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 교육 체계 시급…“마지막까지 청진기 놓지 않아”

[파이낸셜투데이=신현호 기자] 심장의학계 최고권위자인 이종구(82) 박사(이종구 심장클리닉 원장)는 의료인의 삶을 살아온 50년 간 단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 없다. 캐나다에서 영구귀국한 후 국내 심장의학계의 발전을 선두에서 지휘해온 그는 소리 없는 살인자 심장질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심폐소생술’ 교육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청진기를 놓지 않겠다”며 오늘도 노구를 이끌고 진료에 나선다.


“마지막 순간까지 진료를 멈추지 않을 겁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에게 건강과 활력을 되찾아 주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도 없죠. 심장질환은 예고 없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꾸준한 운동과 금연은 필수죠.”

대한민국 심장의학계 최고권위자인 이종구 박사는 앞으로 삶의 방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하며 ‘살인자’ 심장질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최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심장질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갑작스러운 심장 질환 발생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박사는 심폐소생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폐소생술이 가장 중요합니다. 심근경색 환자 10명중 2명이 심장마비가 오는데 골든타임으로 불리는 4분 안에 심장을 되살리지 못하면 뇌의 산소공급이 차단돼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심폐소생술은 기능이 일시 정지된 심장으로 혈액을 공급해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심장마비를 일으킨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주변에서 심폐소생술로 생명을 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 박사는 이 때문에 심폐소생술의 전문적인 교육 필요성을 역설했다.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있어야 시간낭비를 하지 않고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

“외국의 경우 많은 사람이 심폐소생술을 배워 자격증을 취득합니다. 환자 본인은 의식을 잃었기 때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심폐소생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어요. 구급차를 불러서 가까운 병원에 가더라도 4분 안에 도착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심폐소생술을 꼭 배워야 합니다.”

심장건강 10계명…“건강할 때 지켜라”

이종구 박사는 심장질환 발병률이 중장년층에서 30~40대 젊은 세대로 확대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흡연의 위해성을 강조했다. 또 심장질환을 예방하고 건강한 심장을 유지하기 위한 심장건강 10계명을 제시했다.

심장건강 10계명이란 심장병 예방을 위해 지켜야할 원칙으로 ▲금연 ▲정상혈압 유지 ▲복부비만 예방 ▲악성콜레스테롤(LDL) 정상 유지 ▲규칙적인 운동 ▲스트레스 관리 ▲싱겁게 먹는 식습관 ▲하루 30분 운동 ▲하루 와인 1~2잔 ▲충분한 영양섭취 등 10가지다.

“30~40대 젊은 세대의 심장질환 원인은 대부분이 흡연입니다. 담배는 어떻게 해서는 끊어야 해요. 흡연과 함께 콜레스테롤, 당뇨병, 고혈압 등 네 가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고혈압과 당뇨병, 콜레스테롤을 예방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비만인데도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이 당뇨병에 걸릴 확률도 높습니다. 심한 스트레스 역시 문제죠. 스트레스 없이 살수는 없지만 그것을 관리하라는 의미입니다.”

평소 건강관리가 투철한 이 박사는 앞서 언급한 심장건강 10계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체중이 늘거나 줄지 않도록 음식조절을 하고 가벼운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

“스트레스 관리. 쉽지 않죠. 제 경험에 비춰볼 때 욕심을 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취미를 갖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취미생활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좋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흡연, 심장 건강에 ‘최악’…“어떻게든 끊어라”
82세 노구 불구 오늘도 환자 진료에 ‘진력’

폭탄주?…음주문화 바꿔야

이종구 박사는 욕심이 필요 없는 스트레스를 만든다며 욕심이 화근이라고 피력했다. 예를 들어 무리한 주식투자와 1등을 위한 무리한 질주 등이 인체에 악영향을 주는 스트레스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그는 “환자를 진료하다보면 무리한 사업투자와 갈등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식습관을 개선하고 금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적절히 관리하는 것도 건강한 삶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식습관과 체중, 음주에 대해 다소 파격적인 의견도 내놨다. 채식위주의 식단이 잘못됐다는 것과 뚱뚱한 노인은 더 오래 산다는 점, 술을 매일 적당히 마시면 심장에 좋다는 점 등을 들며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었다.

“한국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편견이 너무 많습니다. 고기를 안 먹어야 오래 산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에요. 고기와 생선, 과일, 야채 등을 골고루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과식은 안 돼요. 체중은 적정체중을 유지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말라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특히 65세 이상 노인들은 마른 노인이 사망률이 더 높고 뚱뚱한 노인의 사망률이 더 낮습니다. 술은 소량을 매일 먹는 것이 좋습니다. 하루에 1~2잔씩(양주, 와인 기준) 마시는 사람이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심장병이 적어요. 소주로 따지면 4잔까지, 맥주는 500cc 1컵입니다.”

