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 정상화에 있어 한국은행(이하 한은)의 고민이 깊어졌다. 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이 3월 금리 인상과 함께 공격적인 금리 인상, 조기 양적긴축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매파적 발언을 내놨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올해 2~3차례 기준금리를 올려 기준금리가 1.5~1.75%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는데,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가 빨라질 경우 한은은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박종석 한은 부총재보는 “필요시 시장안정화 조치를 적기에 시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은 26일(현지시간) 올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성명을 통해 “최근 몇 달 동안 일자리 증가세가 견조했고, 실업률도 크게 감소했다. 위원회는 장기적으로 2% 비율의 최대 고용과 인플레이션을 달성하려고 한다”며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다만, “물가상승률이 2%를 훨씬 넘고, 노동시장이 강해지면서 위원회는 조만간(soon) 연방기금금리(기준금리)의 목표 범위를 높이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일정은 밝히지 않았지만, 다음 FOMC가 3월에 열린다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연준이 3월 금리 인상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연준이 3월 금리 인상을 단행한다면 2018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금리를 올리는 것이다.

또 테이퍼링(채권매입 축소)를 지속해 3월 초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연준은 정책결정문과 별도로 ‘대차대조표 축소 원칙’을 발표했다. 대차대조표 축소는 금리 인상 이후에 시작하고, 재투자 금액 조정 등 예상가능한 방법으로 진행하며, 미 국채를 장기 보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준의 이같은 발표는 시장의 전망에 부합하는 수준이었다. 이에 연준의 성명 이후 미국 증시는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파월의 기자회견 후 분위기는 반전됐다.

파월은 기자회견에서 “노동시장을 위협하지 않고도 금리를 인상할 수 있는 여지는 꽤 많다고 생각한다”며 “조건이 조성된다면 3월에 금리를 올릴 수 있다. 상당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에서 꾸준히 벗어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남은 FOMC 회의마다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질문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면서도 “겸손하고 민첩하게 향후 데이터와 전망 변화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답했다. 올해 남은 FOMC 회의는 7번이다. 시장에서는 파월이 최대 7차례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매 회의 때마다 0.25%p씩 금리를 올린다고 가정하면 연말 미국의 기준금리는 1.75~2.00%가 된다.

시장은 요동쳤다. 미 국채 2년물 금리는 1.089%로 0.064%p 올랐고, 10년물 금리는 0.063%p 상승한 1.845%로 마감됐다. 나스닥은 장중 3.4%까지 올랐지만, 파월의 기자회견 이후 상승분을 모두 내주고 0.02% 상승에 장을 마감했고, 다우존스(-0.38%)와 S&P500(-0.15%)는 하락 마감했다. 국내 주식시장도 코스피와 코스닥이 3% 넘게 빠지는 등 하락세를 이어갔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사진=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사진=연합뉴스

연준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통화정책 정상화와 관련한 한은의 고민이 깊어졌다. 미국의 긴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미국이 빠르게 금리를 올릴 경우 미국과 일정 수준이 금리 차를 둬야 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인상 압박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내 상황을 무시하고 금리 인상을 결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박종석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번 FOMC 정책 결정 내용이 시장 예상과 대체로 부합했으나,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이 다소 매파적”이었다며 “미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빨라지고 있는 만큼 필요시 시장안정화 조치를 적기에 시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필요하면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하겠다는 것인데, ‘언제, 얼마나 올리느냐’가 문제다. 이주열 총재의 임기는 3월 말까지고, 2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는 3월 9일 대선 직전에 열린다. 이 총재는 앞서 기준금리 인상에 있어 정치적인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미국의 긴축에 선제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앞으로 국내 경제를 우선할 여지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소영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가 그보다 확실히 얼마나 더 올려야 하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단기적으로 약간 차이가 별로 안 나도 큰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며 “미국에서 최대 7번 올린다면 3~4번까지는 올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상황 등을 확인해야겠지만, 2월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예상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이 최고 6~7회 올린다고 했는데, 물가가 어느 정도 잡히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미국은) 2024년까지 2.5%가 목표”라면서 “미국이 올린다면 우리나라도 선제적으로 올려야 하기 때문에 2.0%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가속화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최근 연준의 정상화 속도에 대한 우려가 시장에 선반영되 측면이 있어 전일대비 변동폭은 상대적으로 제한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차관은 “다만, 향후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에 영향을 미칠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전개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필요시에는 관계기관과 함께 미리 준비한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시장안정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시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경 재원 조달이 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키지 않도록 국고채 추가 발행분은 최대한 시기별로 균등배분하겠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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