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가 넘는 주가, 결국 FI 매도로 이어져”
최저조정가액으로 전량 상장시 주식총수 대비 17.77% 신주 발생

반도체 인쇄회로기판(PCB) 제조기업 심텍이 1200억원대 메자닌 사채 발행을 통해 막대한 설비투자 자금 조달에 나서며 주가에 악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최근 자본시장에서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에 대한 주주들의 인식이 악화됐다며, 이자율 및 리픽싱 조항 등 발행 조건 설정과 무관하게 주가에는 악재로 작용하는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11일 코스닥 시장에서 심텍 주가는 전거래일(8일) 대비 1.52% 하락한 2만9200원을 기록했다. 주가변동폭은 크지 않지만, 최근 심텍을 둘러싼 ‘빅딜’ 이슈를 고려하면 시장의 분위기는 상당히 냉담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심텍은 지난 8일과 이날 양일에 걸쳐 1200억원 규모의 메자닌 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사실을 공시했다. 8일에는 5회차 BW 권면 200억원을, 이날에는 4회차 CB 권면 1000억원의 발행을 결정했다.

각 발행의 행사 및 전환가액은 3만276원으로, 리픽싱(시가변동에 따른 가액조정)에 따른 최저조정가액은 2만1194원으로 동일하게 책정됐다. 이자율은 표면 0%, 만기 1% 수준이다. 대금 납입일은 12일이며, 재무적투자자(FI)로 다수의 증권사, 벤처캐피탈(VC), 사모펀드(PEF) 등이 참여했다.

앞서 2월 심텍 측은 국내 비메모리 라인을 추가 증설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조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조달 자금은 시스템 집적회로(IC) 향 제품 매출 확대를 위한 설비투자에 투입될 예정이다.

당장 자금 조달 조건은 사측 입장에선 나쁘지 않다. 우선 이자율의 수준이 최근 시장금리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낮은 편이며, 현재의 행사·전환가액을 기준으로 전량 주식 상장시 발생가능한 주식수(396만3535주)도 주식총수(3185만4143주) 대비 12.44% 수준에 불과하다. 매도청구권(콜옵션) 상한 역시 33%로 확보해 주식 전환에 대한 일부 방어가 가능한 조건이다.

투자업계에서는 현재의 자금조달 시장에서 이처럼 우호적인 조건으로 투자유치에 성공하는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번 심텍의 빅딜의 경우 FI들이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점쳐 우호적인 조건으로 베팅에 나섰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이번 딜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대규모 사채발행 소식에 주가는 하락하는 양상이다. 이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메자닌 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결국 주가를 끌어내리는 악재로 작용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진 탓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의 성장가능성과는 무관하게 투자자 사이에서 CB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다”며 “대부분의 경우 CB 발행에 따른 지분희석 및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증가) 이슈로 주가가 하락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심텍의 주가가 지속 하락해 전환가액이 최저수준으로 조정될 경우, 전량 주식상장시 발생하는 주식은 566만1979주가 될 전망이다. 이는 총 주식 수 대비 17.77%에 이르는 규모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실제로 FI들 역시 전환가액을 기준으로 차익실현에 나서기에, 주가가 전환가를 웃도는 시점부터 매도 물량이 쏟아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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