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곧 계급인 세상

▲ 건물 경비원을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정우현 MPK그룹 회장이 지난달 9일 경찰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대문경찰서 형사과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대기업 총수나 고위 공직자 등 소위 ‘금수저’들의 ‘갑질’로 인해 대한민국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 오너들의 막말과 욕설, 폭행 등이 잇따라 구설수에 오르면서 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문제가 사회전반에서 발생하면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파이낸셜투데이>가 갑질 행태를 재조명해봤다.

110년 전통의 향토기업도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업계 1위 기업도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서로가 손가락질을 하며 공방을 벌이기도 한다. 모두 회사 오너들의 ‘갑질’에 벌어진 일들이다.

몽고식품은 김만식 명예회장의 ‘운전기사 상습폭행’ 논란에 직격탄을 맞았다. 김 명예회장이 자신의 개인 운전기사 A씨에게 욕설과 폭행을 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한 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비난 여론이 확산되면서 김 명예회장은 퇴임으로 무마하려 했지만, 불매운동 등 거센 반발에 부딪히면서 결국 폭력 사실을 시인했다.

▲ 김만식 몽고식품 명예회장이 지난해 12월 28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 몽고식품 창원공장 강당에서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운전기사 폭행 및 폭언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머리를 숙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 순간에 무너진 전통

1905년 경남지역에 창립된 몽고식품은 올해로 111주년을 맞은 장수기업이다. 이같은 사실은 몽고식품이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는 이유로 작용했다. 몽고식품은 간장과 된장, 고추장 등을 만들어 국내에 유통하고 있고, 중국과 미국 등에도 꾸준히 수출하고 있다.

김 명예회장에 대한 평도 좋았다. 김 회장은 지난해 11월 ‘2015년 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대상’ 산업부문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고, 지역주민들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운전기사 상습폭행’ 논란은 그에 대한 평가를 송두리째 뒤집어 버렸다.

A씨에 따르면 김 명예회장은 A씨에게 평소 ‘임마’, ‘개새끼’라는 폭언을 일삼았다. 지난해 10월에는 A씨의 낭심을 걷어차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당시 A씨는 “회장님 사모님의 부탁을 받고 잠시 회사에 갔는데 왜 거기에 있냐는 회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며 “이에 서둘러 회장님이 계신 집으로 돌아오니 회장이 다짜고짜 구둣발로 낭심을 걷어찼다”고 설명했다.

결국 A씨는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됐고, 다리와 허리의 통증 등 후유증도 남아 일주일간 일을 쉬게 됐다. 이후 A씨는 일을 시작한지 2개월만인 지난해 11월 권고사직을 당했다.

몽고식품 측은 A씨의 폭로 직후인 지난해 12월 23일 오후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다. 몽고식품 측은 사과문을 통해 “김 명예회장의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해 사죄한다”며 “김 회장이 명예회장직을 내려 놓고 직접 당사자인 A씨와 국민에게 사과하겠다”고 알렸다.

결국 김 명예회장은 사건 발생 4일 만인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A씨를 직접 만나 사과했다. 다음날인 28일에는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김 명예회장은 “최근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태는 백번을 돌이켜봐도 전적으로 저의 부족함과 가벼움에 벌어진 일”이라며 “피해 당사자는 물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측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비난여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네티즌을 중심으로 불매운동 조짐까지 나타났다.

▲ 건물 경비원을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정우현 MPK그룹 회장이 지난달 9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경찰조사를 받기 위해 형사과로 들어서며 고개 숙여 사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회장 때문에…

몽고식품 사태가 터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바로 국내 피자업계 1등 업체 ‘미스터피자’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MPK그룹의 정우현 회장 얘기다.

지난달 2일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은 서울 서대문구 한 대학 소유의 건물에서 경비원을 폭행해 물의를 빚었다. 정 회장이 해당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가던 중 건물 문이 닫힌 것을 보고 건물 경비원 B씨를 식당 안에서 폭행한 것이다.

경찰 조사에서 B씨는 “보통 오후 10시에 건물 문을 닫았는데 10시 30분 쯤 식사를 마친 정 회장이 ‘문을 닫지 말라고 했는데 왜 문을 닫았냐’며 얼굴을 때렸다”며 “정 회장에게 건물안에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정 회장은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사과문에서는 정 회장이 직접 나서는 모습이나 반성의 기미를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또 누구에게 사과하는지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시돼 있지 않아 진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한 네티즌은 “회장이라는 직위를 남용해 갑질을 한 이들에게는 국민 정서를 고려한 단호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정 회장의 모습에서는 어디에서도 진심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MPK그룹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정 회장의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며 “현재는 피해자분께 사과를 드리는 것과 경찰조사를 받는 것이 먼저다”라고 말했다.

