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든 내 곳간부터 채운다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동참하라며 아무리 돈을 풀라고 부르짖어도 기업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겉으로는 투자를 활성화하고 고용을 늘리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 경기 불황을 이유로 볼멘소리를 낸다. 하지만 국내 대표 기업들의 집단이라는 10대 그룹이 올해 들어서만 또 10조원의 돈을 회사 내에 차곡차곡 쌓았다. 대한민국 기업들의 신뢰도는 점점 추락하고 있다.

국내 10대 그룹이 올해 들어서만 10조원이 넘는 이익을 회사 내에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파이낸셜투데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0대그룹 소속 93개 상장사의 올 2분기 말(6월 30일) 기준 이익잉여금은 총 437조9367억원으로 지난해 말(12월 31일) 427조4540억원 대비 10조4827억원(2.5%) 증가했다.

이에 따르면 10대 그룹은 올해 들어 불과 6개월 만에 10조원이 훌쩍 넘는 돈을 회사 내에 더 쌓은 셈이다. 실제로 이 기간 이익잉여금이 줄어든 그룹은 실적 부진에 시름하고 있는 한진그룹, 현대중공업그룹 2곳뿐이었다.

◆‘톱3’의 위엄

특히 10대 그룹 안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눈길을 끌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5조원에 가까운 돈을 쌓으며 이익잉여금 증가폭이 가장 컸고, 삼성그룹과 SK그룹도 각각 2조5000억원, 1조6000억원 대의 이익잉여금을 축적했다.

국내 10대 그룹 중 1~3위를 차지하는 이들이 올해 들어 사내에 쌓은 돈만 9조원이 넘는 것. 사실상 10대 그룹 이익잉여금 증가분의 90% 가까이가 이들 3대 그룹의 몫이었던 셈이다.

현대자동차그룹 소속 10개 상장사의 올 2분기 말 기준 이익잉여금은 94조4823억원으로 지난해 말(89조5768억원) 대비 4조9055억원 증가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그룹 소속 상장사 중 올해 들어 이익잉여금이 줄어든 계열사는 현대로템 한 곳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자동차 3인방’을 중심으로 나머지 계열사들은 일제히 증가세를 보였다.

10대 그룹 이익잉여금 올해 10조원 증가
‘부익부 빈익빈’ 삼성·현대車·SK 9조원↑

삼성그룹 소속 17개 상장사의 이익잉여금 역시 179조8773억원으로 같은기간(177조3070억원) 대비 2조5703억원(1.4%)이나 늘었다. 최악의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삼성중공업의 이익잉여금이 1조원 넘게 줄었지만, 그룹 내 제조와 금융 계열사들의 맏형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이익잉여금을 많이 쌓았다.

SK그룹 소속 15개 상장사의 이익잉여금은 35조3615억원에서 37조17억원으로 1조6402억원(4.6%) 증가했다. 하지만 계열사 별로 보면 주력 회사인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을 비롯, 지주사인 ㈜SK의 이익잉여금까지 감소세를 보였다. 그 와중 SK그룹의 새로운 효자로 떠오른 SK하이닉스가 2조원 넘게 이익잉여금을 쌓으며 그룹 전체 증가세를 이끌었다.

◆쌓고 또 쌓고

롯데그룹도 1조원 가까운 돈을 축적했다. 롯데그룹 소속 8개 상장사의 올 2분기 말 기준 이익잉여금은 22조8055억원으로 지난해 말(21조9808억원) 대비 8247억원(3.8%) 증가했다. IT서비스업체인 현대정보기술의 이익잉여금이 20억원 가량 줄어든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상장 계열사는 일제히 증가세를 나타냈다. 특히 롯데케미칼이 5000억원 넘는 돈을 쌓으며 롯데쇼핑 등 주력 유통계열사들을 압도해 시선을 끌었다.

