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재 기자
김선재 기자

강원도가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강원중도개발공사를 통해 발생한 205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이하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지급보증을 철회하면서 촉발된 ‘레고랜드 사태’로 단기금융시장과 채권시장이 그야말로 꽁꽁 얼었다.

사상 유례가 없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차제)의 채무보증 불이행으로 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자, 정부가 나서 50조원의 유동성을 긴급 투입하고, 여기에 한국은행이 35조원을 추가로 풀겠다며 시장 불안 잠재우기에 들어갔지만, 후폭풍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춘천시는 지자체의 지급보증 이행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동춘천산업단지 개발 사업의 보증 채무의 2배 이상 높은 이자부담을 떠안게 됐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투자증권 측에서 투자자 보호를 위해 금리 인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5.6%로 채무를 상환해오던 춘천시는 앞으로 13%의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한국전력은 지난 25일 2000억원 규모의 2년·3년 만기 채권을 각각 발행했지만, 3년 만기 채권은 최종 유찰됐다. 2년 만기 채권도 800억원 발행에 그쳤다. 한국전력이 발행하는 한전채는 AAA등급의 초우량 채권이다.

정부가 보증하는 초우량 채권도 안 팔리는데, 다른 채권 사정이야 불 보듯 뻔하다. 일례로 국내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의 경우 28일 채권 만기 연장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레고랜드 사태발 채권시장 경색으로 만기 연장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공사들이 7000억원 떠안을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가뜩이나 경제 상황이 안 좋은데, 이번 사태가 겹치면서 경제·금융위기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급격하게 인상된 기준금리로 인한 시장금리 상승으로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최근 수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축인 민간소비를 위축될 수 있다. 실제로 3분기 민간소비 증가폭은 2분기보다 줄었다.

또한 가계부채가 언제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하게 될지 모른다. 지금은 정부의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로 문제가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가계부채의 80%가량이 변동금리인 상황에서 이같은 지원 조치가 종료됐을 때 드러나게 될 부실 정도는 예상하기 어렵다.

그런 와중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 미국의 통화긴축 기조로 인한 원·달러 환율 상승 등으로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6%를 기록했다. 높은 물가상승률을 잡기 위한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고, 차주의 이자부담은 다시 커지게 된다.

금리가 올라 자금조달이 어렵게 되면 기업들의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일자리 감소와 경기침체로 이어지게 된다. 이와 함께 금리가 높아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기가 어려워지면서 저금리 기조 속 고공 행진했던 주택가격은 최근 하락세가 뚜렷하다.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집주인들이 매물을 대거 내놓으면 주택가격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27일 정부는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생중계했다. 현재 경제상황에 대한 정부의 고민과 전략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정작 회의에서 ‘비상’·‘민생’을 찾기 어려웠다. 국민들은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을 위한 정부 부처의 대책과 전략을 기대했지만, 사실상 각 부처의 주요 추진사업을 대통령에 보고하고 부처별로 협조를 구하는 등 국민을 위한 알맹이는 없었다. 게다가 ‘비상’ 상황이라면서 장관들끼리 웃으면서 자화자찬하는 모습은 정부의 상황 인식 수준을 여실히 드러냈다. 국민의 실망은 당연하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상황 인식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베트남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김 지사는 취재진을 만나 “좀 미안하다. 어찌 됐든 전혀 본의가 아닌데도 사태가 이런 식으로 흘러오니까 미안하게 됐다”면서도 “(금융기관이) 회상과 디폴트의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데서 온 점도 저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 속만 타들어간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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