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 줄어들던 가계대출이 최근 몇 개월 사이 다시 늘기 시작하면서 금융당국이 경계감을 높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대출 태도가 느슨하다고 지적하면서 현장 점검에 나서겠다고 했고, 관련 규제 강화 및 제도 정비를 예고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지적에 당장 ‘가계대출이 늘어난 것이 은행 탓인가?’라는 물음표가 머리를 스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 올 때 우산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며 ‘상생금융’ 확대를 강조해 온 것은 금융당국이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권은 대출 금리 인하, 만기 연장 등을 결정하며 당국의 요구에 화답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도 마찬가지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통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하 DSR)을 회피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이를 처음 시작한 것은 정부다.

지난해 6월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새정부 가계대출 관리방향 및 단계적 규제 정상화 방안’을 보면 주택금융공사 정책모기지 제도 개선 추진 내용으로 ‘50년 만기 모기지 도입을 통한 대출 한도 확대’를 포함시켰다. 그러면서 연 소득 3000만원인 부부가 보금자리론을 통해 3억원을 대출받을 때 최장 만기를 40년에서 50년으로 확대하면 원리금 상환부담은 월 9만원 줄지만, 최고 대출가능금액은 2000만원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올해 1월 30일부터 특례보금자리론 신청을 받는다는 보도자료에는 ‘DSR 미적용’이라는 문구까지 박아놨다.

40조원 한도, 1년 한정으로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의 유효신청액수는 7월 말 기준 31조1000억원으로, 목표치의 78.5%를 소진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은 5월 금융통화위원회의에서 4월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 전환의 원인으로 특례보금자리론을 꼽기도 했다.

그러니까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은 은행이 아닌 정부라는 것이 맞는 말이다.

지난달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21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오른 것도 정부 탓이 크다. 8월 가계대출은 7월 대비 1조5912억원 늘었는데, 주담대가 작년 12월 이후 8개월 만에 가장 많은 2조1122억원 늘면서 가계대출 증가를 견인했다.

이는 50년 만기 주담대에 대한 정부의 규제 움직임에 가수요가 폭발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50년 만기 주담대 때문에 가계대출이 늘었다고 본 금융당국은 이 상품에 ‘연령 제한’ 등 규제 강화를 검토할 방침을 밝혔고, 이에 은행들은 상품 판매를 중단하거나 자체적으로 ‘연령 제한’을 걸었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은행들을 불러 50년 만기는 그대로 두되, DSR 산정 시 40년으로 할 것을 주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몰린 것이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 필요성을 내세우면서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한 것도 가계대출이 증가한 원인이다. 정부는 부동산 대출 규제의 단계적 정상화를 추진한다면서 DSR 규제는 그대로 두면서도, 담보인정비율(LTV) 규제 등을 완화했다. 다주택자의 규제지역 내 주담대를 허용하고, 임대·매매사업자도 주담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투기·투기과열지역의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담대도 풀었다.

‘상생금융’ 확대를 명분으로 한 금리 인하, ‘부동산 시장 연착륙’ 차원에서 추진된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등 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정부가 만들어놓고 이게 와서 그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니, 은행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규제 산업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몸을 낮추는 은행권에서도 “도대체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는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정책을 보면 너무 근시안적이다. 당장의 문제 해결,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계대출을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추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인 만큼 보다 멀리, 깊게, 차분한 시선으로 문제를 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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