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 송 감독 ‘패스트 라이브즈’ 해성 役
“美 5년간은 준비기간으로 보낼 것”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배우 유태오. 사진=CJ ENM 그래픽=김영재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배우 유태오. 사진=CJ ENM 그래픽=김영재

《인터뷰》

한 사람의 국적을 결정하는 건 혈연인가, 공간인가, 문화인가. 한국인인 배우 유태오(42)의 성장배경은, 그렇지만 보통의 한국인과 같지 않다. 본명은 김치훈. 파독 광부와 간호사인 부모님 밑에 태어나 독일서 자랐고, 다른 ‘제3 문화 아이들이하 TCK·Third Culture Kids’처럼 ‘나는 누구인가?’를 반복해 되뇌었다. 주류인 독일과 부모의 세상인 한국, 둘 어디에도 편입되지 못하는 삶이 매일 반복됐다. “노력과 의지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게 제 운명이었어요.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한이 맺혀 있었죠. 결국 그런 한이 인생에서 슬픈 아픔? 아름다운 슬픔으로, 더 정확히 말하면 멜랑콜리로 표현이 됐죠.”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긴 간극에도 불구하고 아직 첫사랑을 기억하는 로맨티시스트 해성 역을 맡은 그는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누구든 각자 전문성이 있는데, 나는 나의 멜랑콜리 표현에 항상 자신감이 있다”며 “그 점을 누구보다 깊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고 어떤 문화에서도 그 감성을 자극할 방식이 뭔지 아는 게 나다. 그게 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유태오와의 일문일답

―TCK로서의 장점은 없습니까?

“냉면을 먹고 ‘시원하다’란 표현을 쓸지, ‘슴슴하다표준어 심심하다 혹은 삼삼하다’라고 할지 모르겠는 거죠. 우리나라 음식에서 짠맛이 있으면 ‘짭짤하다’도 있고 ‘짭조름하다’도 있는 거잖아요. 표현이 인식되는 이상 그 뒤에 감성도 있는 거예요. ‘슴슴하다’는 영어로 ‘블랜드Bland’를 쓸 수 있겠는데, 이건 부정적인 표현이고요. 그렇게 언어를 통해 인식하고 감정을 느끼고, 어느 곳에 가도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제 팔자죠. 근데 배우자가 제게 아티스트로서는 이게 축복이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더 많은 팔레트를 가진 거래요. 숙제죠, 어쩔 수 없는.”

그가 바라본 모국은 유교문화에 군대와 사무적 서열 관계 등 자기표현에 있어 주변의 눈치를 보는 나라다. ‘자기 목소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는가?’ 주변에 물었지만 함께 내린 답은 ‘아무도 없다’는 것. “그렇다면 최민식 선배님, 한석규 선배님 등께서 그 문화적 뒷배경을 뚫고 어떻게 연기로 본인의 목소리를 찾으셨는지 고민했어요. 제 해석은 ‘깡’인 거 같더라고요. 진솔하고 용감하게 자기표현을 하는 거잖아요. 그 기다란 고민 끝에 나도 깡을 가지고 표현해야겠다는 자신이 생겼어요.”

―‘레토’ 때는 자작곡 영상을 제작사에 보냈는데, 이번에는?

“해외 작품은 우선 그쪽에서 오디션 영상을 보내 달라고 해요. 셀프 테이프를 찍고 하죠. 대부분 아무리 시간을 많이 줘도 3~4일 안에 찍어야 하고, 시차 적응까지 생각하면 이틀밖에 없는 거죠. 2차 오디션은 줌으로 30분 정도 걸리는데요. 찍었던 걸 다른 방식으로도 보여 주고, 길게 하면 개인 얘기도 주고받으면서 한 1시간 걸리거든요? 이제 셀린 송 감독님을 뵙고 한번 신Scene을 연기했어요. 그런데 다른 신도 또 연기해 달라는 거예요.”

한국어가 미숙해 대본 숙지 속도가 느리다고 사양했지만, 송 감독은 막무가내였다. 본인도 교포라서 다 안다며 그냥 해 보라고 그를 재촉했다. 송 감독은 이를 회상하며 “300명 중 30명을 추려 2차 오디션을 가졌다. 어린아이와 어른이 공존하는 사람을 찾아야 했는데, 유태오 배우에게 그게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농담으로 ‘타임스퀘어 전광판 같은 얼굴’이라고 하곤 한다. 자그마한 감정도 잘 드러나는 배우다. 우리가 벼랑 끝까지 갈 수 있는지 알기 위해 오랫동안 오디션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3시간 반 동안 해성이 등장하는 신만 4번을 반복했고, 2주 후 캐스팅 확정을 전화로 알렸다. 특히 이날은 영화 ‘버티고’로 유태오가 청룡영화상 신인상을 받던 날이었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르고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한데요.

“전 사실 킬리언 머피가 받았으면 했어요. 동양적 감수성이긴 하지만, 선후배 관계에서 선배가 먼저 타는 게 맞다고 봤거든요. ‘28일 후’ ‘선샤인’⋯. 20년 전부터 킬리언 머피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가 됐으면 좋겠더라고요. 나중에 시상식 끝나고 저녁 자리에 킬리언 머피가 있길래, 용기를 내 갔죠. 당신이어서 좋았고, 옛날부터 좋아했고, 동양적인 정서도 설명하면서 지금은 당신이 대세니까 받을 걸 다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 자리에서 저를 안아 주더니 ‘크리스토퍼 놀란 만난 적 있어?’ 묻는 거예요. 못 만났다고 하니까 제 손을 딱 잡고 놀란 앞에 세워서 태오라고 소개해 줬어요.”

―앞으로 해외 활동은 어떤 각오로 진행할 예정인지.

“연기를 20년 동안 했어요. 그 안에는 저만의 철학도 있고요. 하지만 미국에선 신인이고, 5년간은 이 커뮤니티의 한 가족이 되려고 노력할 겁니다. 억셉트Accept, 인정, 즉 연기로 제 실력을 보여 줘야 한다는 거죠. 만약 다른 영화로 후보가 되고 그때는 상을 탄다면, 다시 올 그때를 위해 열심히 해야죠.”

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