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최근에 보험업계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보험사의 ‘제판(제조·판매) 분리’가 그것이다.

보험사가 보험상품의 제조와 판매를 함께 수행했던 것을 각각 분리된 조직으로 바꿔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보험업계에서 제판 분리는 그동안 전속 보험설계사 조직을 ‘자회사형 GA’로 옮기는 것을 의미했다. 보험사 전속 보험설계사들이 판매수수료가 많고 여러 보험사 상품을 파는 GA로 대거 이동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GA가 맞춤형 상품 판매보다 높은 수수료 중심의 상품을 우선 판매하는 경우가 빈번하여 가입자 피해가 속출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보험사들이 ‘자회사형 GA’를 설립해 상품을 판매해 왔는데, 기존 전속 설계사 조직은 병행, 유지해 왔다.

그런데 올해 등장한 제판 분리는 전속 설계사 조직을 없애고 판매자회사(자회사형 GA)를 만들어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영업하고 있는 판매전문회사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 판매전문회사는 보험사에 종속되지 않고 보험 판매와 관련해 독자적인 권한과 책임을 갖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일부 보험사가 3월 초 ‘자회사형 GA’로 제판 분리를 시작했고, 다른 보험사들도 제판분리를 앞두고 있거나 논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제판 분리가 성공할 경우 상품판매 방식의 변화가 업계 전체로 확산할 전망이다.

보험사들이 ‘제판 분리’를 하는 주된 이유는 비용 절감과 설계사 이탈 방지다. 우선, 제판 분리로 판매 채널을 분리하면 지점 운영이나 설계사 교육비 등 고정비용의 지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GA로의 설계사 이탈을 방지해서 영업 주도권을 계속 지키겠다는 의도도 있다. 여기에 7월부터 보험설계사도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하므로 비용 절감을 위해 몸집을 줄여야 하고, 새 국제회계기준 (IFRS17) 도입을 앞두고 재정 건전성 확보도 필요하며,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경영 환경이 악화된 것도 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제판 분리가 현재 보험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보험사는 제판분리를 원하는데, 보험사 노조(영업관련 직원)와 보험설계사들은 고용 불안을 우려하여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을 우려하고 근로환경 악화를 우려하여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당 보험사 직원과 전속 보험설계사들이 판매자회사로 이동하면 자연스레 구조조정이 일어나 근로여건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제판분리가 가속화되면 고수익 설계사들이 타 GA나 판매자회사로 이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간이 경과하면 중소형 GA는 사라지고 강자(대형 GA)만 살아 남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제판 분리가 시대의 흐름이라 하더라도 보험가입자들에게 피해가 없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 해당 보험사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없다는 사실이다. 보험사들은 상품·서비스 경쟁력이 강화되고 판매자의 전문성이 높아진다며, “전속 설계사가 생보와 손보 상품을 동시에 판매할 수 있으므로 소비자 편의성이 높아지고 소비자 선택권이 확장된다. 일원화된 상품 가입으로 설계사로부터 더 깊은 고객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고아계약’이 줄어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에 섣불리 동의할 수 없다. 제조와 판매가 분리되면 설계사들이 다양한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겠지만, 맞춤형 상품 공급과 다른 것이므로 소비자에게 득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험상품은 맞춤형 상품이므로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상품을 목적에 맞게 적절한 수준으로 가입시켜야 하는 것이 기본이고 마땅한데, 영업현장에서는 맞춤형 상품 보다 보험사에 유리한 상품 (설계사에게 수수료 많은 상품)을 우선 판매하도록 목표를 부여하고 교육해서 설계사들은 교육받은 대로 판매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판 분리 시 불완전판매 증가로 인해 보험가입자 피해가 우려된다. 제판 분리는 다양한 보험사 상품을 판매하는 특성상 모집수수료 경쟁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증가로 소비자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GA가 아닌 판매자회사라 하더라도 GA처럼 판매실적에 따라 모회사(보험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종속된 구조라면 실적 달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판매할 것이므로 자칫, 하청업체로 전락되어 허위·과장은 물론 불법과 탈법, 비리가 증가할 수도 있다.