음주문화에 대해 지적하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폭탄주, 원샷 등 한 번에 빨리 많이 마시는 나쁜 습관이 있어요. 서양 사람들은 와인을 3잔 정도를 마실 때 1시간 30분~2시간 동안 천천히 마십니다. 반면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주 4잔을 30분 안에 다 마시죠. 빨리빨리와 폭탄문화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의료인생 50년…심장학계 한 획

이종구 박사는 50여년 간 의료인의 길을 걸어온 대한민국 의료계의 산증인이다. 또 낙후된 심장의학계를 선두에서 지휘하며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데 공헌해 왔다. 1996년 개원이후에도 개원을 염두에 둔 후배들이 살림을 잘 꾸릴 수 있도록 멘토링을 아끼지 않는 등 멈춤 없는 지식과 노하우 전수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박사의 심장의학계 투신은 1957년 서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한 후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캐나다에 가보니 심장병 환자들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았어요. 당시 한국은 심장병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던 시절입니다. 캐나다는 심장의학이 발달했던 터라 심장의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종구 박사는 이후 1964년 캐나다 온타리오대학교와 맥길대학교에서 심장내과 수련의를 마치고, 심장내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또 1965년부터 1989년까지 24년간 캐나다 앨버타대학교에서 내과의사 겸 교수로 활동하며 심장전문의로 명성을 쌓아갔다.

이 박사는 사실 캐나다에서 수련의를 마친 후 귀국해 심장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위해 일을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캐나다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할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차분히 기회를 기다렸고 1989년 기다리는 기회가 찾아왔다.

“1989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대 아산병원을 설립했죠. 이 때 병원 측에서 심장내과 전문의로 와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고대하던 귀국 기회였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드디어 그동안 배운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거죠.”

“환자와 가까운 곳에서 한결같이”

이종구 박사는 귀국과 함께 서울아산병원 심장센터 소장을 맡았다. 그는 후배들에게 캐나다에서 배운 의료기술을 전수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또 내원 환자들 역시 심장질환에 대한 무서움과 예방 방법에 대해 지식이 부족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치료와 더불어 예방할 수 있는 방법과 건강한 심장관리 요령을 전파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7년의 시간이 흘렀다. 은퇴 시점이 다가왔다. 많은 이들은 이 박사의 명성과 그간의 공헌을 고려할 때 은퇴 후 대학 강연과 취미생활 등으로 여생을 즐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심장질환 증가세심폐소생술 등 전문교육 필요
클래식 애호가…“음악, 인생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지만 이 박사가 선택한 것은 현장이었다. 환자를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 하나 때문이다.

1996년 현재의 이종구심장클리닉을 개원할 당시 그의 나이 64세. 주변의 만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편하게 여생을 즐기라는 주변의 권유는 사치로 들렸다.

“아산병원에 더 오래있을 수 있었지만 환자와 함께 가까이 지내며 진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퇴 후 유유자적하게 사는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환자를 더 가까이 보고 싶어 개원하기로 했죠. 개원 후 아산병원에서 진료 받던 환자분들이 많이 와줘서 참 감사했습니다.”

내 삶의 활력소 ‘클래식’

이종구 박사는 클래식을 사랑하는 의사로 유명하다. 클래식 관련 저서(내 인생의 클래식)도 출간했고 ‘예술의 전당 후원회’ 회장도 역임했다.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취미생활 역시 클래식이었다.

“학생 때부터 클래식을 좋아했어요. 특히 모차르트를 좋아했습니다. 캐나다에서 유학할 당시 오페라, 심포니 등 클래식을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1996년 예술의 전당 발전을 위한 후원회를 조직하는데 이종덕(당시 예술의 전당 사장) 사장이 저에게 후원회를 만들어보자 제안을 해 6년간(2005~2011년) 회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회원들과 외국에 나가서 오페라 콘서트 투어도 했죠.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이 박사는 유학시절부터 클래식을 듣다 보니 전문가 수준이 됐고 각종 음악잡지에 클래식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또 예술의 전당 후원 회장뿐만 아니라 한국음악협회 명예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데 직접 다루는 악기가 있는지 궁금했다.

“직접 다루는 악기는 없어요. 학창시절 합창단에서 노래를 한 것이 전부죠(웃음). 음악이 제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박사는 우리나라의 클래식 문화가 무척 역동적이라고 분석했다. 예술의전당 후원회장을 6년간 맡으면서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 공연을 갈 때마다 젊은이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한국의 클래식 공연장에는 30∼40대 젊은층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전 세계 어딜 가도 클래식에 대한 갈망과 열정은 한국만한 곳이 없다”며 “한국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에 외국 연주자들이 감동할 만큼 우리 공연문화가 성숙해졌으니 우리 클래식의 장래는 무척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건강 허락할 때까지 진료 계속할 터”

“건강이 허락할 때 까지 환자를 돌볼 겁니다. 저는 환자를 진료하는 것 자체가 행복합니다. 솔직히 말해 직원들 급여주고 집세내고 나면 별로 남는 것도 없어요(웃음). 즐기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박사의 건강 철칙과 음악을 통한 스트레스 치유 등을 볼 때 앞으로 최소 10년은 환자를 진료하는 게 거뜬할 것 같다.

부를 위한 또 명예를 위한 행위가 아닌 오로지 환자의 건강을 위한 그의 행보는 현재를 살아가는 후배 의료인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작금의 현실은 소위 돈이 되는 피부과 치과 등에 집중한 나머지 의료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종구 박사는 마지막으로 심장전문의를 지망하는 의학도를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이들에게 심장전문의는 기피직종이라는 인식이 퍼져있다.

“심장전문의는 심장내과와 심장외과로 구분됩니다. 따지자면 심장외과가 힘들죠. 심장외과가 힘든 이유는 레지던트과정이 길고 힘들어요. 또 최근에는 의학이 발달해 수술을 안 하고 시술(내과 분야)로 끝내기 때문에 심장외과에 대한 수요도 줄어들어 기피하고 있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심장내과는 현재 인기 있는 분야입니다. 심장질환이 증가하면서 심장전문의의 수요도 늘어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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