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변인호 기자
사진=변인호 기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해를 넘긴 논의 끝에 ‘구글갑질방지법’을 전체회의에서 의결했다. 비게임 앱에도 인앱결제를 강제하고 수수료를 받으려던 구글이 궁지에 몰리는 모양새다. ‘셧다운제’는 반대 상황이다. 규제 도입 후 산업은 위축됐고,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실패했다. 하지만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는데도 여전히 폐지 논의 중이다.

구글갑질방지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앱 마켓 사업자가 특정 결제방식을 사용하도록 강제하거나,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하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 새로운 규제 제도가 탄생한 셈이다.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구글의 횡포를 막기 위한 수단이 법안에 담겼다. 콘텐츠 개발사‧개발자들은 구글갑질방지법 통과를 환영했다.

강제적 셧다운제는 16세 미만 청소년의 수면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심야 시간대(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게임 접속을 제한해왔다. 셧다운제는 초기부터 폐지 논의가 본격화된 최근에 이르기까지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오명까지 얻었지만 10년가량 유지됐다. 두 규제의 차이는 목적과 수단의 적절성이다.

구글갑질방지법은 구글‧애플 등 대형 앱 마켓 사업자를 제외하면 다른 이해관계자는 반발할 이유가 없는 핀셋 규제다. 토종 앱 마켓 원스토어도 앱 마켓 사업자여서 새로운 규제 적용 대상이지만, 인앱결제를 강제하지 않았다.

원스토어는 구글갑질방지법 통과로 오히려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구글갑질방지법은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을 위해 애플은 일찌감치 해왔고, 구글이 도입하려고 하는 ‘인앱결제 강제’를 금지했다.

인앱결제를 강제하고 있는 애플 앱스토어에서 앱을 다운받아 이용하면 같은 상품을 사도 구글보다 더 비싼 요금을 내야 한다.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 정책을 보고만 있으면, 결국 소비자가 콘텐츠 가격 인상을 부담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규제다.

반면 셧다운제는 국내에서 게임을 서비스하는 기업 전부와 제도 적용 대상인 16세 미만 청소년들에게 영향이 간다. 폐지하자니 국가가 게임과몰입을 통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학부모들의 원성이 나온다. 셧다운제는 ‘16세 미만 청소년의 수면권 보장’을 위해 ‘심야 시간대 게임 이용’을 제한한다.

의도는 좋았지만, 수단이 적절하지 않았다. 수단이 적절하려면 16세 미만 청소년이 밤에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도록 하는 주된 이유가 게임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019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아동‧청소년 55.2%가 수면 부족을 겪는데, 수면 부족 원인의 1위는 공부(62.9%)로 나타났다.

오히려 청소년 수면권을 보장하려면 심야 시간대 공부를 못하게 해야 하는 셈이다. 물론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법으로 심야 시간대 공부 금지를 강제했어도 법을 준수할 사람은 적었을 것이다. 결국 인과관계가 없는 ‘수면 보장’과 ‘게임’이 엮여 ‘강제적 셧다운제’가 됐고, 산업이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셧다운제 도입 후 국내 게임산업 연평균 성장률은 도입 전 3년 평균 15.7%에서 시행 후 3년 1.1%로 급감했다.

그런데도 셧다운제는 계속 유지됐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한국 이용자가 ‘마인크래프트’에 접속하려면 만 19세 이상이어야 된다는 제한을 걸고, 이를 홈페이지에 다양한 언어로 게재하면서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기 전까지는 폐지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았다.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없는 규제는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 조문석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3일 개최한 ‘게임 셧다운제 폐지 및 부모 자율권 보장’ 세미나에서 “실효성 없이 사회적 비용만 초래하는 정책은 원점부터 재설계하거나 폐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셧다운제 논란을 신경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총리는 지난 19일 주례회동에서 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를 중심으로 학부모, 게임업계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고, 실효적인 게임과몰입 방지 방안 마련과 함께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행인 점은 여성가족부가 셧다운제를 개선하겠다고 나선 점이다. 하지만 의견 수렴에 필요한 물리적 시간이 들어 쉽게 결론은 나지 않을 전망이다.

셧다운제는 수면권 보장을 위해 아동‧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제한한다는 전제가 틀렸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전제가 틀린 채 ‘개선’을 논의한다는 것은 개선됐다고 나온 정책에서도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 단순히 게임과몰입을 막기 위해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이미 문화체육관광부가 ‘게임시간 선택제’를 시행하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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