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신한은행, 키코 피해 기업에 보상 발표
“코로나19로 어려운 중소기업 돕는 차원…보상 기업 규모는 미정”
키코 공대위 “대상 기업 리스트 공개하고 금감원 안 따라야”

사진=키코공동대책위원회 
사진=키코공동대책위원회 

씨티은행과 신한은행이 키코(KIKO) 피해 기업 보상에 나서기로 결정하면서 키코 사태가 새 국면을 맞았다. 금감원의 배상 권고는 거부했지만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보상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다른 은행들도 보상 행렬에 동참할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 14일 씨티은행은 이사회를 열어 키코 피해 기업 일부에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씨티은행에 이어 신한은행도 지난 15일 이사회를 개최해 보상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2월 키코 사태와 관련해 분쟁조정안을 발표한 지 약 1년 만이다.

◆ 배상 아닌 보상, 법적 책임에는 선 그어

진척이 없을 것 같던 키코사태는 배상이 아닌 보상으로 변곡점을 맞았다. 배상은 법적 책임을 받아들여 손해를 물어주는 것이고 보상은 법적 책임은 없지만 손해를 보전해주는 것이다. 씨티은행과 신한은행은 법적 책임에 명확히 선을 그으며 피해 기업에 손을 내밀었다.

은행들은 키코사태와 관련해 대해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이미 대법원 판결을 받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키코와 유사한 상품을 판매한 것에 사기 판결을 내렸지만, 국내에서는 2013년 대법원이 불공정거래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금감원은 대법원 판결에 근거하되, 당시 대법원이 일부 인정한 불완전판매를 토대로 은행에 배상 책임을 물고자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분쟁조정을 신청한 4개 기업에 대한 분쟁조정안을 내놨다. 신한·우리·산업·하나·대구·씨티은행 등 6개 은행에 기업별 손실 15~41%를 배상할 것을 권고했다.

금감원은 은행들이 조정안에 따라 4개 기업에 대한 배상을 진행하면, 다른 피해 기업 145곳에 대한 자율조정을 진행해 키코 사태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분쟁조정과 자율조정은 모두 법적 강제성이 없어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은행들이 조정안을 받아들여야 효력이 발생하는데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은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분쟁조정이 마무리되고 자율조정 단계로 넘어갔으나 여전히 별 소득은 없었다. 지난 6월 신한·국민·우리·하나·농협·기업·씨티·SC제일·HSBC·대구은행 등 10개 은행이 모인 은행협의체가 꾸려졌지만 분쟁조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마당에 자율조정이 제대로 진행되긴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컸다. 게다가 산업은행이 분쟁조정에 이어 자율조정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하면서 배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다만 신한은행과 씨티은행이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돕는 취지로 보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짐을 분담한다는 취지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사회적 책임과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했다”며 “법률적 책임은 없으나 금융회사로서의 사회적 역할과 최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중소기업 현실 등을 감안해 보상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은행권 보상 나서나, 키코 공대위는 ‘투명한 절차’ 강조

신한은행과 씨티은행이 보상을 결정하긴 했지만 아직 대상 기업과 보상 규모, 시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다. 대략적으로 자율조정에 참여한 145곳 중에서 대상 기업을 추린다는 방침이다. 또 금감원의 배상 권고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쟁조정을 신청한 4개 기업에 대해서는 보상을 진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기존 분쟁조정을 신청했던 기업은 해당이 안 되고 자율조정 대상 기업 중에서 보상을 실시한다”며 “기존 대법원 판결 및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의 법률 의견을 참고하고 개별 기업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상기준을 결정했으나 최종 단계가 남아 있어 현 시점에서 정확한 금액 및 보상 대상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개별 업체의 상황이 각기 상이해 정확한 보상기한을 지금 확정해 밝히기는 어려우나 최대한 신속하게 보상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른 은행들 역시 신한·씨티은행과 비슷한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은행협의체가 가동된 이상 자율조정을 유도하는 금감원을 모른체 하기로 어렵다. 더욱이 향후 라임사태와 관련해 CEO 제재가 예정돼 있어 금감원과 대립해서 좋을 것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는 깜깜이로 절차가 진행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은행권에서 이런 변화가 감지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대상 기업과 규모 등을 공개해 투명하게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 이들 은행이 분조위에서 제시한 145개 기업 중 보상 기업을 추린다는 것은 분쟁조정과 자율조정을 따르는 부분이기 때문에 보상이든 배상이든 금감원이 제시한 조정안에 근거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황택 키코 공대위원장은 “은행들이 대상 기업 리스트를 공개하고, 금감원이 제시한 조정안 내용에 맞춰 비율이 정해져야 한다. 금감원이 비율을 정할 때 자문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두 은행이 투명하게 절차를 밟아야 다른 은행들도 그 행렬에 동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산업은행도 이 흐름에 동참해주고 은행연합회 회장도 은행협의체를 정상가동해 금감원이 만든 룰대로 광명하게 정리가 되도록 조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투데이 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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