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책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지적도 
단순히 사고 발생 시 책임 회피 위한 꼼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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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처벌 대신 자율을 강조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공개하면서 안전주체의 ‘자기규율’와 ‘예방 역량’이 중대재해 감축에 큰 틀을 담당하게 됐다. 이에 따라 안전책임자나 감독자의 전문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됐다. 

그러나 건설사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함께 앞다퉈 신설한 안전 전담 부서나 조직이 실상 비전문가의 기용으로 인해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가 있어 건설 중대재해 예방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은 지난달 30일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공개하며 노동자 1만명 당 산재사망자 비중을 2026년까지 OECD 평균 수준인 0.29‱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공개했다.  

정책 방향의 방향은 사후 규제·처벌 중심에서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통한 사전 예방 위주로 전환했다. 자기규율(자율) 예방체계는 정부가 제시하는 규범·지침을 토대로 노사가 함께 위험 요인을 발굴·개선하는 ‘위험성 평가’를 핵심으로 한다.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기업의 예방 노력이 충분하면 이를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고려한다. 예방체계를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안전전문가다.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건설사들은 안전관리 인력과 예산을 확대하고 안전관리 부서 신설하거나 전담조직을 운영하는 등 발 빠른 대처에 나섰다.

롯데건설은 기존에 대표이사 직속 조직이던 안전보건부문을 안전보건경영실로 격상하고 산하 팀을 안전보건운영팀, 예방진단팀, 교육훈련팀 등 3개로 확대했다. 삼성물산은 기존에 2개 팀이 속해있던 안전환경실을 안전환경실로 바꾸면서 7개팀 규모로 확대했다. 특히 안전보건업무를 총괄하는 부사장급 최고안전보건책임자(CSO)를 선임해 독립적인 예산·인사·평가 권한을 부여했다. 

GS건설도 조직개편과 함께 CSO의 역할을 강화했다. GS건설 지속가능경영부문 대표였던 우무현 사장을 CSO 사장으로 임명하고, 안전보건 총괄 책임자로서 해당 분야의 최종적인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다. DL이앤씨는 경영위원회 직속 안전지원센터를 신설했다.

일부 건설사에서는 안전관리부문 대표를 별도로 신설해 각자대표 체제를 구축했다. 호반건설은 2022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호반건설 안전부문 대표를 신설하고 허옥 부사장을 임명했고, 금성백조도 원광섭 부사장을 개발‧건설사업 및 안전‧보건 총괄 대표로 새로 선임했다.

건설사의 안전 조직 정비는 적극적인 안전 확보를 위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오너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지적이 초기부터 있었다. 단순히 사고 발생 시 책임 회피를 위한 꼼수라는 것이다. 

이렇게 내세운 책임자 중에는 실제 공장운영이나 인사·노무 담당 경험이 있는 CSO도 있지만, 재무담당 이사 등 일부는 안전보건 업무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도 있어 논란이 됐다.

2021년 1분기 가장 많은 사망사고가 발생한 태영건설은 그해 7월 대표이사 직속으로 있던 12명 규모의 안전팀을 16명 규모로 키워 안전보건실로 격상하고 배종건 부사장에게 안전보건실장(CSO)을 맡겼다. 안전보건실은 대표이사 직속이 아닌 별도 조직으로 보고라인도 대표이사가 아닌 이사회다. 

배 실장은 1990년에 태영건설에 입사, 올해까지 30년 이상을 근무한 ‘태영맨’이다. 상무시절 아파트 현장소장을 비롯해 건축본부 임원과 창원 유니시티 현장총괄 임원 등을 거쳤다. 2019년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건축본부장까지 오른 건축분야 전문가지만 안전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오지는 않았다. 

보고라인이 되는 이사회는 오너인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이재규 태영건설 대표이사 부회장과 4인의 사외이사로 구성되어 있다. 사외이사는 각각 회계‧세무, 토목공학, 법률‧소송, 정부정책‧소비자 보호를 전문분야로 하고 있어 안전분야 전문가는 전무하다.

경영진에게 전문적인 자문 역할을 하기 위한 사외이사의 위촉에서 대부분의 건설사는 안전보다 형사처벌 대응에 중점을 뒀다. 두 번의 붕괴 사고를 낸 HDC현대산업개발은 2021년 김주현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시외이사를 선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사가 함께 사업장 내 유해·위험 요인을 스스로 파악해 개선하는 위험성평가 제도를 중심으로 자기 규율 예방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과연 해마다 반복되는 근로자의 죽음을 막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 기대와 함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오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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