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솔로몬] 인터넷 사용이 일반화됐고 전자상거래가 오프라인거래만큼이나 우리 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하거나 작은 물건 하나라도 사려고 하면 우리는 항상 수많은 ‘약관’에 동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동의’가 워낙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이뤄지다보니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마치 동네 슈퍼에서 계산대에 사려고하는 물건을 올려놓듯 약관에 동의하는 것은 상품을 구매하기 위한 일상적인 절차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 오광균 녹색소비자연대 변호사

일반적으로 약관은 “그 명칭이나 형태 또는 범위를 불문하고 계약의 일방당사자가 다수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일정한 형식에 따라 미리 마련한 계약의 내용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크 트웨인을 흉내 내어 약관을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약관을 읽지 않는 이유는 우선 너무 귀찮기 때문입니다.

물론 식당 출입문에 ‘신발은 책임지지 않습니다’라고 써 붙인 것도 약관에 해당하긴 합니다만 대부분의 약관은 법조문과 비슷한 형식으로 돼 있어 읽기가 싫어집니다.

또 약관에 동의하지 않으면 회원 가입을 할 수 없거나 상품 구매를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상품 구매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약관에 동의하게 됩니다.

하지만 무심코 동의한 약관 때문에 상당히 많은 분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학원과 헬스장입니다.

예를 들어 학원에서 아직 교습을 개시하지 않았다면 수강생이 원하는 경우 납부한 수강료의 전액을 반환해야 함에도 어떠한 사유로도 반환하지 않는다고 하는 조항이나 학원의 사유로 강의를 계속할 수 없는 경우 나머지 강의를 교재 제공 등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하는 조항은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법) 위반입니다

또 헬스장에서 체육시설의 이용 중 부상이나 사고에 대해는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하는 조항도 약관법 위반에 해당됩니다.

약관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하면 ‘편입통제’와 ‘해석통제’, ‘불공정통제’라는 세 단계를 차례로 거치게 됩니다.

이 세 가지 필터를 모두 통과한 조항만이 사업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계약의 내용으로서 효력이 생기게 됩니다.

편입통제란 약관 조항이 사업자와 고객 사이에 체결한 계약의 내용으로 인정된 것인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업자에게 약관의 명시·설명·교부의무가 있는데 만약 사업자가 약관을 명시하지 않았거나, 중요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거나, 약관을 교부하지 않았다면 약관은 당사자 사이의 계약의 내용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또한 약관과 별도로 개별약정을 하는 경우 가령 회원가입서에 손으로 적거나 ‘특약사항’이라고 표시하는 경우에는 개별약정우선의 원칙에 따라 약관 규정에도 불구하고 개별 약정이 우선적으로 효력이 있습니다.

해석통제란 약관 조항을 해석하는 방법에 대한 문제입니다.

약관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해석돼야 하고(객관적 해석의 원칙), 만약 약관 문구를 애매하거나 모호해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면 사업자에게 불리하게,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이를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불공정 통제란 약관 조항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고객에게 부당한 불이익을 주고 있는지를 심사해 만약 고객에게 부당하다면 그 조항을 무효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약관법은 고객이 약관에 무심코 동의를 했더라도 약관이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경우는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빈번하고 신속하게 거래가 이루어지는 현대사회의 특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보호 장치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약관이 불공정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법원의 판결에 의해 무효로 확인되기 전까지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객이 아무리 무효라고 주장하더라도 사업자가 약관 조항을 근거로 환불을 거부하거나 서비스에 불이익을 주는 경우에는 당장 대응할 강제적인 방법이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법률 지식이 깊지 않은 일반 소비자가 직접 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변호사를 선임하자니 피해금액보다 변호사 비용이 더 큰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업자와 싸우다가 결국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자율분쟁조정위원회로 사건을 가져가 조정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자율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은 매우 적은 비용으로도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당사자 중 어느 하나라도 조정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결국 사업자가 신중하게 약관을 작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불공정한 약관으로 인해 1차적으로는 소비자에게 피해가 가지만 법정 다툼으로 이어진다면 사업자로서도 영업에 많은 지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비슷한 유형의 피해자가 모여 공동소송으로 대응한다면 소비자가 부담해야하는 비용은 그만큼 줄어드는 반면 사업자가 감당해야할 위험은 그만큼 커지게 됩니다.

사업자 스스로 고객의 입장에서 약관을 작성하면 오히려 고객에게 신뢰를 받아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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