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 이설아 기자
파이낸셜투데이 이설아 기자

여선웅 직방 부사장이 총선 출마를 시사하며, ‘을지로위원회’가 민주당의 성역이기에 이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참으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육아휴직 이후 복직한 한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언론에 전해진게 불과 지난달이었고, 현재까지 전세사기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들도 수 명이며, 바로 전일에도 현장에서 안전장치가 없어 한 20대 외국인노동자가 사고사했다.

도대체 어떤 ‘성역’에 속한 이들이, 이렇듯 쉬이 목숨을 저버리는가. 이들을 더는 을이라 불러서는 안된다면, 이들을 대변하는 것이 ‘기득권’이라면, 참으로 그 기득권은 선한 것이 분명하다.

정치를 가장 쉽게 하는 방법이 ‘갈라치기’고, 그렇게 갈라치기 해서 약자에게 침 뱉고, 있는 사람들의 편을 드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지만 적어도 이런 움직임을 ‘정풍운동’이라며 양머리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비단 민주당 뿐만 아니다. 여태껏 기본권 투쟁을 해온 약자들의 권리를 자신이 뭐 된다고 ‘타협할 수 있는 대상’이라며, 그 권리 쟁취를 적극적으로 반대해 온 진영에 일방적으로 ‘소통하겠다’고 구애를 벌이는 행위를 보면 참 우습다.

차별금지법 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며 선심 쓰는 조성주 전 정의당 마포구청장 후보 얘기다.

만약 현대에 노예제를 도입하자는 정신나간 소리가 존재하고, 주요 정당이 이를 일축하기는 커녕 대화와 소통을 하자며 협상장으로 끌어들이는 행위가 있다면 과연 용납될 것이라고 보는가.

약자들을 여태껏 ‘대화와 협상’을 배제해온 존재로 악마화하고, 그들의 권리를 대신해 내다버리겠다고 하는 것이 좌와 우를 떠난 ‘중원’인가.

도전자가 권력을 쟁취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말을 할 수 있는 만용이 용서될 수는 없다.

차별의 대상이었던 유대인들을 역으로 ‘자본수탈자’들이라며 낙인찍던 나치의 말로를 기억해보라.

정치의 목적이 약자 대변이 아니라 일신의 영달에 불과하다면, 그런 정치인이 권력을 누려야만 할 당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파이낸셜투데이 이설아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