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기획재정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기획재정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사상 최대’인 59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안을 편성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정부의 방역조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손실보전금을 최대 1000만원까지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이와 함께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고금리·변동금리 대출을 저금리·고정금리로 전환하고, 잠재부실채권을 매입해 채무를 줄여주는 내용도 담겼다.

사상 최대 규모의 추경안에 물가 자극 우려가 제기된다.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차질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물가가 가뜩이나 높은 상황인데, 추경으로 시중에 돈이 더 풀리게 되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물가 안정’을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했으면서 막대한 규모의 현금성 지원을 하는 것에 대해 ‘정책 엇박자’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부는 추경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물가 영향이 적다는 입장이다. 또한 물가 안정을 위해 거시·미시 정책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24조5000억원 투입해 370만 소상공인·자영업자에 최대 1000만원 지원

13일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2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코로나 완전 극복 및 민생안정’을 위한 추경안을 의결했다.

이번 추경의 핵심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충분하게 보상받지 못한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다. 정부는 23조원을 들여 피해지원 부족분 보전을 위해 업체별 매출액·피해수준과 업종별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손실보전금을 600만~1000만원까지 지급할 계획이다. 1·2차 방역지원금(100만원+300만원)을 포함하면 지원되는 손실보전금은 최대 1400만원이다.

지원대상은 소상공인·소기업과 매출액 10억~30억원의 중기업 등 370개업체로, 업체별 매출 규모와 매출감소율 수준을 지수화·등급화해 600만~800만원이 맞춤형으로 지급되고, 매출이 40% 이상 감소한 업종과 방역조치 대상 중기업은 700만~1000만원까지 지원한다.

조주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은 합동 브리핑에서 1000만원을 지원받을 사업체에 대해 “개별사업체의 연매출 규모가 4억원 이상, 매출 감소 60% 이상이고, 사업체가 속한 업종 전체의 매출 감소율이 40% 이상이어야 한다”며 “예를 들면 여행업 등이 해당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업종이 아니더라도 방역조치를 직접적으로 받은 중기업에 해당하는 업체면 이 금액(1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부적으로 개업사업체 연매출 규모가 2억원 미만이면 매출 감소율에 관계없이 600만원(상향지원업종 700만원, 이하 상향지원업종)이 지원된다. 연매출 2억~4억원 사업체의 경우 매출 감소율이 40% 이상이라면 700만원(800만원), 그 미만은 600만원(700만원)을 받게 된다. 연매출 4억원 이상인 사업체에 대해서는 ▲매출 감소율 40% 미만 600만원(700만원) ▲40~60% 700만원(800만원) ▲60% 이상 800만원(1000만원)이 지급된다.

또한 손실보상 보정률을 현행 90%에서 100%로 높이고, 분기별 하한액도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증액한다. 정부는 2분기에 방역조치에 따른 손실보상분을 반영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소상공인의 자금 수요와 대환대출, 채무조정을 위한 긴급 금융지원에 1조7000억원을 투입, 40조70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영세 소상공인 등의 긴급 자금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금과 지역신용보증재단에서 2000억원을 출연, 3조원 규모의 특례보증을 통해 신규 대출을 지원하고, 8000억원을 투입해 총 7조7000억원 규모의 비은행권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소상공인 등의 잠재부실채권 30조원을 매입해 10조원 수준의 채무조정을 추진한다.

이밖에 방역조치 강화로 폐업한 소상공인의 재도전을 위해 재도전장려금을 업체당 100만원씩 지원하고,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의 실질 구매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227만 가구에 대해 가구당 최대 100만원(4인 기구)의 긴급생활지원금을 지급한다. 또한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렌서 100만원 ▲법인 택시·버스 기사 200만원 ▲문화예술인 100만원씩 준다.

◆소비가물가 5%대 바라보는데, 풀리는 현금만 25조…물가 자극 우려↑

문제는 추경을 통해 막대한 양의 돈이 시중에 풀리게 되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추경을 통한 현금성 지원은 25조1000억원 규모다.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을 불가피하지만, 현 정부는 최우선 과제로 ‘물가 안정’을 내건 만큼 물가 상승 우려와 함께 ‘정책 엇박자’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더구나 한국은행도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꾸준하게 올려왔다. 정부의 이번 추경은 이러한 정책 효과를 반감시킬수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8%로, 2008년 10월(4.8%) 이후 13년 6개월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추경을 통해 돈이 풀리게 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를 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해서 기재부는 이날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5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고용회복 지속, 거리두기 해제 등으로 소비 제약요인이 일부 완화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사태 및 공급망 차질 장기화 등으로 투자 부진 및 수출회복세 제약이 우려되고 물가상승세가 지속 확대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 확산 등으로 글로벌 인프레 압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주요국 통화정책 전환 가속화, 중국 봉쇄조치 장기화 등으로 국제금융시장 변동성 및 글로벌 경기 하방위험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추가 국채 발행 없이 추경안을 마련함에 따라 금리, 물가 등 거시경제 영향이 최소화될 것으로 판단한다”며 “이번에 소상공인 지원 등에 재정자금이 투입되는 것은 대부분 이전지출 소요다. 이전지출은 통상적인 정부 지출에 비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약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전히 물가 안정이 저희들의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이번 추경을 통한 소상공인,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등에 관한 재정 지원과는 별개로 현재 다양한 세제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 “물가 안정은 단순히 재정 하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거시정책 수단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하다. 다양한 미시대책이 병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인플레이션 악화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지적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한 쪽에서는 기준금리를 올려 통화량을 흡수하면서, 추경은 해줘야 하는 딜레마가 있는데,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코로나 시대에 어려움을 겪었으니 지원은 필요하다”면서도 “30조원 넘는 돈이 풀리니 당연히 물가는 자극될 것이다. 정교한 정책 선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국채발행을 안해서 물가의 영향이 적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다. 나중에 초과세수가 모자르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면서 “지금 초과세수를 갖고 예측해서 쓰는 것인데, 매해 세입을 틀리게 계산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방재정교부금까지 하면 추경 규모는 우리 GDP의 3%, 예산이 10%에 해당하는 규모”라며 “물가가 막 오르고 경기가 떨어지는 상황인데, 추경 규모가 너무 커 물가 쪽에 자극이 없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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