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총부터 군함까지 ‘광대역 비리’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나라 살림이 어수선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치의 세수부족에 시름했다. 경기불황으로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매년 반복되는 정부의 한결같은 해명이지만 정작 국민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흥청망청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을 연중기획으로 담는다.

군 관련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고 자살사고와 군 내 가혹행위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 됐다. 특히 방산비리 문제는 합동수사단까지 꾸려 대대적인 토벌에 나섰음에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어 국가안보를 흔들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에 눈이 멀어 국가안보는 뒷전인 그들의 추태에 일각에서는 ‘매국노’라는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 계속되는 난치병

대한민국 국군에게 있어서 방산비리는 고질병과도 같은 존재다. 소총부터 시작해서 전차와 군함, 대공포 등 군 전반적으로 퍼져있다. 하지만 군내에서의 개선의지도 부족했거니와 적발된다 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조기에 뿌리 뽑지 못했다. 그러던 중 최근 장성급 관료와 대기업 총수까지 연루됐던 통영함 사태가 터지면서 방산비리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통영함은 평택함을 대체할 목적으로 건조된 수상 구조함으로 159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평택함이 노후된 기관으로 인해 현장에 늦게 도착했고, 수중 물체 탐색 능력도 좋지 못해 천안함의 잔해 탐색 또한 늦어졌다.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통영함은 평택함의 최고속도 15노트보다 빠른 21노트로 개선하고 수중 물체 탐색용 첨단 장비 사이드스캔 소나(음파탐지기)와 수중 무인 탐사기를 탑재할 예정이었다. 2010년 10월부터 사업이 시작됐고 2012년 9월 진수식을 가지면서 통영함의 전력화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통영함에 숨겨진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통영함은 원양어선어군 탐지기 장착
복합소총 세계최초 꿈에 팔아버린 양심

세월호 침몰 당시 통영함은 예상 성능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해군에 인도되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13년 10월에 인도될 예정이었으나 해군측이 정한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던 것. 이런 이유로 통영함은 세월호 침몰 사고현장에 투입되지 못했고 비난여론이 빗발쳤다. 이에 감사원은 지난해 5월 ‘군 전력증강 실태’ 특수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방사청이 음파탐지기 구매 과정에서 애초 군이 요구했던 성능보다 떨어지는 수준으로 성능 기준을 변경했다”며 “뿐만아니라 2억원짜리 음파탐지기를 41억원에 구매하게 된 경위에 대해 집중 조사했다”고 밝혔다. 결과론적으로는 군납비리로 인수가 거부돼 세월호 구조에 투입하지 못했다는 의혹이 현실화 된 것이다. 검찰은 음파탐지기 사양 부분을 도려내 다른 내용을 붙여 복사한 뒤 서류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방위사업청 출신 퇴역 장교들을 체포하고 납품업체를 압수수색하는 등 전방위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이후 추가조사에서 문제의 음파탐지기를 납품한 업체의 부사장이 음파탐지기 선정을 주도한 방위사업청 A중령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문제의 음파탐지기를 떼어내고 땜질 처방으로 어군 탐지기(물고기를 추적하는 장치)를 장착했다는 것이다. 방사청은 성능 평가를 위해 한시적으로 장착했다고 했지만 국회에서는 군함에 어군 탐지기를 설치한 것 자체가 위법이고 음파탐지기 납품 업체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내 최초 구조함 통영함.

결국 지난해 11월 28일 해군은 문제가 되는 선체고정음파탐지기(HMS)와 수중무인탐사기(ROV)부분을 떼어낸 채 그대로 전력화시키기로 결정했다. 합동참모본부는 “통영함의 HMS와 ROV만 전력화 시기를 각각 2017년 9월 이전, 2015년 12월 이전으로 늦추는 소요·사업계획 수정안을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합참 관계자는 “광양함과 평택함이 너무 노후화돼 전력 공백이 심각한 상황이다”라며 “통영함이 현재 상태로 전력화해도 기본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당분간 통영함은 해상구조의 기본인 수중탐지를 자체적으로 할 수가 없어 다른 함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겉으로는 광양함의 노후화에 따른 시급한 구조함 소요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해당 부품을 담당한 국내업체들을 위해 통영함을 ‘장님’으로 만들면서 까지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 품질조사결과 조작

이러한 방산비리는 대형 선박 뿐 아니라 보병에게 지급되는 개인 화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K-11은 레이저측정기를 비롯해 열상표적탐지장치, 20mm 공중폭발탄 발사기, 5.56mm 소총탄을 갖춘 유효사거리 460~500m 차기 복합형 소총이다. K-11은 2000년 국방과학연구소 주도 하에 S&T대우를 비롯한 풍산과 현대제이콤, 이오시스템, 한화가 공동 개발에 참여했고 2008년 2월 기준 47개 심사 시험평가를 통과, 국산 복합형 소총으로 최종 낙점됐다.

이후 정당 제작비 1600만원에 이르는 K-11은 2010년 6월 육군 7사단 등 총 39정이 실제 군 전력화를 위해 배정됐고 곧이어 추가 생산량 1142정 보급 계획도 마련됐다.

