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언어로 사회가치를 높인다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기업과 공공기관, NGO 등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특정한 주제의 아이디어, 제안, 기획 등을 심사해 상금을 비롯한 특전을 제공하는 공모전. 구직과정에서 가산점을 주거나 대외활동을 인정 해주는 기업들이 늘어남에 따라 공모전 입상은 취준생들의 필수가 됐다. 공모전을 찾아 이곳저곳의 문을 두드리고 밤을 새워가며 공모전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의 몸부림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수상 기준 모호

문제는 ‘아이디어 도둑’이다. 열심히 준비해 출품했더니 주최 측이 ‘브랜드 방향성에 적합한 작품이 없다’ ‘응모작 수와 점수 미달로 공모전을 중단한다’ 등의 모호한 이유만으로 취준생들의 노력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경우 대부분의 응모자들은 응모작을 반환받지 못한다. 응모작에 대한 사후 처리 방안에 대해서 주최 측은 공통된 답변을 내놓는다. 공모전이 취소되거나 수상을 하지 않을 경우 응모작은 모두 폐기처분한다는 것. 그러나 확인할 방법은 없다.

실제로 지난 2월 말 새롭게 론칭하는 호텔 네이밍 공모전을 진행하고도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아 논란이 됐던 S호텔도 “접수된 출품작은 돌려주지는 않지만 원본 파일을 모두 폐기한 상태”라고 해명한 바 있다. S호텔은 또 “디자인과 카피문구를 가장 중요한 심사 기준으로 삼고 심사를 진행했지만 최저기준점에 미치는 작품이 하나도 없었다”고 수상작 미선정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S호텔은 당시 공모전을 진행하면서 응모 주제 자체를 추상적으로 정해 놓고 그 탓을 응모자들에게 돌리려고 한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취준생들이 일부 기업의 양심 없는 공모전을 두고 ‘땅 집고 헤엄치기’ ‘단물 빨아먹기’ ‘합법적인 도둑질’ 털도 안 뜯고 날로 먹는 날 도둑놈 심보‘ 등의 질타를 하는 이유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제정한 ‘콘텐츠 공모전 표준 가이드라인(안)’에서는 ‘공모전의 주최는 응모작들 중 입상하지 않은 응모작에 대해서는 어떠한 권리도 취득할 수 없으며, 입상한 응모작에 대해서도 저작재산권의 전체나 일부를 양수하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고지할 수 없다’고 나와 있다.

일회성 구조 벗어나 지속적 성장 추구
사회적기업과 함께 공모전의 바른 길 제시

그러나 이는 법적 처벌 근거가 없는 권고사안일 뿐이다. 다만 문체부 저작권 정책과 관계자는 “가이드라인 발표 후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도로공사 등 15개 공공기관과 삼성전자 등 4개 민간기업의 공모전 지식재산권 귀속·사용 관련 불공정약관 조항 시정에 나서고 이후 많은 기업들이 가이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문체부로 문의를 하곤 한다”며 “가이드라인에 따르려는 공모전 주최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아직 규모는 작지만 울림이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공모전대행전문업체가 있다. ‘세상의 언어로 사회가치를 높이자’는 모토를 내세우는 ‘착한공모전’이다.

착한공모전은 지난 14일 벚꽃축제가 열린 송파 석촌호수에서 ‘내가 생각하는 석촌호수의 새이름은?’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응모 100여건을 받아 그중 6개의 이름을 현장에서 투표했다. 1500여명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피어나루’와 ‘송파그린호수’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실제로 석촌호수의 이름이 바뀌는 것이 아닌, 착한공모전에서 상상력을 기반으로 진행한 가상공모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새로운 형태의 투표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 14일 벚꽃축제가 열린 송파 석촌호수에서 벚꽃축제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석촌호수의 새이름은?’이라는 주제로 열린 현장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1500여명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피어나루’와 ‘송파그린호수’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착한공모전은 지난 3월23일부터 4월15일까지 시청역, 정자역, 군자역, 신림역, 강동역, 잠실역,신천역 등 서울시내 7개 역사에서 출퇴근길 서울시민들의 건강을 책임질 ‘쌀빵’에 대한 네이밍 공모전을 진행했다. 지하철 역사 7개 지점의 이름도 없는 작은 빵집의 공모전으로 브랜드 마케팅이 절실한 중소기업의 바람을 담고 있는 공모전으로 마감날까지 약 1000점의 상호명이 응모접수됐다.

착한공모전은 이외에도 ‘반려동물위탁 중개서비스 네이밍 공모’ ‘수출입중개업 상호 네이밍 공모’ ‘레슨 중개서비스 네이밍 공모’ ‘소나무이야기 펜션 포토콜라쥬+6행시 공모’ ‘축복받는 우리 아기 작명 공모’ ‘2015년 중소기업 브랜드공모전 모집 공고’ ‘두꺼비세상 슬로건 공모’ 등을 진행했다.

착한공모전에 참가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사회적기업 또는 중소기업이다. 또한 최종 선정된 작품 이외의 응모작에 대한 저작권은 모두 응모자에게 귀속된다. 시상금에서 그치는 일회성 구조에서 벗어나 시상금의 포인트화를 통한 중소기업·사회적기업의 판로개척에 힘쓰고 있다.

의미있는 시작

착한공모전은 ‘왜 공모전은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만 진행하는 걸까?’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하게 됐다. 소병인 착한공모전 대표는 “대학생 때부터 수만은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공모전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활용하지 않는 현 공모전들에 염증을 느끼며, 공모전의 선순환 구조를 그리기 시작했다”며 “집단지성을 이용한 공모전을 통해 사람들의 기발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사회가치를 높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병인 대표는 “아직은 작은 스타트업이고, 구상하는 공모전들을 마음껏 펼쳐 보기는 힘들지만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 나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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