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은 질병과 상해 보장을 위해 2009년 출시된 후, 표준화 실손과 신 실손(착한 실손)을 거쳐 현재 국민 38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린다.

그런데 실손보험이 밑 빠진 독으로 전락되어 보험사는 물론 가입자들에게 원망과 기피 대상으로 전락되어 있다. 일부 가입자들의 무분별한 의료 쇼핑과 동네 병·의원들의 비급여 과잉 진료로 손해율이 악화되어 적자가 발생하였고, 그 결과 보험사들은 팔수록 손해라며 징징거리고, 가입자들은 매년 폭탄 수준으로 인상된 보험료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반면, 실손보험으로 득(得) 보는 자들도 있다. 첫째는 실손보험의 일부 가입자인데,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입원환자 기준 전체 청구자 중 상위 1%가 전체 발생손해액의 15%를 차지했고, 상위 10%가 전체 보험금의 56.8%를 받았다. 특히 60대 여성 A씨는 지난 한 해 동안 병원 외래 진료를 무려 824번 받았다. 중증질환이 아니라 위염을 호소하거나 허리가 삐었다는 것이다.

실손보험으로 득 보는 둘째 부류는 동네 병·의원들이다. 비급여 진료(도수·증식·체외충격파, 비급여 주사, 비급여 MRI 등)를 남발해서 돈벌이하기 때문이다. 비급여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로 비필수 의료 행위가 많으며 ‘부르는 게 값’이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병·의원들이 환자들에게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 후 비급여를 공짜라고 안내하여 과잉 진료로 줄어 든 수입을 보충하는 것이다.

이처럼 실손보험이 ‘마구잡이 의료 쇼핑’과 ‘비급여 과잉 진료’로 몸살을 앓고 신음하고 있다. 실손보험으로 득 보는 자들로 인해 발생된 피해는 대다수 선량한 가입자들에게 전가되어 보험료 인상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보험료 부담을 견디지 못한 가입자들은 불가피하게 중도 포기하고, 적자를 견디지 못한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하였다. 실손보험 판매 보험사가 당초 30곳이었는데 19곳으로 줄었다. 남은 보험사들도 적자 감당이 어려워 신규 가입 연령을 대폭 낮추고 가입 조건을 강화하며, 기존 계약의 갱신보험료를 크게 올리고 있다. 보험료는 보험사들의 자율 결정 사안이므로 부담이 늘어난 만큼 적정 수준으로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 규제로 제한 받고 있다. 지난 해 9% 인상에 그쳤고, 올 해는 20% 이상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금융위와 보험업계는 지난 10일, 비급여 진료에 대해 보험료 차등제, 자기 부담률 인상을 골자로 하는 4세대 실손보험을 내년 7월에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착한 실손보험 도입 후 불과 3년만의 일이므로 기 도입한 착한 실손보험이 실효성 없음을 인정한 셈이 되었다.

4세대 실손보험은 급여만 보장받을지, 급여와 비급여를 함께 보장받을지 소비자가 선택하며, 비급여특약 보험료는 비급여 이용실적에 따라 5단계로 나뉘어 할인·할증이 적용된다. 보험료는 표준화 이전 실손보다 약 70%, 표준화 실손보다 약 50%, 착한 실손 보험보다 약 10% 저렴하다.

