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기업, 영광의 상처만 남았다"

[파이낸셜투데이=김진아 기자]최근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이 좌불안석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와중에 노조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고 있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통운과 대우건설의 재매각부터 형제간의 지분 정리, 각 계열사들의 구조조정 마무리 등 손 봐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지만 노조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박 회장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

 

대한통운 재매각, 계열사 워크아웃...할일 투성이

노조의 퇴진압박, 경영능력 의심...‘사면초가’


박 회장이 현 상황까지 내몰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박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의 창립 60주년을 기념하여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무모하게 몸집을 불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박 회장은 계획대로 차례차례 인수를 해나갔다. 그리고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금호그룹 시련의 시작

금호그룹은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고 치열한 M&A(인수합병) 경쟁에서 이겼지만 결국 많은 것을 잃게 되는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걸렸다.

대우건설은 금호그룹이 삼키기엔 상대적으로 큰 규모였기 때문에 마침내 탈이 난 것이다. 무리하게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금호산업은 풋백옵션으로 인한 4조 2천억원을 떠안게 됐다.

금호산업은 금호석유화학→금호산업→대우건설→대한통운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서 중추적 구실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금호그룹의 지배구조가 파괴될 우려가 있었다.

당시 금호산업은 3조원에 달하는 부채가 있어서 풋백옵션 까지 떠안으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금호그룹은 대우건설을 인수 하자마자 대우빌딩까지 팔아치우며 허겁지겁 유동성을 확보하려 했으나 대우건설을 포기하는 방법 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미 두 건의 M&A가 끝날 무렵 시장에는 금호그룹의 유동성 위기설이 돌았고 끝내 현실화됐다.

대우건설을 내놓기로 결정한 뒤 박회장의 친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대표는 형에게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유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 추진 당시 반대의사를 밝혔음에도 박 회장이 지나치게 무모한 가격과 풋백옵션이라는 감당할 수없는 조건으로 인수를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가 형에게서 벗어나 독자노선을 가기로 결심하면서 ‘형제의 난’은 시작됐다.

▲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

형제간 정리 숙제로 남아

 

박 대표는 아들 박준경과 몇 차례에 걸쳐 금호산업 주식을 팔고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사들였다.

풋백옵션 부담이 있는 대우건설 최대 주주인 금호산업을 떨쳐내고 금호석유화학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에 박 회장은 대주주 4가계의 그룹 공동경영합의를 위반하고 일방적으로 보유 중인 금호산업 주식을 매각했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금호석유화학 지분은 금호가 4형제 일가가 10.01%씩 나눠가졌는데 박 대표가 이를 어기고 18.47%까지 지분을 늘린 것이다.

박 회장은 2009년 7월 28일 금호석유화학 이사회에서 박 대표를 해임시키고 자신 또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3월 복귀한 박 대표는 벼르고 있었다는 듯 2월 말과 이달 초 두 차례에 걸쳐 장내매수를 통해 금호석유화학의 보유지분을 늘렸다.

박 회장의 지분매입은 경영권을 보다 튼튼히 다지기 위함으로 분석되고 있다.

과거 박 회장과 경영권을 놓고 다퉜을 때부터 박 대표는 독자경영의 의지를 보였으며 앞으로도 경영권 강화를 위한 추가 지분매입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호석유화학이 금호그룹에서 따로 떨어져 나오기로 한 이상 형제간의 지분 정리와 계열분리가 우선무다. 그룹 내의 지휘체계를 일원화해야 업무상 혼란이 빚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이 끝나면 사옥을 이전해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에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또한 박 대표는 보유한 금호타이어 지분 전량을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박 회장의 장남 박세창 금호타이어 전무도 2월 16일~22일에 걸쳐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일부 처리한 것으로 보아 박 회장 부자 역시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정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 회장 발목잡는 악재들

▲ 금호아시아나 신문로 본관

 

이런 가운데 2009년 말 시작된 금호그룹 계열사들의 구조조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박 회장의 갈 길은 멀기만 하다.

대한통운의 재매각과 금호산업 등 계열사들의 워크아웃 졸업이 그것이다. 대한통운은 아직 매각대금을 받기도 전에 차익을 남길 것이란 기대감만 부풀려져 있다.

게다가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으로 채무를 늘릴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지난 1월 차세대 항공기 6대를 2조 465억원에 구입했다.

필시 대한통운이 재매각 되면 아시아나항공이 부채 부담에서 벗어나고 지난해 최대실적을 낸 만큼 정상화가 가능해진다는 계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494%나 되고 작년 순이익도 3천억원대에 그칠 것으로 추정돼 그간 황제경영에서 불거졌던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박 회장의 경영능력을 문제 삼고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금호타이어 노조는 금호그룹을 워크아웃으로 몰아간 장본인인 박 회장이 아무런 반성과 책임을 지지 않고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퇴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노조는 박 회장과 김종호 금호타이어 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죄로 검찰에 고소했다.

금호타이어는 채권단과의 협약 이행으로 인해 임금과 상여금을 반납한다는 협상안을 내걸었으나 노조의 반발로 워크아웃 진행에 타격이 예상된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박 회장을 보필해야할 주요 임원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나고 있다.

지난 8일 전 금호그룹 건설부문 신훈 부회장과 전 대우건설 전략기획본부장 김안석 부사장이 OCI그룹으로 영입됐다.

일각에서는 박 회장의 퇴진운동으로 입지가 좁아지자 내부결속력 약화로 인력들이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금호그룹 홍보실 김영식 차장은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두 분은 1년 전에 퇴임했고 사유는 박 회장의 퇴진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답했다.

박 회장은 지난해 10월 ‘워크아웃 조기졸업’이란 명분을 내걸고 복귀했으나 이 같은 악재더미 속에서 돌파구를 여간 찾기 힘들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경영능력을 의심받고 있다.

앞으로 박 회장의 벼랑 끝 경영에 어떤 새로운 변화가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