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무위원이 탄핵소추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2015년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해, 2019~2020년 홍남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 3번, 2020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2번으로 총 6번의 탄핵소추안 발의가 있었지만 모두 폐기되거나 부결됐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역사상 최초로 장관이 탄핵됨으로써 향후 정국은 극한 대치로 얼룩질 전망이다.

국회는 8일 본회의에서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탄핵소추안’을 총투표수 293표 중 찬성 179표, 반대 109표, 무효 5표로 의결했다. 국무위원 탄핵소추안은 재적 과반 찬성으로 의결된다. 앞서 야 3당은 이 장관 탄핵소추안을 지난 6일 국회에 제출했다. 이는 당일 본회의에서 바로 보고됐으며, 72시간 시한 안인 이날 표결이 이뤄졌다.

국민의힘은 설마설마하다가 국회 과반 의석을 둔 민주당(169석)을 비롯해 안건을 공동발의한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당이 대부분 찬성하며 이 장관 탄핵안을 일사천리로 진행하자 대거 반대표를 던지며 저항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탄핵소추 사유는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재난안전법 위반이다. 민주당은 이 장관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한 사전 재난 예방 조처를 하지 않았고, 참사를 인지한 후에도 재난대책본부를 늦게 가동하고 수습본부는 설치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국회 국정조사 등에서 위증을 하고 유가족에게 부적절한 발언을 한 점도 지적됐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표결에 앞서 본회의장에서 탄핵소추안을 설명하면서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애도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 후 본회의장 앞에 모여 야당이 소추 요건이 되지 않는데 다수의 횡포를 부렸다고 규탄했다. 이 장관의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결정한다. 소추의결서가 송달되면 헌재 결정이 있을 때까지 이 장관의 직무는 정지된다. 행정안전부는 수장의 부재에 따른 업무 공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장관 탄핵안 ‘기습 처리’에 여당인 국민의힘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상민 장관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것이라는 희망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의 탄핵 추진은 자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 처리 절차를 조금이라도 막아보고, 이재명 대표의 주말 검찰 출석에 대한 국민적 시선을 돌리기 위한 것이다. 사실상의 대선 불복”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역시 표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의회주의 포기다.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 장관의 탄핵안에 대비해 업무 공백이 없도록 비상 대책을 세우고 장관 ‘부재’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 특히 장관 권한 대행을 맡게 될 행안부 차관을 법조인 출신으로 교체해 정면 대응하는 방안도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민 장관 탄핵 가결로 향후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양상이 펼쳐질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 등으로 검찰 기소 직전에 놓여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재판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정권 출범 후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여야 간의 물리적 거리가 먼 상황에서 야당이 정권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윤석열 정부의 장관을 ‘날려버림으로써’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셈이 됐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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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내각 실세로 군림하고 있는 이상민 장관을 ‘콕’ 집어 탄핵함으로써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허니문’은 끝났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윤 대통령(8회)의 충암고 4년 후배에다 “고교 동문회 자리에서 (윤 대통령을) 형님이라고 부를”(이 장관 국회 청문회 때 언급됨) 정도로 친밀한 사이다.

윤 대통령이 그동안 이태원 참사 책임론으로 이 장관 퇴진을 끊임없이 요구받았지만 끝까지 그를 감싸며 지켜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통령 신임이 두터운 이상민 장관을 내각에 심어둠으로써 ‘군기반장’ 역할을 하도록 했고 문재인 정권과 ‘권력교체’가 이뤄졌지만 아직도 관료사회는 새 정부에 저항하는 세력도 많기 때문에 대통령 최측근을 통해 관가를 ‘온전하게’ 장악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런 대통령의 최측근을 ‘날려버림으로써’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장악력과 그 위상에도 타격을 주려는 의도를 명백히 드러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하필 윤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최측근 실세 장관을 탄핵함으로써 윤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정면으로 건드렸고 이는 곧 여당과 대통령실의 대대적인 보복을 부를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대야 ‘비타협 무시 전략’의 강도를 더욱 높여갈 가능성이 커졌고 여야 관계는 사상 최악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민주당도 그동안 대여 투쟁을 두고 온건론과 강경론이 맞섰지만 이번 이 장관 탄핵을 기점으로 윤석열 정권과의 정면 대결을 선언한 셈이 됐다. 특히 이재명 대표에 대한 ‘선처’를 바라지 않고 대여 투쟁의 강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것이 이상민 장관 전격 탄핵으로 나타난 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지난주 첫 번째 공식적인 장외투쟁에 이어 이상민 장관 전격 탄핵까지 일련의 초강경 투쟁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대여 강경투쟁에 다소 소극적이었고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불기소’ 등을 기대하며 여권의 ‘협치’와 유화 스탠스를 기다렸지만 윤 대통령의 야당 탄압 의중을 간파하고 이번에 확실하게 강경 일변도로 대여 투쟁 전략의 방향을 잡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최측근을 야당의 ‘정치적 탄핵’으로 잃었다는 점에서 복수의 칼을, 민주당은 검찰의 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적 탄압’에 항거의 칼을 들었다는 점에서 여야는 타협과 협치의 강을 건너버렸다. 이제 민생은 더욱 뒷전으로 밀려나고 여야의 ‘활극’만이 난무하는 ‘식물국회’ 암흑의 시대가 도래할 전망이다.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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