비난여론 악화에 부랴부랴 ‘대국민 사과’
욕하고 때리고…바람 잘날 없는 회사생활
진정성 없는 태도에 ‘역풍’…논란만 키워
“시속 250㎞로 달려”…신호 걸리면 ‘욕설’

최근에는 독일 고급차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의 부산·경남지역 판매를 담당하는 공식 딜러 ‘스타자동차’에서도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이 회사의 유재진 회장이 수행기사들에게 폭언과 욕설로 과속을 종용하고 교통법규를 어기게 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유 회장의 전직 수행기사 3명은 유 회장이 과속을 종용하고 이를 따르지 않거나 신호에 걸리면 여지없이 욕설이 날아든다고 폭로했다. 유 회장이 직접 시속 250㎞로 달리는 운전 시범을 보여주고 기사들에게도 그렇게 운전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유 회장의 한 수행기사는 “부산에서 서울 강남까지 3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유회장이 뒷자리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다”고 토로했다.

유 회장의 기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시내에서 운전하다가 신호에 걸리면 인격모독 수준의 욕을 해대며 ‘불법 난폭운전’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유 회장의 다른 수행기사는 “주행 중 신호에 걸리면 유회장이 뒤에서 바로 욕을 했다”며 “어쩔 수 없이 불법 운전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더욱이 유 회장은 ‘부산 여대생 납치 청부살인’으로 유명한 영남제분 창업주의 장남이어서 더욱 이목을 끌었다. 부산 여대생 납치 청부살인은 2002년 영남제분 회장의 아내인 윤길자씨가 1억7000여만원을 주고 이화여대에 재학 중이던 C양을 청부살인한 사건이다. 윤 씨는 C양이 자신의 사위와 불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해 이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C양은 결국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사회적 지위에 있는 일부 오너 및 경영인들이 자신의 수행 및 운전기사에게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며 ‘갑질’을 펼치고 있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며 “우리 사회가 이러한 행동을 일삼은 오너들에게 법적 잣대와 함께 ‘도덕적 구속’을 통해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땀 뺀 ‘진실공방’

소주 ‘좋은데이’로 유명한 창원 향토기업 무학소주는 ‘갑질’이냐 ‘을질’이냐를 놓고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최재호 무학 회장의 전 운전기사인 D씨가 회장이 자신에게 횡포를 벌였다는 폭로를 내놓자, 최 회장 측은 ‘협박’이라며 맞대응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근거 없이 대기업 회장의 ‘갑질 횡포’를 언론사에 폭로하겠다며 억대 합의금을 요구한 혐의(공갈미수)로 최 회장의 전 운전기사 D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D씨는 무학 측 특판사업부장, 대표이사에게 전화해 “몽고식품 수행기사는 회사와 1억5000만원을 받고 합의했다, 돈을 안 주면 경쟁업체에 제보하고 사례금을 받겠다”며 “무학에서 금전적 보상만 해주면 합의서 쓰고 평생 입을 닫겠다”라고 협박했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주장하는 무학 회장의 갑질 행위도 들여다봤으나 ‘야 임마’라고 반말을 하거나, 쓰레기 분리수거 등 기사 업무 외의 일을 시켰던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 사진=픽사베이
우리 모두다 ‘甲’

여론을 들끓게 만든 ‘갑질’ 논란은 기업오너 등 비단 ‘금수저’들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있다. 갑은 을에게, 을은 다시 병에게 횡포를 부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저마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약자에게 횡포를 부리는 현상이 구조화 되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갑질’에 물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은행원에게 웃음을 강요하는 등 소란을 피운 허 모씨에게 이례적으로 구류 5일에 유치명령 5일을 내렸다. 허 씨는 지난달 8일 서울의 한 은행 여직원에게 “서비스직인데 왜 이렇게 불친절하냐”며 “일 할 때는 웃어라”라고 강요하는 등 소란을 피웠다. 재판부는 “즉결 법정에서 허 씨를 처벌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이 많이 됐지만 정식재판에 넘겨 전과를 남기기보다 즉결법정에서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 계산원에게 폭행과 욕설을 가한 경우도 있다.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근무하는 A씨는 지난해 9월 손님에게 폭행을 당해 병원신세를 졌다. 한 손님이 고구마 등이 담긴 봉투를 계산대에 올려놓지 않은 것이 발단이 됐다.

A씨는 근무 메뉴얼에 따라 손님에게 제품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폭행과 마음의 상처뿐이었다. A씨에 따르면 해당 손님은 “왜 날 도둑으로 보냐”며 들고 있던 봉투로 D씨 얼굴을 가격했다. 입 안에서 피가 날 정도로 상처가 심했다.

이에 대해 대형마트 관계자는 “절차에 따라 불만사항이 접수된 후 관리자가 이동해 고객 응대를 했다”며 “갈등이 지속되자 해당 직원을 곧 쉬도록 하고 귀가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집단적 갑질 사례도 있다. 지난해 여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분을 산 한 아파트의 택배차량 진입을 거부한 사건이다. 지난해 7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사이트에는 한 택배 업체의 반송조치 내용을 담은 공고문 사진이 게재됐다.

해당 택배 업체는 안내문을 통해 “해당 배송지 아파트는 택배차량 진입 금지로 모든 택배사들이 배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걸어서 배송하라는 아파트 측 입장에 해결방법이 없어 반송 조치한다”고 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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