하지만 국방기술품질원이 최근 2차 생산물량으로 양산한 208정 중 80정에 대한 부분조사 무결점 테스트 결과 38정이 불량 제조물로 판명됐다. 전체 생산량 중 47.5%가 불량품인 셈이다. 일반 가전제품에 비유하면 제조라인을 중단해야 할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S&T대우와 방위사업청은 208정에 대한 전수(전체 양산제품)조사를 2회에 나눠 실시했고 이 결과 1차 조사량인 160정에서 6.9% 불량률이 나왔고 나머지 49정 중 15정은 모두 불합격 불량품으로 밝혀졌다.

이에 방위산업체 관계자는 “S&T대우가 수작업을 거쳐 제조해왔지만 이후 수량 맞추기에 급급해 대량생산체제로 양산방식을 변경해 나타난 결과이다”며 “문제는 수천억을 들여 양산되는 K-11소총이 제품 결함으로 자칫하면 아군을 죽이는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결함에도 비리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조사단 관계자는 “K-11 복합형 소총의 핵심 부품인 사격 통제장치를 공급하면서 조작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시험검사 방법을 조작한 혐의(사기)로 방산업체 E사 사업본부장 이 모씨와 제품기술팀 차장 장 모씨, 품질경영팀 과장 박 모씨를 구속 기속했다”고 전했다.

▲국산 복합형 소총 K11.

이 씨 등은 품질검사가 국방기술품질원 입회하에 검사 장비를 갖춘 양산업체에서 이뤄지는 점을 악용해 규격 미달 장비를 납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충격시험 장비의 재질과 가속도계 센서 위치를 임의로 바꿔 국방 규격에 정해진 충격량의 3분의 1만 부품에 전달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E사는 품질검사를 통과한 250대 가운데 1차로 납품한 42대의 공급가 5억4883만원을 지급받았다.

그냥 쐈을 뿐인데 포신 ‘일도양단’
“계획 잘못 세워 ‘군피아’ 지속발생”

◆ 무기제작 경험 ‘전무’

적 항공기를 방어하기 위한 대공포가 가짜 포신 납품으로 인해 두 동강난 사례도 있다. 군납업체 B사 대표 안 모씨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오리콘 대공포’ 부품인 포신 79개를 국내 무자격 업체 Y사에 제작을 맡기고 국방부에 6차례 위장 납품해 48억8000만원을 챙겼다. 안 씨는 불량 포신을 일반 물자로 속여 홍콩과 미국으로 반출했고, 오리콘 대공포 제작 회사인 스위스 콘트라베스가 만든 규격 제품인 것처럼 꾸며 역수입했다.

안 씨는 이 방법으로 방사청의 경쟁 입찰에서 다른 업체보다 2~4배 낮은 금액의 응찰가를 제시해 계약을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안 씨가 제작을 맡긴 Y사는 무기 제작 경험이 전무했고 열처리 시설도 갖추지 못한 곳으로 조사결과 밝혀졌다. Y사는 폐기 처분된 포신과 설계도면, 원자재를 받아 포신을 제작했는데 한국기계연구원에서 충격반응 실험을 진행한 결과 곳곳에 균열이 생기면서 파손되는 등 불량 정도가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리콘 화포의 경우 매년 2번의 대공사격을 진행한다. 2011년 3월 충남의 한 사격장에서 정기 사격훈련 중 사용된 가짜 포 몸통이 800여발을 사격한 뒤 두 동강 나는 등 그간 납품된 포신 79개중 6개가 훈련사격 때 조기 균열로 파손됐다.

최근 국군기무사령부 전현직 간부가 군 전략물자인 탄창을 밀수출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에 구속됐다. 전 기무사 소령 이 모씨는 현역 기무사 소령 양 모씨, 군수품 판매업자 노 모씨와 손잡고 탄창 3만여개를 자동차 오일필터로 위장해 레바논의 밀매업자에게 밀수출했다. 이 씨는 이 과정에서 3억6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넘어간 탄창은 미국이 테러단체로 지목한 중동의 무장세력이 사들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쯤 되면 영화에서 테러리스트에게 물자를 제공하는 스파이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방산비리를 누구보다 더 감시해야할 기구인 기무사가 내부에서 방산비리를 조장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은 마음 편히 잠에 들 수 없을 것이다.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방산비리에 대해 많이 보도가 되는데, 방산비리라는 것은 방산 부실의 측면, 예산의 우선순위를 잘못 세워 장비를 적기에 교체하지 못하는 문제 등이 있다”며 “군이라는 특수성에 기인해 ‘군피아’로 대변될 정도로 반복돼 발생하는 데 어떻게 잡을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은 “방산비리 등의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많은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비리 등 문제발생 시 청장부터 책임지는 사업관리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했다.

장 청장은 “방사청은 소요군·업체 등과 협업하고 각계의 외부전문가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인사·조직 체계 및 사업·계약 업무 프로세스 혁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방산비리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더욱 투명하고 생산적인 방위사업 추진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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