LG그룹 소속 12개 상장사의 이익잉여금은 31조1096억원으로 같은기간(30조3230억원) 대비 7866억원(2.6%) 늘었다. 스마트폰 사업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전자 계열사들의 맏형 LG전자가 감소세를 보였지만, LG그룹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올라선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의 이익잉여금이 각각 3000억원 내외의 증가폭을 보였다.

돈 벌면 쌓는다…한진·현대重만 감소세
각 그룹 주계열사들 ‘모으고 또 모으고’

한화그룹 소속 8개 상장사의 이익잉여금도 이 기간 7조7692억원에서 8조891억원으로 3199억원(4.1%) 증가했다. 그룹의 중심이 된 한화생명이 2000억원이 넘는 이익잉여금을 쌓으며 그룹 전체 증가폭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포스코그룹 소속 7개 상장사의 이익잉여금도 42조6406억원에서 42조7430억원으로 1024억원 늘었다. GS그룹 소속 8개 상장사의 경우 8조267억원에서 8조493억원으로 226억원(0.3%) 증가했다.

반면 한진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은 이익잉여금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한진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의 이익잉여금 감소액은 각각 2404억원, 4491억원. 두 그룹의 주력 계열사이자 최근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대한항공, 현대중공업에서 각각 3000억원, 5000억원에 달하는 이익잉여금이 빠져나간 영향이 컸다.

◆계열사별 순위

계열사 별로 봐도 10대그룹 소속 93개 상장사 중 73.1%인 68곳의 이익잉여금이 늘었다. 10대 그룹 기업 4곳 중 3곳 가까이가 올해 들어 현금을 더 쌓은 셈이다.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 별 이익잉여금 증가폭 ‘상위 톱 10’에는 역시 각 그룹의 대표 기업들이 자리했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 삼성그룹이 각각 4개, 3개 계열사를 집어넣으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나머지 3개사는 각각 SK와 LG, 롯데그룹 소속이었다.

이익잉여금 규모와 증가액 1위는 단연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의 올 2분기 말 기준 이익잉여금은 137조6680억원으로 지난해 말 134조4642억원에 비해 3조2038억원(2.4%) 증가했다.

그 다음으로 현대자동차의 이익잉여금이 43조3448억원으로 같은기간(40조9794억원) 대비 2조3654억원(5.8%) 늘며 증가폭이 컸다. 또 SK하이닉스의 이익잉여금이 9조8350억원에서 12조148억원으로 2조1798억원(22.2%)이나 증가했다.

이어 ▲기아자동차 +1조723억원(14조8502억원→15조9225억원) ▲현대모비스 +7273억원(15조4884억원→16조2157억원) ▲롯데케미칼 +5434억원(5조6816억원→6조2250억원) ▲삼성생명 +5142억원(10조138억원→10조5280억원) ▲현대제철 +3610억원(9조1279억원→9조4889억원) ▲삼성화재 +3339억원(6조2107억원→6조5446억원) ▲LG디스플레이 +3226억원(6조5836억원→6조6962억원) 등의 이익잉여금이 많이 증가했다.

반면 실적 악화에 고심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의 올 2분기 말 이익잉여금은 3조4444억원으로 지난해 말(4조7906억원) 대비 1조3462억원 급감했다. 이어 같은기간 ㈜SK가 1조6428억원에서 1조221억원으로, 현대중공업이 13조145억원에서 12조5433억원으로 각각 이익잉여금이 6207억원, 4712억원 줄었다.

이밖에 이익잉여금이 많이 줄어든 10대 그룹 소속 상장 계열사는 ▲삼성SDI -4501억원(5조728억원→4조6227억원) ▲삼성전기 -3018억원(3974억원→956억원) ▲대한항공 -2960억원(1조4626억원→1조1666억원) ▲LG전자 -2528억원(5조5509억원→5조2981억원) ▲포스코플랜텍 -2205억원(-5888억원→-8093억원) ▲SK텔레콤 -790억원(12조9968억원→12조9178억원) ▲SK이노베이션 -458억원(6조8092억원→6조7634억원) 등 순이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