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41년 만에 최고치’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가 28년 만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면서 한국은행(이하 한은)도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연준이 다음 기준금리 인상 시 ‘빅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5%p 인상)’ 혹은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을 시사함에 따라 시장에서는 7월 한은의 역사상 첫 ‘빅스텝’이 나올 가능성을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우크라이나 사태와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인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라는 점은 부담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시장의 반응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美 연준 ‘자이언트 스텝’에 빨라지는 한은 금리 인상 시계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연준은 14~15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이하 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0.75~1.00%에서 1.50~1.75%로 0.75%p 인상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와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0.75~1.00%p에서 0.00~0.25%p로 크게 줄었다.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을 밟은 것은 1994년 11월 이후 27년 7개월 만이다. 5월 FOMC에서 22년 만에 ‘빅스텝’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1년 만에 가장 높은 전년동월대비 8.6%를 기록하는 등 높은 수준의 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파월 의장은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물가상승률이 너무 높았다”며 “금리를 계속 올리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또한 “다음 회의에서 50bp(1bp=0.01%p) 또는 75bp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언급해 연속으로 큰 폭의 금리 인상 결정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한은이 7월 13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에서 ‘빅스텝’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 8월부터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왔지만, 최근 주요국들이 큰 폭의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선제적 대응’의 의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지난 10일 한은 창립 72주년 기념식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웃돌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정상화 속도와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더 이상 우리가 선제적으로 완화 정도를 조정해 나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금리 인상으로 단기적으로는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커질 수 있겠지만, 자칫 시기를 놓쳐 인플레이션이 더욱 확산된다면 그 피해는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는 평가가 이제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으로, 일각에서는 ‘빅스텝’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빅스텝’에 대한 고민이 읽힌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0.25%p 인상 결정과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든 위원간 의견이 일치했지만, 그 속도에 있어서는 의견이 갈렸다.

이 총재를 제외한 5명의 금통위원 중 2명은 기준금리 상승 기조를 이어나가되 ▲향후 경기여건에 신축적 대응 ▲취약가구의 채무불이행 리스크 확대 등을 우려해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반면, 다른 3명의 금통위원은 중립금리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위원은 “물가상승세가 확대될수록 향후 보다 긴축적인 정책대응이 불가피하며, 이는 결국 향후 더 큰 성장 손실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기준금리를 빠르게 중립 수준으로 높여나가는 것이 중장기 시계에서 거시경제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관련해서 지난 16일 FOMC 회의 결과 공개 이후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빅스텝’ 가능성에 대해 “다음 금통위 회의까지 3~4주 남아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그 사이 나타난 시장 반응을 보고 결정할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6%대 전망…한·미 금리 역전 가능성↑

시장에서 한은의 ‘빅스텝’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는 5%대를 뚫고 6%대 진입을 앞두고 있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때문이다. 또한 한·미 금리 역전으로 외국인 투자금이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대비 5.4% 올라 13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를 기록한 것은 2008년 9월(5.1%)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10월 3.2%를 기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꾸준히 올라 올해 3월 4.1%로 4%대 진입했고, 4월(4.8%)에는 4% 후반대까지 치솟는 등 8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에 한은은 지난달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3.1%에서 4.5%로 대폭 상향조정했다. 정부도 지난 16일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전망치를 2.2%에서 4.7%로 크게 올려잡았다.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5%대를 지속할 것으로 봤지만, ING는 휘발유, 신선식품 가격 상승과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분기까지 6%대를 상회하다가 4분기 들어 5%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며 올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5.2%로 높였다. JP모건도 5.2%를 제시했다.

미국과의 금리 역전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자본유출 우려가 커진 부분도 있다. 연준이 다음 FOMC에서도 큰 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만약 한은이 7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하고, 연준이 7월 FOMC에서 ‘빅스텝’에 나서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우리나라 기준금리보다 0.00~0.25%p 높아지게 된다.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경우에는 그 격차가 0.25~0.50%p로 더 커진다. 이렇게 되면 외국인 투자금 유출과 함께 달러 강세로 수입물가가 오르게 되고, 이는 곧 소비자물가를 상승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물론 과거의 사례를 봤을 때 한·미 금리 역전이 반드시 자본유출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한·미 금리 역전은 ▲1999년 6월~2001년 2월 ▲2005년 8월~2007년 8월 ▲2018년 3월~2020년 2월에 있었지만, 외국인 자본은 오히려 순유입됐다.

하지만 지금은 대외 불확실성 확대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져 주식시장이 부진을 면하지 못하는 등 한국의 투자매력도가 떨어진 상황이다. 실제로 외국인은 지난 17일 기준 코스피 시장의 외국인 보유 시총 비율은 30.85%로, 코로나19 직전인 2020년 2월 39.3% 대비 8.45%p 줄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한은의 빅스텝, 더 나아가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하는 남은 금통위 때마다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물가 상승세가 기대 이상으로 이어지고 있고,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까지 고려하면 한은의 빅스텝 인상 가능성은 꽤나 열려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기대인플레이션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감안하면 7월 금통위에서 50bp의 빅스텝 인상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연말까지 100bp 인상을 전망한다. 7월 50bp 인상 후 8월과 10월 각각 25bp를 인상해 연말 최종 기준금리는 2.75%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석길 JP모건 금융시장운영부 본부장은 지난 15일 보고서에서 5월 금통위 의사록을 근거로 “한은이 7월 금통위에서 빅스텝을 단행한 뒤 8월, 10월 11월까지 기준금리를 0.25%p씩 연속 인상해 연말 기준금리는 3%가 될 것”이라며 “금통위원들이 앞으로 인플레이션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고 말했다.

임재규 KB증권 연구원은 “5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한은은 중립금리까지 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언급했다. 기준금리를 중립금리 수준까지 인상해 수요발 인플레이션 압력을 통제하는데 주력하겠다는 것”이라며 “한국의 중립금리는 최대 2.25~2.50%로 추정되는 만큼 한은은 금리인상을 추가 2~3차례일 것으로 전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다만,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으로 한은도 금리인상 속도를 높이거나 그 폭을 높일 수밖에 없게 됐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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