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이진동)가 적발한 대규모 공인회계사 비리는 금융시장을 감시해야 할 공인회계사들이 직업윤리를 버리고 사익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다.

이들은 학연과 입사동기 사이 등 개인적인 친분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정보를 주고 받았으며, 윤리적 문제의식 없이 이를 오히려 '직업의 장점'으로 여기는 심각한 모럴 해저드를 보였다.

◆공시 전 실적 보고 종목 발굴

21일 검찰 등에 따르면 이번에 적발된 대형회계법인 공인회계사들은 메신저를 통해 회계감사 정보를 주고받으며 주식투자 후보 종목을 조직적으로 찾아 나섰다.

이들은 입수한 미공개 실적정보를 증권사에서 제작하는 예상 실적 리포트와 비교한 후 예상치보다 실적이 뛰어난 기업의 주식을 사전에 매수했다. 반대로 예상치보다 실적이 나쁜 기업의 경우 주가 하락에 대비해 공시 전에 현재가로 선물매도에 나서기도 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이 취득한 실적정보는 총 31개 종목이었으며, 이중 14개 종목에 실제 투자가 이뤄졌다. 해당 종목 중에는 대형마트나 대기업 소속 광고회사, 인터넷 포털회사 등 규모가 큰 기업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 사건 주범인 공인회계사 이모(29·구속기소)씨는 이 과정에서 동료 회계사가 메신저를 통해 종목 발굴 요령을 묻자 “숫자(영업이익·매출)+차트+증권사리포트 컨센서스+수급”이라고 조언을 해주는 여유도 보였다.

이씨는 아울러 자신들의 범행이 적발될 것에 대비해 다른 회계사에게 “이게 더 안전하다. 대화를 삭제한다고 한다”며 외국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인 텔레그램 이용을 권유하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만연한 모럴해저드

문제는 이씨를 비롯해 범행에 가담한 이들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전혀 심각한 불법행위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씨와 공범인 한 공인회계사의 경우 동료 회계사와 실적정보를 주고 받으며 “회계사가 다른 직업에 비해 가지는 유일한 장점이 회사 숫자(실적)를 좀 빨리 본다는 것. 이렇게 돈 넣는 게 답”이라는 노골적인 대화를 하기도 했다.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얻는 사익을 마치 직업적 부수입처럼 가볍게 여긴 것이다. 특히 범행에 가담한 공인회계사 상당수는 특정 학교 출신의 대학 동문으로,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가 사익 추구에 이용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별다른 죄의식 없이 개인적 친분만으로 직무상 비밀을 누설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이 외국계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등 행위에 비춰 불법성은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업무상 취득한 내부정보를 누설하고 이용하는 행위가 중대한 불법행위라는 인식이 낮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모럴 해저드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은 결국 일반 국민들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내부자는 항상 중요한 정보를 먼저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정보의 비대칭성을 고려해 업무상 지득한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결국 이들의 범행으로 정보를 미리 취득하지 못한 일반 국민 대다수가 피해를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3~4년차 초년 회계사들

한편 남부지검이 적발한 이번 회계사 비리는 주범 이씨 등이 전부 3~4년차의 초년생 공인회계사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매니저급에 해당하는 6~7년차 회계사들의 주식거래 현황만을 관리해온 기존 대형 회계법인의 내부감시 시스템 사각지대에서 범행이 저질러진 것이다.

이와 관련,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회계사 비리가 처음 금융위원회에서 적발된 지난 8월 이후 ▲회계법인 내 모든 임직원의 감사대상회사 주식거래 전면제한 ▲주식거래 관리시스템 현황 사업보고서 공시 등 대폭적인 개선책을 내놨다.

아울러 내부정보를 이용한 사익 도모가 심각한 불법행위라는 점을 주지시키기 위해 오는 2017년부터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직업윤리 과목을 출제토록 했다. 회계사 직무연수시간 중 연 2시간에 불과했던 직업윤리 교육시간 역시 8시간으로 확대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이번에 불거진 회계사 비리는 업계 내부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며 “회계사라는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신뢰도인 만큼 국민적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남부지검 문찬석 2차장검사는 “전문직역 종사자들의 구조적 비리를 집중 단속토록 한 법무부와 대검 지침에 따라 회계사 비리 단속을 위해 엄정한 수사를 펼쳤다”며 “이번 수사가 자본시장의 건전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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