그러므로 내년 7월 이후 실손보험을 가입한다면 4세대 실손보험만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실손보험 기존 가입자는 기존 보험을 계속 유지하거나 4세대 실손보험으로 전환할 수 있다. 평소에 병원 이용 횟수·정도에 따라 유지 또는 전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4세대 실손보험은 보험료가 싼 대신 혜택이 적으므로 병원 덜 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으면 전환하는 것이 낫다. 특히, “병원도 안 가는데 보험료만 맨날 오른다”는 불만을 가진 경우 전환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질병이나 상해로 실손보험 혜택을 여러 차례 본 경우, 현재 비급여 진료를 자주 받고 있거나 앞으로 이용 가능성이 높은 경우 기존 보험 유지가 더 유리하다. 4세대 실손보험으로 전환하면 보장 축소에 진료실적에 따라 보험료가 할인·할증되고, 특히 연 300만원이 넘으면 보험료가 4배 인상된다. 더구나 5년 후 재가입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굳이 전환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이번에 금융위와 보험업계가 발표한 4세대 실손보험이 반쪽짜리 대책으로 의심되어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는데, 주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4세대 실손보험은 그 동안 손해율 악화와 보험료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된 비급여 과잉 진료를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인 제거도 없이 상품만 일부 바꿔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마치 수술이 필요한 암환자를 수술하지 않고 약만 먹인 후 암치료가 끝났다며 퇴원시키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그래서 4세대 실손보험은 문제의 본질인 과잉 진료를 해결하지 못한 빈쪽 짜리로 실효성이 의심되고 마지못해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둘째, 4세대 실손보험은 새로운 가입자에게만 적용될 뿐, 기존 가입자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으므로 기존 가입자들의 손해율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 가입자들은 4세대 실손보험으로 전환할 의무가 없으므로 당초부터 실효성이 떨어지고 제한된다.

셋째, 기존 실손보험 전체 청구자 중 상위 10% 해당자가 문제인데, 이들은 4세대 실손보험 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해당자들에게 4세대로 전환을 강제할 수 없고 전환하도록 권유할 유인책도 딱히 없다. 그러므로 4세대 실손보험이 출시되더라도 한 해 2조원 넘게 발생하는 적자 개선이 어렵고 기존 가입자들의 보험료 인상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넷째, 4세대 실손보험이 보험료차등제를 적용하지만, 충분한 통계 확보를 위해 상품 출시 후 3년이 경과(2024년 7월)되어야 할인·할증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즉, 4세대 실손보험을 가입하거나 전환하더라도 보험료 차등제를 적용 받으려면 최소 3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4세대 실손보험 출시 불구하고 단기간에 손해율 개선을 기대하거나 달성하기 어렵고 달성하더라도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결국, 4세대 실손보험은 착한 실손보험을 답습하여 태생부터 불완전하고 여전히 반쪽짜리라는 한계가 있다. 손해율 악화와 보험료 인상의 주범인 ‘비급여 과잉 진료’를 확실하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4세대 실손보험은 실패할 수 밖에 없고, 기대한 보험사 적자 해소와 보험료 인하도 사실상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금융위는 지금부터 라도 ‘비급여 과잉 진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대책을 조속히 내 놔야 한다. 사태 해결을 위해 의료업계와 공조가 필요하므로 보건복지부와 긴밀히 협의하여 비급여 진료가 더 이상 일부 가입자들의 의료쇼핑과 병·의원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국민 불편 해소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비급여를 급여로 적극 전환하되, 비급여 항목의 표준코드 사용 의무화, 비급여 진료비의 표준가격 제도 도입은 물론 모든 병·의원에게 비급여 진료비 자료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병·의원위 비급여 과잉진료를 줄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환자들이 비급여 과잉진료로 부당하게 피해를 입었을 때 심평원에 신고해서 구제 받을 수 있는 제도도 적극 도입, 운영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의료업계도 도 넘은 이기주의에 매달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중단해야 한다고 본다. 비급여 진료가 축소되면 병·의원 돈벌이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속내를 감추고 애써 해괴한 이유를 내세워 반대하거나 물타기 하는 것은 내 배를 채우기 위해 비급여 과잉진료를 통해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손보험은 당초부터 가입자를 위한 것이지 보험사나 병·의원들의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그러므로 보험 관련 모든 의사 결정과 판단은 보험사나 의료업계가 아니라 돈 내는 주인(실손보험 가입자)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이를 외면해 왔기 때문에 매번 논란이 계속된 것임을 각성해야 한다. 돈 내는 주인이 누구이고 내가 누구 덕분에 밥 먹고 사는지 알고 있다면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존재할 이유가 있고 밥 먹을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오세헌 보험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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