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월 2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이 차기 당 대표를 놓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이번 소란의 요체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내년 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로 차출하는 것이었다. 사태가 심각한 권력 갈등 양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한 장관이 7일 직접 나서서 “지금까지 법무부 장관으로서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그 생각밖에 없다”며 사실상 당권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번 해프닝은 주호영 원내대표의 ‘입’에서 최초로 발화됐다. 주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관저에서 2번이나 만난 이후에 나온 ‘따끈따끈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해석이 정가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차기 당권은 2024년 총선 공천권이라는 최대의 ‘이권’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작은 논란에도 ‘윤핵관’과 주요 후보들이 ‘급발진’을 하는 등 당내 역학 구도가 요동칠 수밖에 없는 가장 핫한 이슈다.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는 주 원내대표가 왜 이 시점에서 ‘한동훈 차출설’을 은근히 흘리며 논란을 자초했는지 그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평소 입이 무겁고 신중한 편이기 때문에 당 대표 ‘인선’같은 민감한 사안을 ‘윗분’과의 교감 없이 함부로 흘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주 원내대표는 최근 여권 내에서 윤 대통령을 2번이나 관저에서 만난 ‘유일한’ 인물이다. 지난 달 25일 국민의힘 지도부 만찬에서 윤 대통령은 주 원내대표를 ‘선배님’(사법연수원 14기로 윤 대통령(23기)보다 9기수 선배이다)이라고 깍듯하게 모시며 친밀감을 표했다는 것이 알려져 주 원내대표의 어깨가 더 으쓱거렸을 법하다. 그로부터 5일 뒤인 30일 윤 대통령은 주 원내대표를 심야에 관저로 불러 ‘독대 회동’을 했다. 주 원내대표가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의 ‘차기 당권 지침’을 내밀하게 듣고 당 대표 선거 구도의 감을 잡았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3일 주 원내대표는 대구 수성대학교에서 열린 대구·경북 언론인 모임 ‘아시아포럼21’ 초청토론회에서 당 대표의 3가지 조건을 제시해 논란이 됐다. 주 원내대표가 불과 사흘 전 윤 대통령과 ‘독대’한 사실이 알려진 터라 이날의 발언은 초미의 관심이 됐다. 주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수도권 출신’ ‘MZ 세대 친화적’ ‘안정적 공천 관리’ 등을 당 대표 조건으로 내세웠는데 사실상 윤 대통령의 당 대표 ‘면접 기준’이라는 말도 나왔다.

특히 주 원내대표는 당권 도전에 나선 황교안 전 대표, 김기현 윤상현 조경태 의원 등의 이름을 말한 뒤 “총선에서 이길 수 있는 확신이 있는 사람이 안 보인다는 게 당원들의 고민”이라고 우려했는데 정치권에서는 적어도 ‘호명’된 당권 주자들은 윤 대통령 면접지에서 지워진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안철수 나경원 권성동 등의 유력주자는 언급이 되지 않아 일단 ‘컷오프’ 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또한 주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정치 욕구를 국민 민심과 어긋나지 않게 얼마나 잘 조율하고 혁신적으로 조화롭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만큼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많다”라고 덧붙였다. 당 대표 기준에 ‘대통령의 정치 욕구’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11일 오전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로 향하며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등 환송 인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11일 오전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로 향하며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등 환송 인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정치신인이라 현재의 국민의힘 당권과는 얽혀 있는 인연이 거의 없다. 이 말은 곧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전면적으로 환골탈태 시켜 새로운 보수정당으로 만들려는 기대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그런 ‘정치 욕구’를 주 원내대표에게 주지시켜 관철해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졌을 가능성이 있다. 기존 주자가 ‘성에 차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시선은 여권 내 대권주자 지지율 1위인 한동훈 장관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윤심’을 캐치한 주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과 이심전심으로 ‘한동훈 대표론’을 여론시장에 한번 띄워본 것이라는 해석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한동훈 차출설’이 불거지자 즉각 부인을 했다. 한 일간지에 윤 대통령의 반응이 ‘소스’는 언급하지 않은 채 단독으로 보도됐다. 핵심은 “‘한 장관은 정치할 준비가 안 됐고, 지금 정치를 할 상황도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윤 대통령이 ‘강한 불쾌감’을 표출했다는 사족이 달린 것이다. “윤 대통령은 특히 한 장관의 전당대회 차출설이 주호영 원내대표와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등 당 지도부를 통해 촉발·확산된 데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이런 윤 대통령의 ‘불쾌감 표출’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윤 대통령이 화를 냈다거나 불쾌감을 표했다는 식의 보도가 자주 나온다. 윤 대통령이 화를 잘 내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싼 논란이 나올 때마다 수시로 ‘불쾌한 감정’이나 ‘화를 내는’ 식으로 더 강하게 부인하면서 논란의 본질을 흐리려는 윤 대통령 특유의 정치 감각일 수도 있다. 또는 더 이상의 논란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변에 ‘입 꾹 닫으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압력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한동훈 차출론’에 대해 “주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두 차례 연이은 독대 이후 상당히 고무돼 ‘윤심’을 공개해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았느냐”는 견해도 나온다. 아직 전당대회가 많이 남은 시점에서 주 원내대표가 성급하게 ‘한동훈 차출론’을 흘려 윤 대통령에게 오히려 정치적 부담을 주었다는 것이 ‘말실수’의 골자다. 이도 저도 아니면 주 원내대표의 주도면밀한 ‘자기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주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의 파워가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윤심’을 이용해 자기 정치를 하려는 무모함을 가질 정도로 ‘용맹한’ 정치인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한동훈 차출론’은 한 장관으로서는 화장실에서 크게 웃음을 터뜨릴 정도의 ‘정치적 호재’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띄워주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고마울 것이다.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다음 2위를 기록한 즈음에 나온 ‘한동훈 차출설’은 한 장관을 국민의힘 대권 구도의 상수로 진입시키는 결정적 모멘텀이 되고 있다.

윤 대통령도 이번 ‘한동훈 차출론’ 논란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한동훈’이 갖는 정치적 파괴력을 시험해본 셈인데 당내 파장이 상당히 컸고 여론도 출렁거렸기 때문에 향후 한 장관을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는 ‘경쟁력’을 확인한 셈이다. 한동훈이 더 이상 ‘외부자’가 아닌 ‘국민의힘 대권주자’라는 사실을 전 국민이 인지했다는 것만으로도 윤 대통령은 만족하며 ‘불쾌감 표출’로 표정 관리를 했을 수도 있겠다. 누가 봐도 한동훈은 윤석열의 ‘황태자’이니까.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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