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솔로몬]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이지만 보험은 보험을 가입한 이후에 새로이 발생한 질병이나 사고를 보장해 주는 금융상품입니다.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보험은 이미 아픈 사람들이 적은 비용으로 많은 보장을 받기 위해 가입하는 이상한 제도가 되고 말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상법에서는 보험의 무효 사유 중 하나로 보험사고의 객관적 확정의 효과에 대해 명시를 해두고 있습니다.

 

▲ 공광길 RMS손해사정 이사

상법 제644조는 보험계약당시에 보험사고가 이미 발생했거나 또는 발생할 수 없는 것인 때에는 그 계약은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당사자 쌍방과 피보험자가 이를 알지 못한 때에는 예외로 보고 있습니다.

이를 법률적인 용어로 ‘보험사고의 객관적 확정 효과’라고 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질병이든 상해든 보험을 가입한 이후 진단되거나 발생돼야 합니다.

만일 피보험자가 이미 보험가입 전부터 진단 받았거나 사고가 보험가입 전에 발생했음에도 보험 계약을 했다면 이는 무효가 된다는 것입니다.

종신보험의 경우를 예로 들면 종신보험의 주계약은 사망을 담보하는 것입니다.

보험을 가입하고 피보험자가 질병이든 사고든 어떤 이유로 사망을 하게 되면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것이므로 이미 사망한 사람은 종신보험을 가입할 수 없습니다.

설사 절차상의 오류로 인해 사망자가 보험에 가입됐다 하더라도 사망한 사람이 보험가입 이후 다시 사망할 수 없는 것처럼 애초에 이미 사고가 발생했거나 아예 발생할 수 없는 것일 경우에는 계약을 무효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판례 하나가 있습니다.

보험계약자 A씨는 보험을 가입하기 이전에 ‘근긴장성 근이양증’이라는 병을 진단 받고 보험을 가입했습니다.

이 병은 유전질환의 일종으로 근육에 장애를 일으키며 아직까지는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습니다.

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병의 진행이 계속될 경우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병을 진단 받고 보험을 가입한 A씨는 보험가입 이후 5년이 경과한 후 후유장해 1급 진단을 받게 됐고 S생명을 상대로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이에 보험회사는 근이양증이 발병한 이상 보험사고인 제1급 장해의 발생을 피할 수 없으며, 근이양증으로 인해 건강상태가 일반적인 자연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돼 사망에 이를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이유로 이미 보험가입 전 현재의 상태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상법 제644조를 들어 보험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상법 제644조는 보험계약 당시 보험사고가 이미 발생한 때에 그 계약을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설사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보험사고의 발생이 필연적으로 예견된다고 하더라도 보험계약 체결 당시 이미 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이상 상법 제644조를 적용해 보험계약을 무효로 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즉 보험가입자가 비록 보험계약 체결 이전에 근이양증 진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보험사고가 보험계약 체결 이전에 발생하지 않은 이상 위 보험계약이 무효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해당 보험이 사망을 담보로 하는 보험의 경우 보험가입 전 사망이 아니면 적용할 수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1급 장해를 담보하는 보험의 경우 보험가입 이전에 이미 1급 장해가 아니라면 이를 무효로 할 수 없습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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