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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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에게 대(代)를 이어 경영권을 맡겨오던 LG가(家)에서 딸들의 반란이 시작됐습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어머니인 김영식 여사와 여동생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씨가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재산 분할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75년을 이어져 온 LG家의 화합에 ‘금’이 가는 모양새입니다.

고(故) 구인회 창업회장, 고 구자경 명예회장, 고 구본무 회장, 구광모 회장까지. LG가의 장자승계 원칙은 철저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외아들을 잃은 구본무 회장이 2004년 조카 구광모 회장을 양자로 들인 것도 장자승계 원칙을 이어나가기 위함입니다.

75년간 잡음은 없었습니다. 마찰 없는 그룹 승계를 위해 기존 경영에 관여했던 다른 가족 일원은 자리에서 내려오거나 계열 독립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968년 12월 구인회 회장이 별세하자 한달 뒤인 이듬해 1월 동생 구철회 사장은 경영에서 퇴진을 선언했습니다. 셋째인 구정회 사장은 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조카인 구자경 회장을 1년간 보필했습니다.

이후 구철회 사장의 자손들은 LIG그룹을, 허씨 일가의 계열사는 LS와 GS로 계열 분리됐습니다.

전통은 구본무 회장 대에도 이어졌습니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형제이자 LG반도체를 이끌던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유통사업을 담당하던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은 LG그룹 경영에서 손을 뗐습니다.

LG상사 최대주주였던 구자승씨 일가는 LG패션(현 LF)로, 자학·자두·자극 형제 일가도 계열 분리 또는 다른 사업을 택했습니다.

구광모 회장이 그룹 총수에 올랐을 때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셋째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은 고문으로 물러났고, 구자경 명예회장의 둘째이자 구광모 회장의 친부인 본능씨와 넷째 본식씨는 희성그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비판은 없지는 않았습니다. 구광모 회장이 그룹 지휘봉을 잡았을 때 경제개혁연대는 구광모 회장의 경영 활동 이력이 없고 검증 절차도 없다는 점을 들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구광모 회장은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지배구조 투명화에 매진했고, 역대 최대 상속세 9000억원의 성실 납부도 결정했습니다. 적자가 난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주력 사업은 통큰 투자에 나섰습니다.

구광모 LG 회장. 사진=LG그룹
구광모 LG 회장. 사진=LG그룹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번 세 모녀의 ‘반란’에 부정적 프레임이 덧대어지고 있습니다. ‘양자’라는 가족관계가 소송의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시각도 나옵니다. 양자 구광모 회장을 ‘엄마’와 ‘여동생들’이 ‘장자’로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LG가의 다른 여성들보다 세 모녀의 지분율이 높은게 정작 구본무 선대회장이 장자승계를 받았기 때문인데 말입니다. 구본무 회장으로 경영권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세 모녀의 지분율은 1% 이하에 그쳤을 겁니다.

시점도 이상합니다. 상속이 완료된지 4년이 넘었고, 제척기간도 3년이 지났습니다. LG측에서도 이해가 어렵다고 밝히는 부분입니다.

일단 구광모 회장은 원만한 협의를 시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 모녀가 구광모 회장에게 상속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내용증명 서류를 보낸 시점은 지난해 7월로 알려졌습니다. 그해 말 구광모 회장은 구연경 대표의 5번째 상속세를 대신 납부했습니다. 하지만 내용증명은 올해 초 다시 한번 이어졌고, 지난달 28일에는 소송이 제기됐습니다. 구광모 회장이 내민 손을 세 모녀가 쳐낸 모양새입니다.

세 모녀가 ‘눈독’을 들이는 구광모 회장의 ㈜LG 지분은 회장 개인 소유의 개념보다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옥새’ 성격이 큽니다. LG가를 대표한다는 상징적 의미라는 얘기입니다.

옥새를 나누면 경영권이 흔들립니다. 세 모녀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상속지분이 ‘1.5대1대1대1’로 조정되면 구 회장의 지분율은 현재 15.95%에서 9.71%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반면 김영식씨의 지분은 현대 4.2%에서 7.96%로, 구연경 대표와 구연수씨 지분은 각각 3.42%, 2.66%까지 늘어나게 됩니다. 세 모녀 지분을 합치면 14.04%로 구광모 회장을 압도하게 됩니다. 구광모 회장 친부인 구본능 회장(3.05%), 구본무 회장 막냇동생인 구본식 LT그룹 회장(4.48%), 구본준 LX홀딩스 회장(2.04%)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따라 ‘권력구도’가 재편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세 모녀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는 힘들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인감증명이 포함된 협의서가 작성됐다는 LG측 주장을 감안하면 상속인 간 합의의 적법성을 뒤집을만한 명확한 위법사유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데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산을 두고 다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가풍이 지켜져 왔기에 여러 차례의 상속과 계열분리 과정도 잡음 없이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 이것이 LG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다.”

가족간 화합은 깨졌고, 원동력은 없어졌습니다. LG가 강경대응을 예고했기에 중간에 봉합될 가능성도 낮습니다. 가족간의 송사는 승자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끝이 무엇이든 세 모녀와 아들은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기게 됐습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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