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치솟는 물가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꺾기 위해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기준금리를 0.5%p 인상하는 ‘빅스텝’을 결정했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1.75%에서 2.25%가 됐다.

‘빅스텝’은 한은 사상 처음인 동시에, 지난 4월과 5월에 이어 이번 인상까지 최초로 세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렸다.

한은이 ‘빅스텝’을 밟은 것은 현재의 물가상승률과 기대 심리를 안정시키지 못해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되면 향후 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가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이하 FOMC)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 올리는 ‘자이언트 스탭’에 다시 한번 나설 것으로 전망되는 등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와 함께 달러화 강세로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한 점도 한은의 ‘빅스텝’을 압박했다.

한은은 향후 물가와 성장 경로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기준금리를 0.25%p씩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불확실성이 큰 만큼 정책 대응 시기와 폭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명확한 시그널 줘 기대 심리 차단…고물가 잡는 것이 우선”

이창용 한은 총재는 13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결정 배경에 대해 6%대에 이른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4%에 육박하는 기대 인플레이션, 이로 인한 임금 상승 등 고물가 상황 고착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 총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대로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그 속도도 3%대 물가상승률이 5%대가 될 때까지 7개월이 걸렸으나 5%대에서는 한달 만에 6%로 높아졌다”며 “수요 압력도 커겨 물가상승률이 5%를 웃도는 품목 비중이 50%에 이르는 등 물가상승의 확산 정도가 보다 광범위해지고 있고, 그 결과 근원 인플레이션과 일반 기대 인플레이션 모두 4%에 근접하는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7개월만에 가장 높은 전년동월대비 6% 상승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10월 3%대로 상승한 이후 올해 3월(4.1%)과 4월(4.8%) 4%대로 뛰었고, 5월(5.4%)에는 5%대로 치솟은 뒤 6월 6%대를 찍었다.

향후 1년 뒤 물가 상승률 전망인 기대 인플레이션은 3.9%를 기록했다. 이는 5월(3.3%) 이후 한달 새 0.6%p 상승한 것으로, 2012년 4월(3.9%) 이후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다. 상승폭은 2008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크다.

이 총재는 당분간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물가 정점을 3분기 후반이나 4분기 초로 보고 있는데, 정점 이후 급속히 낮아질 가능성보다는 완만하게 떨어져 당분간 높은 물가 수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물가상승률이 6% 수준이고, 특히 근원 인플레이션이 4%대까지 가능 상황은 경기와 관련없이 굉장히 높은 수준이다.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 우선이니 물가 중심 통화정책을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준금리를 50bp(1bp=0.01%p)를 인상한 만큼 국내 물가 흐름이 수개월간 6% 조금 넘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3분기 후반부터는 낮아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금리를 당분간 25bp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내외 여건 변화로 인플레이션이 더 가속화되거나 경기둔화 정도가 예상보다 커진다면 정책 대응의 시기와 폭도 달라질 수 있다”며 “그 과정에서 신흥국의 환율 상승 및 자본유출 압력 증대와 그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 상황 변화가 우리 금융·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겠다”고 덧붙였다.

◆좁아지는 한·미 금리격차…“격차 자체보다 파급 효과 보고 판단해야”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 국면이 지속되는 것과 함께 한은의 ‘빅스텝’ 결정에는 미국이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리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연준은 크게 오른 물가를 잡기 위해 5월 FOMC에서 ‘빅스텝’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더 크게 오르자 지난달 FOMC에서는 1994년 11월 이후 24년 7개월 만에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와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0.00~0.25%p로 좁아졌고, 환율은 치솟아 원·달러 환율은 전날 장중 1316원을 넘기며 13년 2개월만에 최고치로 뛰기도 했다.

관련해서 ‘자이언트 스텝’에도 불구하고, 13일(현지시각) 발표될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최대 9%에 이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연준이 다시 한번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1.0%p 올리는 ‘점보 스텝’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금리 역전 자체보다는 그로 인한 파급 효과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도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역전된 경우가 3번 있었고, 50bp에서 90bp, 100bp를 넘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격차보다 그로 인한 시장의 영향, 외환, 자본유출 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환율이 1300원을 넘어가자 1997년, 2008년과 비교하는데, 당시와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전 세계적으로 안전자산을 찾아서 자본이 빠져나가고, 달러를 제외한 환율이 절하되는 국면이니 다른 나라 상황 대비 상대적으로 어떤지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관련해서 한·미 정상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한 가운데, 오는 19~20일 한국을 방문하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위한 논의가 이뤄질지 관심이 높다.

이 총재는 “한·미 통화스와프는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한국을 포함한 9개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서도 “지난번 바이든 대통령 방한 시 양국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여러 방안을 고려하기로 두 정상이 말했으니, 그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추경호 장관과 옐런 장관 사이에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연말 2.75~3.00% 전망 합리적…올해 2%대 중반, 내년 2% 초반대 성장할 것”

이 총재는 연말 기준금리가 2.75~3.00%까지 오를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에 대해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올해 2.75~3.00%의 기준금리를 전망하는 시장 예측은 너무나 당연하다”며 “불확실성이 높아 실제 수치가 어떻게 될지는 주요 선진국의 금리 변화나 유가, 경기 등에 달려있지만, 지금의 기대 수준으로서는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경기 상황에 대해서는 올해 2% 중반대, 내년 2% 초반대 성장을 전망했다.

이 총재는 “연말로 갈수록 하방 위험이 커진 것은 사실이나 여러 불확실성이 있다. 5월에 예측하기를 올해 2.7%, 내년 2.4% 성장할 것이라고 봤는데, 그것보다 분명히 다소 낮아질 것”이라면서도 “아직 베이스라인은 올해 경기가 2% 중반 정도 유지되고, 내년에는 2% 초반 정도 유지될 것으로 생각해 잠재 성장률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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