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상환자금 1000억 중 600억은 ‘BW’...“안갚아도 되는 건데”
BW 잠재수익률 100% 넘어 상환요구 가능성 無...증자금액 부풀리기 논란
유증 인수가 1만3630원 ‘헐값’...전일 종가(2만1200원) 대비 36% 싼 가격

HLB생명과학이 15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한 가운데, 회사 측이 유증의 명분으로 꺼내 든 채무상환자금 내역 중 신주인수권부사채(BW) 상환 항목을 두고 시장의 논란이 커지고 있다.

회사의 주가가 BW 행사가액(8889원)의 두 배를 초과하고 있어 채권자들이 BW의 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채무상환 내역에 BW를 추가하면서 증자 규모가 크게 부풀려진 데다, 신주 인수가격은 시가 대비 헐값 수준으로 책정되면서 기존 주주들의 반발 역시 커지는 분위기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HLB생명과학은 전일 1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공모방법은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이다.

1주당 인수가격이 1만3630원으로 책정됨에 따라 총 발행신주는 1100만5125주가 됐다. 이는 현주식총수(1억612만4453주)의 10.37%에 달하는 규모다. 구주 1주당 신주 약 0.1주를 인수할 권리가 발생한다.

신주배정기준일은 5월 10일이며, 구주주 청약일은 6월 14일~17일 2영업일간 진행된다. 실권주에 대한 일반공모는 6월 19~20일 양일간으로 예정됐다.

HLB생명과학은 이번 공모자금 1500억원을 ▲채무상환자금 981억원 ▲운영자금 443억원 ▲시설자금 60억원 등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대부분의 자금이 채무상환을 명목으로 모집되면서, 주주들에게 빚을 대신 갚아 달라는 모양새가 됐다.

HLB생명과학은 “당사의 차입금 규모 및 의존도가 수년간 큰 폭으로 증가했다”면서 “이와 같이 차입금 증가가 계속될 경우 유동성을 포함해 당사 재무 안정성에 일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금번 유상증자 조달자금 중 981억원을 차입금 상환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채무상환자금 981억원중 600억원이 9회차 BW 상환을 명목으로 책정됐다는 점이다. 9회차 BW의 현재 기준 행사가액은 8889원이다. 이는 HLB생명과학의 전일 종가 2만1200원 대비 절반 미만 수준의 가격이다.

다시 말해 BW투자자 입장에서는 해당 가격에 주식을 얻어 장내에서 매도할 경우 150%가량의 수익률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원금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극단적으로 낮다는 의미다.

HLB생명과학 측은 BW투자자들의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 행사에 대응하겠다는 명목으로 600억원을 편성했다. 사실상 갚지 않아도 될 채무를 명목 삼아 조달규모를 크게 부풀린 양상이 됐다.

주주배정 유상증자의 공모가격을 두고 ‘헐값’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1주당 모집가액이 1만3630원으로 책정됐는데, 이는 전일 종가 대비 36%가량 싼 가격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주주배정 증자는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존중해 증자에 참여할 권리를 부여한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존 주주들에게 자사 주식을 강매하는 양상에 가깝다”며 “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기보유 주식의 가치가 크게 훼손돼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주식시장에서 주주배정 증자가 악재로 여겨지며 주가가 지속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가 책정한 공모가격이 회사 적정 주가를 재평가하는 일종의 심리적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HLB생명과학은 이날 코스닥 시장에서 1만997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는 주주배정 증자 공시서류가 제출된 전일 대비 5.80% 하락한 가격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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