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양지훈 기자
사진=양지훈 기자

증권업계가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단기간에 평평한 길로 돌아올 분위기가 아니다. 지난해까지 ‘유동성 잔치’로 함박웃음을 지었던 증권업계가 불과 1년 만에 ‘유동성 경색’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급기야 금융당국이 자금 경색 위험에 노출된 증권사를 지원하기 위해 나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부가 손을 내민 것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0년 3월, 한국증권금융은 단기자금시장이 코로나19로 인해 위기에 빠지자 대규모 자금을 조성하고 증권사 유동성 공급에 앞장섰다. 한국증권금융 자체 기금 1조원과 한국은행 환매조건부채권(RP)으로 조달한 2조5000억원 등이 어려움에 직면한 증권사들을 돕는 일에 쓰였다. 이후 대다수 증권사는 2년 연속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올해 들어 유동성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채권시장은 돈줄이 막혔다. 신규 채권 발행이나 차환 발행에 실패하는 기업이 줄을 잇고 있다. 오죽하면 일반 회사의 회사채 발행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한국전력에 한전채 발행을 ‘자제해달라’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많은 사람이 자금시장 경색의 원인으로 레고랜드발(發) 유동성 위기를 지적하지만, 잘잘못을 따지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무리하게 벌려놓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가 문제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유동성이 급속도로 확대되자 증권사들은 PF 대출 비중을 꾸준히 키웠다. 최근 3년간 증권사 부동산 PF 익스포져(위험노출액)는 ▲2020년 말 24조5897억원 ▲2021년 말 28조8042억원 ▲2022년 3월 말 28조8436억원으로 해마다 늘었다.

부동산 PF 대출은 부동산 개발사업의 장래성을 고려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미래에 특정 사업지에서 수익이 날 것을 고려해 사업비 중 일부를 대출받는 과정으로, 시행사가 부도를 맞으면 부동산 PF 대출업자에게도 책임이 따른다. 즉, 부동산 PF는 ‘고위험 + 고수익’ 사업이며, 진행 시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부동산금융과 익스포져에 대한 우려를 이미 표했다. 지난 8월 나이스신용평가는 “부동산 경기 하강 위험이 커지는 가운데 과도한 부동산 익스포져는 신용도의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익스포져 비중이 과중하고, 브릿지론과 후순위성 비중이 높은 증권사에 대해 모니터링 강화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현재 증권업계가 중소형증권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으니 8월 나이스신평의 우려는 현실이 된 것이다.

물론, 자구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가 마련한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9개 대형증권사를 중심으로 ‘제2 채안펀드’ 조성이 이뤄졌다. 다만, 모든 대형증권사의 자금 사정이 좋은 건 아니다. 일부 대형증권사는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증권사에 자금 마련을 요구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이 나온다. 아울러, 제2 채안펀드는 금융당국의 ‘관치’라는 지적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일부 금융회사에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금융회사를 등한시하지는 않겠지만, 해당 회사가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면 책임을 강하게 묻겠다는 것이다. 기자는 이 원장의 발언에 어느 때보다 힘을 실어주고 싶다.

증권사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와야 할 때다. 특히 부동산 PF를 무리하게 진행해온 곳일수록 성찰이 필요하다. 레고랜드 사태가 없었더라도 증권사 유동성 문제는 언젠가 터질 수 있는 ‘뇌관’이었다. 이번처럼 정부가 위기 때마다 발 벗고 나선다면 금융회사들은 유동성 문제를 겪을 때마다 금융당국의 지원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금융당국은 해결사가 아니다. 증권사들은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파이낸셜투데이 양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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