긴 말 필요 없이 실제 경험이 진실을 말해 준다. 보험설계사들이 주먹구구로 판매했던 보험을 소비자에게 최적의 상품을 선정, 가입시킨다는 취지로 2001년에 도입된 GA가 취지는 실종된 채 돈벌이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되어 온갖 불법과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어 있다. 더구나 GA 숫자가 많다 보니 당국으로부터 관리의 사각지대가 더 많다. 금감원 스스로 GA관리가 어렵다고 하므로 향후 사각지대 증가로 인해 보험가입자들의 피해는 증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생보 설계사가 손보상품도 함께 판매(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할 수 있겠지만, 전문 분야가 아닌 상품을 섣불리 판매한다면 불완전판매로 인한 보험가입자들이 피해는 불가피하다. 여기에 보험설계사들의 이동과 구조조정이 쉬워지면 탈락 설계사를 통해 이미 가입한 계약자들은 단박에 고아(미아)계약으로 전락되어 계약관리 받기가 더 어려워지게 된다.

더구나, 불완전판매는 GA가 행하고 책임은 보험사가 지는 현행 법규를 당장 고치지 않으면 문제가 더 심각해 질 수 있다. 보험업법 제102조(모집을 위탁한 보험회사의 배상책임)에 GA나 설계사의 잘못된 모집으로 보험계약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배상책임은 모집을 위탁한 보험사가 진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이나 호주, 미국 등 금융 선진국들은 보험모집인에게 상담이나 설명의무 등과 함께 이를 위반하면 손해배상 책임까지 책임을 묻고 있다.

판매자회사의 명칭도 혼란스럽다. ‘00보험서비스’가 아닌 ‘00금융서비스’ 또는 ‘00금융플러스’ 이기 때문이다. 판매자회사가 보험이 아닌 다른 금융서비스(은행, 증권, 카드 등)를 실제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실제 소화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볼 때 일반 대부업체 또는 유사 수신업체와 동일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보험사와 GA간 이해 충돌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듯이, 보험사와 판매자회사간 이해 충돌이 심화되어 소비자 피해가 가중될 수 있고, 더구나 소비자들은 계약체결 당사자가 보험사인지 판매자회사인지도 불분명하고, 보험 가입 후 유지, 계약변경, 보험금 청구 및 수령, 피해 구제를 누구에게 신청해야 하는지도 현재로선 불분명하므로 더 헷갈릴 수 있다. 지금까지는 보험사만 상대하면 될 일이었지만, 앞으로는 사유 발생에 따라 판매자회사를 상대해야 하므로 더 번잡하고 피곤하게 된다.

제판분리가 시대적 흐름이고 거스를 수 없는 방향이라면 해야 한다. 그러나 보험사에 득이라면 손해보는 계층도 분명 있을 것이므로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판매자회사 직원과 보험설계사는 물론, 보험소비자들도 억울하게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판 분리를 보험사 자율에 맡기면 시행착오는 물론 이해당사자의 반발이 우려된다. GA와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금융위·금감원이 나서서 이해당사자들과 충분히 교감하고 협의하면서 신중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보험은 돈 내는 보험가입자가 주인이므로 보험가입자 우선으로 제판분리의 의사가 결정되고 추진 되어야 한다. 제판분리를 하더라도 보험가입자에게 피해가 발생돼서는 안된다. 보험사 배를 채우기 위해서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보험가입자에게 피해가 발생된다면 주인의 이익에 상반된 것이고 불공정한 것이므로 강행할 이유가 없고 해서도 안된다. 보험사 제판 분리가 소비자 보호를 외면하거나 방치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입으로만 ‘소비자 보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적극 나서서 보험사 제판분리를 선행적으로 조치할 필요가 있다. 우선, 불완전판매에 대한 배상책임능력 확보와 법규를 개정하여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GA처럼 얌체 영업을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장에서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맞춤형 상품이 공급될 수 있도록 상품비교 설명의 범위와 방법을 구체적이고 명확히 규정해서 실행하도록 조치하고 점검해야 하며, 판매수수료가 많은 보장성 상품을 미사여구로 포장해서 저축(연금, 생활비 등)으로 속여 팔지 못하도록 보험사, GA에 대해 강력하고 확실하게 조치해야 한다. 나아가 설계사 수수료 규정이 만병의 화근이므로 선진국처럼 판매실적을 줄이고 유지율을 점차 높게 반영하도록 유도해서 보험사들이 일방적으로 만든 수수료규정으로 가입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피해보는 일이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

보험사, GA, 보험설계사는 계약자가 낸 보험료로 운영되고 생업을 영위하므로 계약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보험사를 ‘계약자 자산의 선량한 관리자’라고 부르는 의미를 올바로 알고 있다면 마땅히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 행여 이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가입자가 낸 보험료로 월급(수수료) 받을 자격이 없으므로 당장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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