선을 그려 왔다. 모그룹인 현대중공업그룹의 후광을 엎고 이뤄낸 실적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더욱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이투자증권의 올해 1분기 영업수익은 2311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9.5%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00억원으로 같은기간 대비 102.0%나 늘었다, 당기순이익도 43억원을 기록하며 22.9% 증가했다.

하이투자증권 성적은 올해 들어서 뿐 아니라 최근 꾸준한 상승세다. 2014년 6500억원이었던 영업수익은 2015년 9507억원으로 46.3% 증가했다. 같은기간 영업이익은 331억원에서 423억원으로, 당기순이익은 227억원에서 312억원으로 각각 27.8%, 37.4% 늘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도움에 의존해 이뤄낸 실적도 아니었다. 그룹 내 계열사들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이 전체의 1%에도 한참 미치지 못할 정도로 독립적인 성장을 해 왔다. 하이투자증권이 지난해 그룹 내 계열사에서 올린 매출은 3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0.3%였다.

◆모기업 부실 희생양?…“졸속 매각”

이처럼 제대로 실적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매각 대상이 되자 하이투자증권 직원들은 억울함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왜 자신들이 모기업 부실의 희생양이 돼야 하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가운데 노종조합 측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하이투자증권 노조는 매각설이 흘러나온 직후인 지난 2일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 앞에서 주채권은행과 현대중공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이투자증권 노조 관계자는 “하이투자증권은 IMF 위기도 극복하며 중형 증권사로서의 입지를 굳혀와 현대중공업그룹 내에서 흑자를 내는 몇 개 안되는 계열사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대중공업의 위기에 알짜 우량 계열사를 매각하자는 발상은 이해할 수 없다”며 “하이투자증권 직원들도 모르게 주채권은행과 모기업이 이렇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명백한 밀실, 졸속 매각”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하이투자증권 노조는 그동안 당사가 지난해부터 제기된 매각설을 전면 부인해오다 내부 구성원 동의 없이 갑자기 말을 바꿨다며 ‘졸속 매각’이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지난해부터 하이투자증권의 매각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자 현대중공업그룹은 올해 초 현대기업금융과 현대기술투자 등 금융계열사를 하이투자증권으로 편입시키며 매각 의혹을 잠재운 바 있다.

하이투자증권 노조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자구책 안에 하이투자증권 매각이 포함돼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때마다 현대중공업과 하이투자증권 측은 대표금융사로 키우겠다고 밝혀왔다”며 “약속한지 몇달 되지 않아 내부 구성원들의 동의도 없이 그동안 회사를 위해 노력해온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아랑곳없이 회사 매각을 합의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5000억 손해 예상…‘헐값 매각’ 우려

갑작스런 하이투자증권 매각 추진에 ‘헐값 매각’에 대한 우려도 쏟아진다. 현대중공업그룹이 하이투자증권을 사들이면서 투입된 돈만 1조원이 넘는데, 현재 시장 분위기로 봐서는 그 절반인 5000억원도 건지기 힘들어 보이는 까닭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08년 하이투자증권 인수 당시 약 7500억원을 썼다. 이후 세 번의 유상증자를 통해 약 3000억원을 쏟아 부은 것을 감안하면 1조원 넘는 돈이 투입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현재 시장에 나온 하이투자증권의 매각 가격은 4000억~5000억원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하이투자증권이 비상장사인 점도 할인 요인으로 꼽힌다. 현대중공업그룹 입장에선 투자한 금액의 절반 정도는 손실이 불가피 한 셈이다. 때문에 매각에 난항을 겪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때문에 하이투자증권 안에서는 이처럼 뻔한 손해가 예상되는 상황임에도 전격 추진되는 매각에 의구심을 품는 목소리들도 나온다.

하이투자증권 노조도 현대중공업의 경영상태는 당장 계열사를 매각해야 할 만큼 어렵지 않고, 조선업 불황으로 선박 수주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당장 일감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더욱이 대주주와 경영진이 책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노동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하이투자증권 노조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현대중공업이 현금배당을 하지 않은 2014년과 2015년을 제외하고 지난 10년 동안 무려 3000억원의 현금 배당을 챙겼다”며 “채권단은 엉뚱하게 알짜 자회사인 하이투자증권을 매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 이사장의 사재 출연을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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