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주가연계증권(ELS) 상품 운용 과정에서 발생한 시세 조작에 따른 피해 보상 분쟁에 대해 대법원이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종목형 ELS 상품 투자자 윤모(70)씨 등 3명이 대우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상환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취지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판결로 대법원은 종목형 ELS 투자 과정에서 부정거래에 준하는 시세조종으로 인한 손실에 대해 투자자들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셈이다. 특히 법원에서 대기 중인 ELS 상품에 대한 시세조정 관련 분쟁의 쟁점이 사실상 이 사건과 비슷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LS는 개별 종목의 주가나 주가지수와 연계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투자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구조화된 파생결합상품이다. 조건을 만족하지 못할 경우 투자자는 일정 부분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그간 개별 종목을 자산으로 하는 ELS 관련 분쟁은 장 종료와 인접한 시간대에 보유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해 종가가 떨어진 상황에 대한 증권사와 투자자의 의견이 엇갈리며 주로 발생했다. 증권사는 상품 운용 과정에서의 정당한 델타 헷지라고 주장한 반면 투자자들은 불법적인 시세조종 행위로 이를 간주했다.

델타 헷지는 기초 자산에 대한 헷지 거래를 했던 회사가 이를 보유한 뒤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을 매수, 오르면 매도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매매 기법이다. 이 과정에서 조건 성취가 결정되는 시점 또는 상황에 가까워졌을 때 매도 물량이 크게 발생하게 되면 ELS 조건을 만족하지 못해 투자자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생긴다.

이번 사건은 조건 만기 시점에 근접해 이해 상충이 발생한 상황에서 증권사의 신의 성실의 문제를 지적한 첫 대법원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재판부는 “증권사가 ELS 관련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른 자산 운용 건전성 확보 차원의 위험 회피 목적의 거래를 했더라도 약정 평가기준일과 근접해 투자자와의 사이에서 이해 상충이 발생한다면 시기와 방법 등에 비춘 합리성이 인정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보유 주식 상당량을 장 전반에 걸쳐 분산 매도해 종가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 없이 종료 무렵 대량으로 기준 가격 이하의 매도 주문을 했다”며 “이는 투자자보호의무를 소홀히 해 신의성실에 반해 ELS의 중도상환조건 성취를 방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건 관련,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2009년 7월 21일 헤지 물량을 종가 결정 시간대에 과도하게 거래했다며 공정거래질서 저해와 투자자의 충실의무 위반 등의 이유로 대우증권에 제재금 5000만원을 부과하기도 했다.

ELS 상품에 대한 시세 조작 문제는 지난 2010년 처음 법적으로 인정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10년 7월1일 공모형 ELS 상품에 대해 두 번째 중간 평가일에 기초자산에 대한 집중 매도하는 방식으로 주가조작을 한 혐의로 진행된 민사 소송에서 발행사 A증권사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지난 4월9일 대법원은 제임스 블루 로얄뱅크오브캐나다(RBC) 소속 트레이더가 포스코와 SK 보통주를 기초 자산으로하는 스텝다운(조건에 따른 성립 가격에 따라 약정 수익률을 지급)형 ‘한화스마트 주가연계증권 10호’에 대한 시세조작 혐의에 대해 투자자들의 집단 소송을 인정하기도 했다.

한편 대법원은 최근에는 하나 또는 복수의 지수를 따라 수익이 결정되거나 손실 폭을 줄일 수 있도록 조건을 조정한 상품인 지수형 ELS와 원금보장형 ELS가 주로 발행되고 있어 이같은 문제는 줄어들 것으로 봤다. 이들 상품은 한, 두 개 종목에만 크게 의존하지 않아 몇 종목을 대량매도해 시세를 조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송성현 한누리법무법인 변호사는 “쟁점이 됐던 부분은 다른 분쟁들과 같이 만기나 중도 상환 조건 성취 무렵에 발생했거나 조건 달성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시세에 영향을 줬던 매매가 문제됐던 것”이라며 “대법원은 이미 시세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증권사가 인식하고 있었다는 판단 아래 이번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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