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강북, 서울→경기도 ‘풍선효과’ 극심

▲ 1일 서울지하철 8호선 석촌역 인근에 부동산중개업소들이 밀집해 있다.

[파이낸셜투데이=신현호‧강리라 기자] 최근 직장인 박모(31)씨는 내년 봄 결혼을 앞두고 서울 강북지역에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갈수록 애간장만 태우고 있다. 전세물량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원하는 집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씨는 앞으로 전셋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런 ‘전세 가뭄’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은행 금리는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집주인들이 늘어나는 추세와 맞물려 전세대란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파투> 취재진이 현장으로 나가 부동산 시장을 들여다봤다.

◆ 강서지역, ‘전세 가뭄’ 심화

1일 오후 3시 서울 강서지역을 대표하는 주거지역인 목동. 이곳에서 전셋집을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하기 위해 서울지하철 5호선 목동역 8번출구 인근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들어갔다.

H중개소 대표 이모씨는 전셋집을 구한다는 말에 대뜸 난감한 표정부터 보였다. 이 대표는 “보여줄 수 있는 집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기자가 아파트인지 빌라인지 물건의 종류와 평수, 원하는 가격을 얘기하지도 않았음에도 말이다.

구체적으로 1억~1억3000만원에 방 2, 3개가 딸린 신혼집 빌라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하자 혹시나 하는 표정의 이 대표는 잠시 컴퓨터를 들여다본 뒤 “현재 나와있는 매물은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대표는 “요즘 다들 전세에서 월세로 바꿔버리니 도저히 물량을 맞출 수 없다”고 말했다.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다른 중개업소를 가는 중 휴대폰이 울려 전화를 받았다. 방금 나온 중개업소의 이 대표였다.

이 대표는 다급한 목소리로 “다른 중개업소에서 목2동에 1억3500만원짜리 빌라가 있다는데 한번 보고 가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안내에 따라 목동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한 빌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건물로, 매물로 나온 집은 4층이었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2개짜리 방에 자그마한 거실이 딸린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49.6㎡(15평) 남짓. 생각보다 크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이 대표는 “이 집이 2~3년 전 만해도 전셋값이 1억 ‘조금’ 넘는 집이었다. 그때는 1억으로 빌라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웬만한 빌라는 1억5000만원은 생각해야 한다”며 “이것도 언제 나갈지 몰라 빨리 결정하는게 좋다. 이미 4명이 보고 갔다더라”고 말했다.

◆ 강남, 전세 물건 나오자마자 계약 완료

강남지역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최근 이사철과 월세전환, 강남·강동·서초·송파구의 재건축으로 2만4000호 규모의 이주가 예상돼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래미안114부동산사무소의 김미정 대표는 <파투>와의 전화통화에서 “기본적으로 학군수요가 많아서 전세 매물이 손가락에 꼽힐 정도”라며 “최근 전세매물 찾는 사람이 급격히 증가했다. 전세 물건이 나오자마자 바로 계약되는 상황이지만 이마저도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C부동산의 이모씨 역시 “내년에 있을 재건축 이주민 수요를 감당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이미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전월세를 가리지 않고 많이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파‧강동, 월세 전환율 60%↑…“더 오를 것”

이날 오후 4시 30분 송파구인 서울지하철 8호선 석촌역 인근의 랜드공인중개사사무소에 들어가보니 전세를 찾는 고객의 전화를 응대하느라 분주한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중개소의 김현수 이사는 “요즘 이사철이라 전세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바쁘다. 실수요자들은 전세를 원하지만 집주인은 조금이라도 월세를 받으려한다”고 말했다.

최근 문제가 됐던 석촌호수 인근 도로의 ‘싱크홀’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셋값을 막지는 못했다.

김 이사는 싱크홀이 전셋값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전혀 영향이 없고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오히려 올랐다”고 말했다.

잠실인근의 부동산도 상황은 같았다.

송파공인중개사무소의 이홍배 대표는 “월세 전환율이 50~60%나 된다”며 “집주인이 월세를 2,30만원이라도 받으려고 해서 반전세가 많이 늘었다. 전세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중개소 주변에 위치한 다른 두 중개업소인 주머니 부동산, 강남부동산컨설팅 관계자도 “대부분 월세로 전환하는 추세라서 전셋집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천호역 5호선 인근 O부동산 대표 최모씨는 <파투>와의 통화에서 “원래 전세가 많이 없는 동네인데 강남에서 전세를 못 구한 사람들이 최근 강동쪽으로 문의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 강북, 전체 수요 받아내고 있지만…전셋값 고공행진 계속

강북지역 역시 전셋집 구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가뜩이나 전세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강북거주자들이 경기도지역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쌍문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윤모(30)씨는 “쌍문역 인근에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지만 물량이 달리자 경기도 인근까지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는 이같은 전세대란이 적어도 올해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팀장은 “전셋값이 이미 많이 올랐기 때문에 상승폭은 지난해보다 덜하겠지만 가격이 하락할 요인이 없기 때문에 올 연말까지 꾸준히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치솟는 전셋값에 해결책은 없을까. 전문가는 월세전환 추세를 반영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김 팀장은 “무리하게 전세금 지원을 확대하는 것 보다는 월세 전환이 현재 부동산 시장의 추세인 만큼 월세 수요를 감당할 지원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의 전셋값은 매매가의 70% 가까이 오르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KB국민은행 부동산정보사이트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이 64.6%로 전달보다 0.02%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2001년 9월과 10월의 기록과 같은 것으로 13년만에 최고치다.

구별로는 25개구 중 23개구가 전월 대비 상승(18개) 또는 보합(5개)을 기록했으나, 강남구(56.4%)와 양천구(61.5%)는 전월 대비 각각 0.1%포인트, 0.3%포인트 하락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재건축 규제완화 발표 후 두 지역의 아파트 매매가 상승분이 전세가 상승분을 초과해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3억1115만원으로 올해 2월 3억원대를 돌파한 후 신고가를 매월 갱신하고 있다.

최근 5년간의 추이를 살펴봐도 전셋값은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연평균 7.2%씩 올랐다.

1㎡당 전셋값은 ▲2009년 208만원 ▲2010년 229만원 ▲2011년 255만원 ▲2012년 261만원 ▲2013년 295만원 등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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